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길 바라면서도, 비가 그치길 바랐다.
출발 전 창가에 서서 한참을 바라봤다. 잔잔한 빗방울이 유리창에 흩뿌려졌다가 아래로 미끄러져 내렸다. 오늘은 무대에 서기로 한 날이었다. 빗소리가 커질수록 마음은 이상하게도 편안해졌다. 오늘은 가지 않아도 되는 걸까, 아직 준비가 덜 되었다는 핑계를 내세울 수 있는 걸까.
그런데 만약 비가 멈추지 않는다면, 오늘을 위해 준비했던 모든 시간은 허공에 흩어지고 말 것이다. 내가 쌓아 온 연습과 기대가 단지 날씨 하나에 무너져 버린다면, 그것만큼 허망한 일이 또 있을까. 그러니 또, 비가 멈추길 바랄 수밖에 없었다.
약속된 시간에 가까워질수록 빗줄기는 점점 가늘어지더니, 마침내 그쳤다. 우산을 접고 걸음을 옮기자 젖은 도로가 은빛으로 번들거렸다. 피하고 싶던 마음과 나아가고 싶던 마음, 그 두 가지가 한꺼번에 발 밑에서 반짝였다.
무대 위에 섰을 때, 나는 알았다. 비가 오기를 바란 것도, 그치기를 바란 것도 결국 같은 마음이었다는 걸. 두려움과 열망은 언제나 맞닿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