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FC
여러 어수선한 상황 속에서도 다수의 팬들은 여전히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나는 정말이지 리그 우승에 대한 기대는 접어둔 지 오래였다. 우리 선수들을 믿지 못하는 것도 아니고, 응원하는 마음이 사라진 것도 아니지만 이런 분위기에 우승은 하면 안 되는 일이라는 생각이 먼저였기 때문이다.
전북다운 색깔을 잃어버린 들쑥날쑥한 경기력도 문제였지만, 무엇보다 야유와 불신의 메시지들이 뒤섞인 지금의 상황에서 혹여 그런 결과가 나온다 하더라도 온전한 기쁨을 누리지 못할 선수들과 팬들에겐 더 괴로운 일일게 분명하다. 우선 나부터도..
일본에서의 ACL(아시아챔피언스리그) 토너먼트를 치르기 전 울산과의 승점 차이는 9점 차였다.
경기력에서도 분명한 차이를 보였으며 현실적으로도 따라잡기엔 쉽지 않은 승점차였다.
하지만 ACL이 끝나고 만난 포항과의 경기에서 눈물 나는 무승부를 거둔 뒤로 팀은 지지 않고 있었다.
더욱이 연이어 무승부를 거두며 또 불안한 마음들이 이어지나 싶었지만, 31라운드 대구 원정에서 5:0의 대승을 기록한 뒤로는 4경기 연속으로 승리를 거두고 있는 중이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지난 시즌 아쉬움이 남았던 FA컵도 준결승까지 살아남아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만난 FA컵 준결승의 상대는 또다시 운명처럼 '울산현대'다.
리그도 막판을 향해 달려가는 중이었고, FA컵도 준결승을 치르면 남는 건 결승전뿐이다.
이렇게나 중요한 10월의 첫 주에 우린 수요일과 주말에 연달에 울산을 만나게 됐다.
2022년 10월 5일 수요일,
FA컵 준결승을 치르기 위해 울산문수경기장으로 향했다.
오늘이 지나면 다시 3일 뒤에 같은 곳에서 리그 경기까지 이어지기에 오늘의 경기가 더없이 중요하기도 했다.
축구는 분위기라는 게 있어 어쩌면 오늘의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는 팀이 리그까지 그 좋은 분위기를 이어갈 가능성이 컸다. 비록 그것이 우리에게 우승은 아닐지라도 말이다..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지고 싶지 않았던 경기는 전반 이른 시간 선제 실점을 하며 끌려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전반전이 끝나기 전, 울산만 만나면 정말 날아다니던 바로우가 동점골을 넣으며 경기의 균형을 맞추게 된다. (잘 지내니, 바로우..?)
그리고 이어진 후반전에서 이왕이면 승리를 거두며 승부가 결정 나면 좋았을 것을 결국엔 균형을 깨지 못하고 경기는 연장전에 돌입하게 됐다. (이쯤 되면 승부차기 전에 연장전에서부터 트라우마가 생길 지경..)
연장 전반도 서로의 득점 없이 연장 후반이 이어졌고, 혹시라도 여기서 승부차기까지 가게 되면 나는 정말이지 이 상황을 견딜 자신이 없다고 생각하며 초조해하던 그때, 지금은 세계적인 스타가 된(당시엔 제대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조규성 선수가 역전골이자 귀한 결승골을 터뜨리며 원정팬들의 환호를 이끌어 냈다.
먼저 치른 토너먼트 대회에서 승리의 결과를 마주하고 나니 비록 리그 우승은 하지 못하더라도 오늘의 경기 분위기를 이어 리그에서도 연승을 이루고 싶었던 바람까지 정말 실현이 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2022년 10월 8일 토요일,
전주에서부터 수십대의 원정버스가 줄을 지어 다시 울산으로 향했다.
배정받은 원정석이 부족할 정도로 팬들은 자리를 가득 채웠고, 간절한 마음들 또한 부족함이 없었다.
그리고 어느새 세 경기 차 이상으로 벌어졌던 승점도 5점 차까지 좁혀져 있었다.
오늘의 경기가 끝나고 나면 남은 리그 경기가 단 3경기뿐이기에 울산이 승리를 하게 된다면 우승은 거의 확정인 셈이지만, 혹시라도 만약에 전북이 승리를 하게 된다면 승점차는 단 2점으로 좁혀지게 된다.
