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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윤성 Sep 06. 2021

한 끼

온전한 한 끼가 주는 어떤 장면..

 작은 것들에 주목하고 살다보면 세상이 문득 지나치게 크게 느껴질 때가 있다.

폐지줍는 할머니, 고철을 수거하는 아저씨, 야채파는 아주머니, 큰 대로변에 혼자 걸어가는 나이어린 초등학생, 묻혀진 시가지 사이 테이블 없는 치킨집, 비오는 날 도로공사하는 인부들. 왜 아무도 관심없을 법한 사람들이지만 제일 '중요한 사람들' 그 장면들에 자꾸만 눈이 가는지. 무슨 운명같은 것인지. 그냥 내가 아무런 생각이 없는 것인지.


그들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다보면, 여러갈래의 감정이 모여졌다 흩어졌다 춤을 추다가 갑자기 내가 눈물을 흘리게 하기도 하고, 신나서 발걸음을 꼬이게 하기도 한다네. 그들의 거처는 어디일까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갈까.그런 생각들을 하다 머무르는 매번 그 강남역 사거리에서 신호대기를 할 때마다 우리네 인생이 꼭 이 교차로 같다며,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관심도 없지만 우리는 이 공간에 잠시라도 함께있는게 아닐까라며, 그리고 서로가 서로를 도우면서 산다는 그 아주 흔하지만 귀한 사실을 묵시한채 신호등만 바뀌기를 하이에나처럼 바라보는 우리네 인생 같다며.


그러다가 문득 당이 떨어지는 것을 느낀다. '생각 좀 덜 하고 살아야 할텐데'

어제먹은 술 탓인지 아침도 먹지 않고 나와서 오전 내 한 회의 때문인지. 이유를 생각하기도 싫을 만큼 눈앞이 캄캄해질 만큼 내 활동을 마비시키는 그 '포도당 부족' 때문에 미칠 노릇이다. 죽겠다. 차 안의 씹을거리들을 찾아 차 안을 뒤적이다 뒤 차에게 욕을 먹고 밥을 먹고 다시 가야겠다 생각한다.


주유소 옆 작은 기사식당에 들러 썬글라스 눌러쓴 기사님들과 부비부비하며 백반을 주문하고 나면 그 시간이 마치 영겁같이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전유물은 아니리라. 이내 된장국 한 숟가락 떠먹으면 정수리에서 폭발하는 아드레날린과 발끝까지 개운한 그 해방감, 살아있음, 일종의 무력감, 유한함, 감사함, 노곤함 온갖 감각적인 형용사를 갖다붙여도 설명이 안되는 그 상태로 접어들고 나면 결국 인간사 다 똑같다는 생각에, 아니 사실 아무 생각 못하고 입에 쑤셔넣기 바쁘다. 삶이란 그런데서 출발한 것이다. 아니 정확히는 그런 것을 무시하고는 아무 것도 못하는 존재가 인간이리라.


먹어서 병이 생기는 시대이다. 먹고 먹고 구강으로 대표되는 인간 심리의 기원은 애기들이 물고빨고 하는 쪽쪽이라는 기가막힌 발명품을 보고 있노라면 입은 단지 먹고 숨쉬는 구멍이상의 어떤 의미와 기능을 갖고 있다는걸 우리는 안다. 마스크를 쓰고 다니면서 그 존재감이 더더욱 도드라진 요즘이다.


요리. 고등어를 굽고 미역국을 끓이고 계란말이를 하고 밥을하고 젓갈을 담고. 우리 식구들 밥상을 차리다보면 그런 '중요한 사람들'이 떠오르곤 한다. 밥 한끼를 위한 좋은 상차림 한 번이면 여럿이 행복을 나눌 수 있고, 그런 따뜻함이 음식을 섭취한다는 것 이상의 큰 의미를 준다는 것을 우리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느낀다. 꼭 집에서 먹지 않더라도, 기사식당에서 먹는 밥 한끼, 구내식당에서 주는 밥 한 끼면 우리는 든든함과 살아가는 동력을 제공받는다. 그러나 흔하디 흔한 한끼를 어떤 때는 누군가는 참 접하기 힘든 것이리라.


대전역 뒷편 쪽방촌에 가면 사람 한면 드나들기도 힘든 골목 끝에 집이 있다. 우리는 흔히 '재개발 지역' 이라 부르고, 지금은 일부 재개발이 되었지만, 그 곳엔 수도도 가스도 변변치 않은 주방이 있다. 먹는 것은 어떠하랴, 온기는 어떠하랴, 작은 시골마을 논두렁 사거리보다 못하게 사람이 다녀가지 않는 곳이다.

그런 이들을 생각한다.


우리가 보지 못하고 보고 싶어하지 않지만, 분명히 그곳에 있는 그런 사람들을 생각해본다.

그리고 따뜻한 밥 한 끼, 김나는 쌀밥, 달그락 거리는 그릇소리 이런 흔하디 흔한 것들이 존재하지 않는 그런 공간에서 무언가를 어떻게 해줄 수 있는가 고민해본다. 아직 어떤지는 모르지만 그런 씨앗이 어디에 있을까가 아니라 내 안에 심고 기르다보면 어느 순간 임계점에서 만나는 또 다른 나 자신과 손 잡고 어떤 일을 할 수 있게 될 것 같은 확신에 서있다.


스승님이 남긴 말처럼 우리는 우리가 가진 의도대로 살아간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우리가 의도하는 곳에 와 있다. 그런 점에서 의도와 태도는 가장 강력하다. 나의 의도는 그러하다. 가장 낮은 곳에 어두운 곳에 있는 사람들을 보고 느끼고 같이 가려고 하는 내 의도를 아직은 아무도 모르지만, 말에 불과하지만, 이미 와 있는 그곳에서 내 마지막 그림을 다시 한 번 그려본다.


그렇게 하기 위해 오늘 좋은 밥 한 끼 먹는다.

깊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대접받는 마음으로 먹는다.


Br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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