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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ey Jun 12. 2023

일류첸코는 오빠가 확실했는데..

오랜 꽃샘추위 뒤에 늦은 봄이 오는가 싶었지만 이렇게나 더디 올 줄이야..



2022년 4월 9일 토요일,


탄천의 벚꽃이 아직은 남아 있던 4월 초, 성남 원정 경기가 있는 날이다.

친구들 중에 입담과 피지컬이 가장 좋은 친구가 성남에 살고 있어 경기 전에 만나 점심을 같이 먹기로 했다.

10년 전, 같이 가평으로 마실을 가서는 내 양손에 봉투를 쥐어 주고 호다닥 가버린 바로 그 친구다.


고기쌈까지 싸서 아주 야무지게 잔뜩 먹었다. 고마워, 정남아, 덕분에 아주 잘 먹었어~


아주 만족스러운 점심을 먹고, 시원한 커피까지 손에 들고는 경기장으로 들어섰다.

축구 해설까지 하던 그 친구는 지금 성남의 축구가 괴롭다며(?) 맛있는 점심을 같이 먹어 놓고선, 우리를 경기장에 내려준 채 그냥 집으로 가버렸다. (괴로운 건 너네나 우리나 매한가지인 거 같은데..)

믿기 어려운 3연패 뒤에 그래도 팀은 지지 않고 있었다. 

더군다나 오늘의 경기를 치르기 전에는 연승을 거두고 온 터라 지난날들에 비하면 분위기가 아주 나쁜 편은 아니었으며(물론 감독의 퇴진을 요구하는 외침은 꾸준히 이어지는 중이었다..), 순위도 믿을 수 없던 11위에서 이 경기를 치르기 전에 6위까지는 올라와 있던 상태였다.


경기는 이른 시간 구스타보 선수가 페널티킥을 성공시키며 앞서가기 시작했다.

1:0의 스코어로 전반을 마친 채 이어진 후반전에서도 오랜만에 전북다운 공격축구가 실현되고 있는 것 같았다. 끊임없이 성남의 골문을 두드리던 팀은 후반 60분, 바로우가 팀의 두 번째 골을 만들어 내면서 경기의 분위기를 완전히 가져오기 시작했고, 이후에도 공격의 고삐는 늦추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 두 골차 승리는 조금 아쉬울 수도 있겠다 싶던 후반 85분, 

지난 시즌 말미, 현대가 더비에서 가장 극적인 결승골을 만들어 냈던 일류첸코가 교체되어 들어왔다.

(일류첸코는 지난 시즌과 같은 기록은 내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출전시간도 현저히 줄어든 상태였으며, 지난 시즌 구스타보와 일류첸코 두 공격수가 만들어 낸 득점이 각각 15골이었던 것에 비하면 올 시즌엔 지난 8라운드를 치르는 동안 만들어 낸 득점이 구스타보의 단 한 골 뿐이었다)


일류첸코는 뭔가.. 팀에서 뛰었던 기간에 비해 마음이 많이 가는 선수다.

평소에도 바른 인성과 팀에 대한 애정, 그리고 성실한 훈련 태도로 소문이 자자했으며, 포항에서 뛰던 시절부터 중요한 순간마다 우리에게 도움(?)을 주기도 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주 잘생겼다. 

이런 일류첸코가 올시즌 좀처럼 기를 펴지 못하는 걸 보니 마음이 좋지만은 않았다.

그런 와중에 오늘도 교체되어 들어온 시간이 85분이라니..

하지만 우리 일류첸코에게 이번에도 필요한 시간은 단 5분이었다.

교체되어 들어온 지 3분 만에 상대 선수의 실수를 놓치지 않고 팀의 세 번째 골을 만들어 내더니, 이후 불과 4분만에는 팀의 네 번째 골이자 쐐기골까지 만들어 내며 본인의 존재감을 다시 한번 알리고 있었다.

득점 후에는 원정석으로 달려와 팬들 앞에서 보여준 세리머니에 원정팬들은 엄청난 환호로 응답해 주기도 했다. 


'일류첸코는 오빠(잘생기고 축구 잘하면 오빠라고 했다)가 틀림없었는데 의심해서 미안해!'


믿고 있었다고! 일류 오빠!


본인의 존재감을 알렸던 오늘의 경기를 계기로 일류첸코가 지난 시즌처럼 다시 날아오르길 선수도, 팬들도 바라고 있었으나 결국 오늘 기록했던 멀티골은 이번 시즌 일류첸코가 전북에서 넣었던 처음이자 마지막 골이 되었다..




2022년 7월 8일, 새로운 도전을 원하던 일류첸코가 FC서울로 이적한다는 보도가 나왔고,

나흘 뒤인 2022년 7월 12일, FC서울에선 일류첸코의 영입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아쉽긴 했지만 박수치며 보내줄 수 있는 선수였다.


모든 선수가 팀을 떠날 때 아름다운 이별을 하는 것은 아니다.

두고두고 철천지원수가 되는 이별들도 있고, 모두에게 손가락질을 받으며 떠나는 선수들도 있다. 

그리고 그런 선수들 중엔 외국인 선수들도 물론 있다.

하지만 일류첸코는 팀에서 뛰었던 기간이 고작 1년 반이었지만 충분히 박수를 받을 만한 선수였다.


비록 이적을 한 팀이 내 맘에 쏙 드는 건 아니지만 언젠가 우리와의 경기에서 골을 넣는다고 해도 나는 박수를 쳐줄 수 있을 것만 같다(물론 엄청나게 좋아하면서 세리머니까지 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지난 시즌 포항 원정에서 친정팀을 상대로 두 골이나 넣었던 일류첸코에게 포항의 팬들이 기립박수를 쳐줬던 것처럼 말이다. 일류첸코는 이만큼이나 자신이 뛰는 (혹은 뛰었던) 팀에게 정말 모든 순간이 진심인 선수다.






이렇게나 일류첸코와 아름다운 이별을 한다며 스스로를 위로하던 중, 

같은 날, 다른 보도자료에서 폭탄을 맞을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이럴 거면 잘하지나 말던가...... 나쁜 X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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