(그래도 나는 정말 우승을 바라지는 않고 있다..)
모두의 관심이 집중된 경기인만큼 경기장의 열기 또한 매우 뜨거웠다.
양 팀 팬들의 응원소리는 경기장을 가득 메웠고, 선수들은 치열하게 그라운드를 누비고 있었다.
다행히도 전반전은 지난 FA컵의 분위기가 정말 그대로 이어진 것만 같았다.
모든 기를 모아 울산전에서 터뜨리는 게 아닐까 싶은 바로우는 역시나 이날도 울산을 상대로 선제골을 기록했다. 원정팬들의 환호는 문수경기장을 가득 채웠고, 경기 내내 이해하지 못할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정규시간 내내 팀은 귀한 선제골을 지켜가고 있었다.
(유독 오심 논란이 많은 경기였다. 물론 내가 전북팬이라 이렇게 더 느껴졌을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 모든 논란은 전부가 우리에게 불리한 작용을 한 경우들이었고, 그냥 가십거리로 넘길 만한 사항들은 아니었기에 후에 구단이 심판판정위원회에 판정에 대한 재확인까지 요청했지만 문제가 없다는(믿을 수 없는) 답변이 돌아왔다)
하지만 우리의 간절한 마음보다 3년 연속 우승 경쟁을 하면서 번번이 우리에게 가장 높은 자리를 내어줘야 했던 울산의 간절함이 더 컸노라고 이해하면 그나마 쉬운 일이 될 수 있을까..?
여러 논란 중에는 7분이라는 추가시간도 이해하기가 어려웠고, 결국엔 그 추가시간 6분에 페널티킥을 내어주고, 9분에는 결승쐐기골까지 허용하면서 믿을 수 없는 패배를 받아 들게 됐다.
물론, 우리가 끝까지 집중하며 싸워줬으면 됐을 일이다.
(당연히 선수들을 온 힘을 다해 뛰어주고 있었다, 이보다 더 할 수 없을 정도로..)
결과가 이렇게 되고 나니 이런저런 아쉬움이 더 남을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결과의 과정이 석연치만은 않은 것도 사실이었다.
이렇게나 모두에게 아쉬운 경기의 종료 휘슬이 울리고 나자 선수들은 제자리에 서있기조차 힘들어 보였다.
정말 모든 것을 다해 뛰었던 경기가 맞았기에 오늘의 이 여러 상황들이 모두를 더 마음 아프게 했다.
늘 얘기하지만 모든 것을 다해 뛰었음에도 지는 건 정말 괜찮다.
이기는 경기를 보자고 선수들 뒤에서 목소리를 낸 게 아니었으니까..
오늘의 경기는 모두가 기립박수를 쳐도 아깝지 않을 만한 내용이었다.
팬들은 그 어느 때보다 힘들었을 선수들을 향해 박수를 아끼지 않았고, 선수들은 그런 팬들에게 경기 종료 인사를 하러 다가오고 있었다. 하지만 죄인들처럼 푹 숙인 고개와 처진 어깨에 마음이 또 무너지기 시작했다.
'너무 잘했는데.. 고개 숙이지 않아도 되는데...'
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입술을 깨물고 있었지만, 거의 오열에 가까울 정도로 다가와 눈물부터 흘리는 선수들을 마주하자 원정석에서도 많은 팬들이 눈물을 참지 못하고 있었다.
오늘의 경기가 나는 진짜 괜찮았다.
서로가 각자의 자리에서 얼마나 온 마음으로 최선을 다했는지가 충분히 느껴졌으니까,
승리도, 우승도 그건 정말 다 나중 문제다.
오늘만 같다면, 이런 믿음들만 서로 계속된다면,
우리들의 동화는 분명히 해피엔딩으로 쓰일 거라고 믿으니까..
<결국 이날의 경기로 한교원과 맹성웅 선수는 뇌진탕 진단을 받았으며, 더욱이 맹성웅 선수는 광대뼈가 골절되는 부상까지 입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교원 선수의 머리를 스터드로 가격한 설영우 선수는 고작 경고를 받는 데 그쳤고, 맹성웅 선수에게 과격한 파울을 범한 김영권 선수는 경고조차 받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