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정처 없이 걷다 보니 어느덧 해가 지고 있었다.
머릿속엔 닥치지도 않은 오만가지 생각들이 끊임없이 가지를 치며 절망의 늪으로 한 없이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결국 깊숙한 늪의 끝에 머리끝까지 빠져버려 헤어 나올 수 없음을 자각한 나로선 삶에 희망이 사라져 버렸다.
'넌 여기서 끝이야.'
귓속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한 없이 눈물이 흘렀다. 그리고 나의 발걸음은 이름 모를 빌딩의 옥상을 향해 걸어 올라가고 있었다.
옥상에 올라갔을 때 세상과의 마지막을 슬퍼라도 하는지 하늘에선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가을 끝무렵 내리는 비는 온몸으로 파고들어 온몸에 한기로 휘감는다. 온몸의 떨림과 이빨의 부딪히는 소리가 느껴지며 두려움에 휩싸인 나는 살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지만 누군가 나를 저 아래로 끌어당기는 것만 같았다.
한걸음 한걸음 난간을 향해 걸어가고 있을 때 쟈켓 안주머니 안에서 전화벨 소리가 울린다. 자리에서 멍하니 소리만 듣는다. 이내 전화벨이 끊어진다. 잠시 눈을 감고 한 걸음 뗄 무렵 다시 전화벨이 울린다.
아무 생각도 없었던 나는 무심결에 쟈켓 안주머니에서 전화기를 꺼내 들고 전화를 받는다.
"어! 자네~ 지금 어딘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어르신이었다.
무서움에 휩싸인 나는 어르신의 목소리가 들리자 참았던 설움이 폭발하며 목 놓아 울기 시작했다. 한참 후에야 전화기에 대고 한마디 던진다.
"살... 고 싶..습....니..다...." 난 복받치는 울음 속에 한마디를 수화기에 내뱉었다.
"알았으니깐, 지금 어디냐고!" 어르신의 다급한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내가 그 회사에 입사하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1년 정도 쉬다 체력이 돌아오면 복학을 생각하고 있었다. 회복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내 몸상태는 다행히도 휴식을 취한 지 한 달도 채 안 돼 몰라볼 정도로 좋아졌다.
내가 운영하는 서버 기술의 분산 스트리밍 기술과 내가 직접 제작 관리하던 여러 모습이 그 회사 연구소장은 인상 깊이 보았는지 조건 없이 입사 제안이 들어온 것이다. 언 일 년 간 사회와 담쌓고 살던 나로선 일면식도 없는 사람으로부터 기술력 인정과 입사 제안은 거절할 수 없는 달콤한 꿀과도 같았다.
사회로의 본격적인 진출이냐 복학이냐를 고민하던 중 한 번도 내 고민이나 진로에 대해 엄마에게 말해 본 적 이 없었는데 그날은 불쑥 고민을 털어놓았다.
"다시 일하면 힘들지 않겠어? 그냥 공부마저 끝마치지." 걱정스러운 엄마의 모습이 표정으로도 그려진다.
"이젠 다 괜찮아졌어. 근데 엄마, 내가 그 회사 다니면 너무 멀어서 그 회사 근처로 자취방을 얻어야 될 거 같아."
"많이 멀어?"
"대중교통도 없고 그렇다고 거길 차로 출퇴근 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더라고."
".... 네가 선택한 거니깐 네가 알아서 해. 그동안 네가 알아서 잘 컸잖니."
그렇게 말하는 엄마의 모습엔 조금은 섭섭함이 묻어나고 있었다.
처음 방을 구하기 전까지 일주일 정도 출퇴근을 시도하며 사업할 때보다 더한 극한의 고통이 느껴지며 회사 인근 찜질방에서 지내기도 했었다. 서울 도심의 조그만 자취방이라지만 월 내야 하는 비용이 만만치 않음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지만 교통비보다는 적게 나오고 걸어서 십 분거리라는 게 너무도 매혹적이었다.
회사 생활은 처음인 나로선 적응을 잘 못할 거라 생각했는데 일 년 전 품고 있었던 사업가로서의 당당함을 그대로 드러내며 일을 하다 보니 그들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질 수 있었다. 다만, 이 녀석들은 도통 집에 갈 생각들을 하지 않았고 새벽 2시가 넘는 시간에야 겨우 도망치듯 자취방으로 돌아가기 일쑤였다.
