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즌부터 ACL(아시아챔피언스리그)의 참가팀 수가 늘어나면서, 조별 경기에서는 총 40개의 팀이 서로 간의 열띤 경쟁을 이겨낸 뒤, 다음 토너먼트인 16강전에 진출을 하게 된다.
2022년 ACL에서 전북현대는 조별 경기에서 3승 3무의 성적을 거두며, 무패이긴 했으나 경기력은 썩 마음에 들지 않았던 상태로 16강 진출을 확정 지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토너먼트 진출은 좋은 일이었으나 16강에서 같은 K리그의 팀인 '대구FC'를 만났다는 것.. K리그에서 16강 진출을 확정 지은 팀이 이렇게 단 두 팀이었는데 누군가는 또 금세 고배를 맛봐야만 하는 것이다.
아직은 코로나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한 터라 ACL 토너먼트는 중립경기로 결정이 됐다.
또한 대회 일정상 경기들을 몰아서 치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거의 일주일에 가까운 시간 동안 준결승까지의 토너먼트가 다 잡혀있는 상황이 이미 시작부터 쉽지만은 않은 일이었다.
동아시아 지역의 중립경기로 선택된 곳은 J리그 '우라와레즈'의 홈구장인 '사이타마스타디움'.
우라와레즈도 16강에 진출해 있는 만큼 유일하게 홈경기를 치를 수 있는 팀이기도 했다.
이렇게 ACL을 치르기 위해서는 시즌 중간에 일본으로 출국을 해야만 하는 상황,
좋은 분위기를 이어서 갔으면 좋았을 것을 직전 리그 경기에서 아쉬운 패배를 거둔 채 선수단은 일본으로 향했다.
2022년 8월 18일 목요일,
대구FC와의 ACL 16강전 경기날,
다른 대진이 뒤이어 치러지는 관계로 메인 경기장인 사이타마스타디움 대신 '우라와 코마바 스타디움'에서 경기가 시작됐다. 팀은 경기 초반부터 공격적인 분위기를 보여주긴 했으나 득점 없이 전반전은 마무리가 됐고, 후반이 시작되자마자 기회를 살린 송민규 선수가 득점에 성공하면서 경기를 앞서가는 듯 했다. 하지만 이후 10분 만에 대구에게 실점을 하면서 1:1로 팽팽하던 경기는 결국 정규시간 안에 승부를 가리지 못하며 연장전에 들어갔다.
어떻게든 이어진 연장 전후반 안에 승부를 내야만 했다. 승부차기는 절대 안 될 일이니까..
하지만 120분의 시간이 다 지나도록 결과는 여전히 그대로였고, 연장전도 추가시간에 접어들면서 이젠 서서히 체념해야 할까 싶던 바로 그 찰나, 김진규 선수가 기적 같은 결승골을 성공시키며 팀을 극적으로 8강에 올려놓게 된다.
하지만 다음 토너먼트 진출에 대한 기쁨도 잠시..
지금 이렇게나 어수선한 우리의 분위기 속에서도 120분 동안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게 뛰던 선수들의 모습에 마음이 조금씩 아려오기 시작했다.
2022년 8월 22일 월요일,
3일의 휴식 뒤에 치러지는 '비셀고베'와의 8강전 경기날이다.
지난 경기에서 90분의 정규시간을 보내고 맞이한 두 번째 경기라면 그래도 나았겠지만, 연장전까지 치른 탓에 8강전의 시작부터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다.
토너먼트는 어쩌면 이 경기가 마지막이 될 수도 있기에 두 팀 모두 득점을 내기 위해 노력했지만, 전반은 서로의 소득 없이 0:0의 스코어로 후반전을 맞이하게 됐다.
후반이 시작되고도 공격적인 모습이 계속되긴 했으나, 아쉽게도 후반전 63분에 선제 실점을 하고 말았다.
(골키퍼가 살짝 아쉬운 모습을 보이며 실점 장면을 만들긴 했으나, 결과적으로 대회를 치르는 동안 모든 선수를 통틀어 가장 잘한 건 골키퍼 '이범수'선수였다)
하지만 실망할 겨를도 없이 금세 바로우가 동점골을 만들어 냈고, 이후 계속됐던 공격적인 분위기에 역전골까지 만들어 내며 승리를 챙길 수 있었다면 더 바랄 게 없었겠지만, 좋았던 흐름에도 불구하고 결국 정규시간 내 또 승부를 가르지 못하며 연장전에 돌입하게 됐다.
두 경기 연속 연장전이라니.. 보는 우리도 이렇게 애가 타는데 뛰는 선수들은 정말 오죽할까...
그리고 무엇보다 오늘도 반드시 120분 안에 결과를 내야만 했다. 승부차기는 정말이지.. 안 될 일이다...
모두의 간절함 속에 시작된 연장전은 정말이지 긴장의 연속이었다.
이렇게 단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던 연장 전반 막판, 우리의 구스타보가 헤딩의 정석을 보여주며 만들어 낸 역전골로 경기를 앞서 가게 됐다.
문제는 이제 남은 시간을 제발 이대로 잘 버티기만 하면 되는데..
간절한 바람처럼 120분의 시간이 그대로 다 지나가고 있었고, 애가 타던 고베의 선수들은 골키퍼까지 우리 진영으로 올라와 막판 공세를 퍼부으며 경기를 이대로 끝낼 생각이 없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계속된 연장후반의 추가시간 막판,
고베가 코너킥 찬스에서 기회를 살리지 못하면서 이범수 골키퍼가 쳐낸 볼을, 고베와의 경합 뒤에 문선민 선수가 볼을 차지하더니 골키퍼까지 없는 고베의 빈 골대를 향해 질주하기 시작하면서 그대로 경기의 쐐기골을 만들어냈다. 득점 이후 문선민 선수가 했던 세리머니는 근래 가장 통쾌한 장면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고베의 선수들을 그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혔다.