주말도 없이 언 세 달 넘게 회사에 매달려 살다시피 했다. 회사 적응은 바로 할 수 있었지만 산더미처럼 몰려오는 일과 새벽까지 일하는 조직 특유의 문화는 개인 생활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조금의 여유라도 생길 때면 조그만 자취방에서 하루 종일 자기 바빴고 점점 틀에 거쳐가는 생활에 익숙해져 가고 있었다.
벚꽃이 화사하게 핀 화창한 봄날 끝 무렵에 다다르고 있었다. 모처럼 팀 회식이 자정이나 새벽이 아닌 남들과 같은 저녁 시간대에 잡히게 되었다. 하지만 몸과 마음이 지쳐 있었기에 회식보다는 일주일 정도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기에 회식은 또 다른 업무의 연장처럼 느껴지며 아침부터 마음이 무겁기만 했다.
벚꽃이 절정에 달했을 때 항상 비가 오며 그 끝을 알려주었는데 역시 올해도 여지없이 며칠간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가기 싫은 회식에 비마저 오니 얼굴은 오만상을 쓰고 있었다.
그렇게 회식자리에 삼삼 오오 모여들기 시작할 무렵 핸드폰으로 강한 진동이 울린다. 맞선 전화번호가 찍혀 있어 끊을까 고민하다 전화를 받는다.
"강민수 씨 맞습니까?" 수화기 너머로 굵직하고 딱딱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제가 강민수인데요."
"수원 중부 경찰서 형사계 김대룡이라고 합니다. 혹시 이진선 씨 아들 맞으신가요?"
"네, 제가 아들입니다. 무슨 일이죠?"
"병원 응급실에 들어온 신원이 확인되지 않는 사람들을 조사하던 중에 이진선 씨 신원이 확인되어 연락드리게 되었습니다."
"네? 저희 어머니가 응급실에 계신가요?"
"네, 지금 수원 있는 성빈센트 병원 응급실에 계시고 현재 일주일 가량 입원해 계셨습니다. 혹시 최근에 어머님과는 연락을 하지 않았습니까?"
"네... 근래 업무로 인해 엄마에게..."
난 전화를 끊자마자 바로 병원을 향해 달려갔다.
병원에 도착해 엄마의 이름을 말하고는 보호자라 밝히자 쉽게 안내를 받을 수 있었다. 응급실로 가는 동안 숨이 막혀오고 다리가 떨려 도저히 걸을 수가 없었지만 마음을 졸이며 응급실 안으로 들어갔다.
평상시 엄마의 모습보다 상당이 부은 얼굴이 보였다. 순간 왈칵 눈물이 쏟아지며 침대로 달려들었다.
"왜 엄마가 여기 누워있어!!" 난 미친 듯이 외쳐대며 울고 있었다.
잠시 후 담당 의사가 왔고 울고 있는 나를 진정시키며 엄마의 상태를 이야기해 주었다.
"지금 일주일째 의식이 없는 상태인데 살아 계신 것도 대단하신 겁니다. 처음 응급실 입원 시 뇌혈관 파혈이 보였지만 보호자가 없는 상태여서 바로 수술 진행을 하지 못했습니다. 아마 수술 진행 했더라도 온전치 못한 상태였을 겁니다. 지금 까지 살아 계신 것도 대단하지만 오늘이 고비일 것 같습니다."
청천벽력의 소리가 아닐 수가 없었다. 단지 엄마와 몇 개월 떨어져 지냈을 뿐인데 왜 엄마가 이런 곳에 누워 있고 그것도 오늘이 고비라 하는데 전혀 실감 나지 않았다.
종교는 없었지만 엄마의 손과 발을 주무르며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제발 우리 엄마 살려 달라며...
23시 10분,
"23시 10분, 환자 이진선 씨 사망하셨습니다." 의사의 사망선고가 내려졌다.
불과 두 시간 만에 엄마가 돌아가셨다. 왠지 나를 보고 가시려고 버티고 계신 느낌마저 들었다. 너무도 허무했다. 아니 너무도 괴로웠다.
장례를 어떻게 치를 거냐는 병원 직원의 물음이 귀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다그치듯 재촉하는 그들의 말이 귀에 들어올 즘 난 겨우 엄마의 유일한 혈육인 외삼촌에게 전화를 했다.
오십 분이란 시간을 남기고 돌아가셨기에 짧은 삼일장 중 하루가 그냥 사라져 버렸다. 그마저도 아들을 배려해주려 하셨단 말인가.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