그리고 팀은 이제 한 계단을 더 올라 준결승 대진에 자리를 잡게 됐다.
문선민 선수의 시그니처인 '관제탑 세리머니', J리그 애들 아마 깜짝 놀랐을 거다..
2022년 8월 25일 목요일,
두 경기 연속 120분간의 혈투를 치렀으나 고작 이틀을 쉬고 다시 임하게 된 '우라와레즈'와의 준결승전이다.
더욱이 토너먼트 대회가 치러지는 '사이타마스타디움'을 홈경기장으로 쓰는 팀인지라 시작부터 여러모로 만만치만은 않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우리도 물러설 곳이 없다. 여기까지 정말 어떻게 올라왔는데..
경기의 중요도만큼이나 선수들의 표정까지도 결의에 찬 모습이었다.
그러나 언뜻언뜻 스치는 표정들이 조금은 지쳐보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인지 킥오프 휘슬은 울리기도 전인데 마음은 일찍부터 또 안타까워지기 시작했다.
간절함 속에 시작된 경기는 전반 초반 우라와레즈에게 선제 실점을 하면서 어려운 출발을 보였다.
그렇게 한 골 차가 뒤쳐진 채로 다시 맞이한 후반전,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었던 팽팽한 승부가 계속되던 후반 초반, 송민규 선수가 얻어낸 페널티킥 기회에서 백승호 선수가 득점을 하면서 경기의 균형을 다시 맞추게 됐고, 이후에도 눈을 뗄 수 없는 양 팀의 공방이 계속되긴 했으나 결국 오늘도 또 90분 내에 승부를 가리지 못하며 연장전에 돌입하게 됐다.
세 경기 연속 연장전이다..
일주일에 360분의 축구가 정말 말이 되는 일인 건가..?
지켜보던 이들의 마음까지 초조하면서도 안쓰러운 연장전이 시작됐고, 연장 전반은 이렇다 할 소득 없이 다 지나간 채 이제 두 팀에게 남은 시간은 연장 후반뿐, 제발 이 경기도 남은 15분 안에 끝이 나야만 했다.
다시 여러 번 강조해도 승부차기는 정말이지 안 될 일이니까...
심장이 터질 것만 같은 연장전의 시간이 다 지나갈수록 초조함은 더 커져만 갔고, 그렇게 연장 후반도 5분 정도의 시간만이 남았을 무렵, 이승기 선수가 문전 앞으로 패스한 볼을 한교원 선수가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으며 기적처럼 득점에 성공하게 됐다. 보면서도 믿을 수 없던 득점 장면에 눈물인지 웃음인지 모를 환호와 서러움이 터져 나왔고, 경기장에 있던 선수들은 모두가 그라운드에 뛰어들어 얼싸안으며 기적 같은 역전골의 기쁨을 함께 나누고 있었다.
그리고 이때까지만 해도 연장 후반에 터진 이 득점으로 오늘의 승부가 이렇게 끝나는 줄로만 알았다..
순간 너무 기뻤던 한교원 선수의 역전골, 이게 결승골이 되길 그렇게나 간절히 바랐건만..
사실 남은 시간을 그저 잘 '버티기'만 하면 될 일이었다. 물론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정말 기적 같은 역전골에 '결승행은 이제 우리의 차지겠구나' 하며 경기의 추가시간에서도 종료만을 기다리던 그때, 말도 안 되게 우라와레즈에게 동점골을 허용하고 말았다...... 이때의 허탈함과 상실감이란 정말..
그리고 어쩌면 이때부터 다시 마음을 비웠는지도 모른다.
결국 경기는 승부차기로 접어들었고, 역시나 '또' 졌다. (이쯤 되면 승부차기는 고문이다)
울지 마, 너무 잘했어, 오늘! [사진출처(좌)-네이버블로그 '창룔'님]
경기의 결과가 아쉽긴 했지만 그건 정말 괜찮았다. 더 간절하게 뛸 수 없을 정도로 최선을 다했으니까,
하지만 제대로 서있기조차 힘들 정도의 선수들이 가슴 아픈 결과로 자리에 주저앉는 모습들에선 또 한 번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세 경기를 120분씩 뛰고 이 자리까지 올라와 여기서 한 경기만을 남겨둔 채 주저앉게 된 선수들의 마음은 얼마나 괴롭고 힘들지 정말 가늠조차 하기 어려웠다..
이렇게나 혹사에 가까운 대회를 치르고 귀국한 선수들은 도착한 금요일을 보내고, 또 겨우 이틀간의 시간을 보낸 뒤 포항과의 리그 경기를 치러야만 했다.
결승전만을 남겨두고 대회를 끝내야 했던 허탈감과 누적된 피로를 그대로 짊어진 채 경기장에 들어서는 선수들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아려왔으며, 그런 지친 몸과 마음들을 이끌고 경기를 뛰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아렸던 마음이 더 힘들어지기도 했다..
이날의 경기는 비록 두 골이나 먼저 내어주긴 했지만, 구스타보와 백승호 선수가 만회골을 집어넣으며 무승부로 끝이 났다. 그리고 무엇보다 승패를 떠나서 90분을 그저 버텨준 것만으로도 고마운 그런 날이었다.
ACL에 대한 아쉬움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이기지 못해도 괜찮고, 결승에 가지 못해도 괜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