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어르신과 함께 인근 해장국집으로 들어왔다.
삶의 끝에서 누군가 붙잡아 주길 간절히 빌고 있었고 그때 어르신의 전화는 한줄기 빛과도 같았다. 난 순한 양이 되어 어르신의 지시대로 옥상에서 내려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르신은 황급이 이곳으로 달려오셨다.
"그래 그동안 마음고생 많았네."
"..."
"잘해왔고 앞으로 잘될 거야."
"죄...죄..송..합니다."
"죄송할게 뭐 있나? 내 하나 얘기할 게 있는데 들어줄 수 있나?"
"네..."
"십 수년 전 일이지. 내가 운영하던 회사가 한순간에 부도 위기에 처했었어. 나라에서 지원하던 사업이었고 정책이 바뀌었다고 우린 졸지에 그동안 맺고 있던 계약을 송두리째 잃어버리게 되었네. 백방으로 뛰어다녀도 돌아오는 건 법령이 바뀌어 어쩔 수 없다는 말뿐이었지. 친밀하게 관계를 유지하던 공무원들 조차 한 순간 부서 이동으로 의지할 사람 한 명도 없다 보니 앞날이 캄캄해지더구먼. 당장 다음 달 직원들 월급부터 생각하니 뭘 어떻게 해야 될지 머릿속이 하얘지더군.
시간이 흐를수록 직원들도 하나 둘 동요하기 시작하고 그 어느 곳에서도 우리를 돌봐 주려 하지 않았다네.
난 결국 여기까지가 마지막이란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철물점에서 두툼한 로프 한 줄 사들고는 야산으로 올라가기 시작했어. 어찌나 억울하고 서럽던지 누구에게 시원하게 말이라도 하고 갔으면 하는 생각이 밀려오더군. 그 자리에서 난 소주를 한 병 다 마시고 나무에 로프를 걸고 있을 때 사람 소리가 나는 게야."
"아저씨! 남의 집 뒤편에서 뭐 하시는 거예요? 아니, 죽으려면 한강 다리 가서 뛰어내리시던지 무슨 원한이 있어서 여기서 이러시는 거예요!"
"아줌마가 나랑 무슨 관계인데 그러시는데요?"
"관계가 아니라 내가 사는 집이 바로 이 앞 지금 보시는 이 집이라고요!"
"알겠소! 내 딴 데로 가면 될 거 아니요!"
"아니, 연배도 비슷해 보이시는 분이 앞으로 살 날이 태산 같은데, 어찌 자기 몸 귀한 줄 모르고, 어디 그 사연이나 좀 들어 봅시다!"
난 그때 화도 치밀기도 하고 한편으론 하소연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기에 그 여성분에게 내 사정을 털어놓게 되었지. 한참을 얘기했지만 그분은 내 말을 다 듣고 계셨어.
"사정이 참 딱하게 되셨네요. 일단, 제가 좀 알아봐 드릴게요."
"네? 뭘 어떻게 알아봐 주신다는 거예요?"
"지금 이 앞에 보이는 담장 보이시죠?"
"네, 보입니다."
"여기가 높은 분이 사시는 집이에요. 제가 저곳에서 일하고 있어요. 힘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 관련된 부서가 어디인지만 알려주시면 제가 한번 확인하고 전화드릴게요."
"아니.. 그게...."
난 그때 그분이 그렇게 말하는 게 고맙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반신 반의 하며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상세히 알려드렸어. 그리고, 내 전화번호를 건넸고 그때 내가 경황이 없어서 그분 전화번호를 받지 않고 내려왔지 모게나.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며 연락처를 받아오질 않았다는 걸 알게 되었고 이걸 믿어야 되나 말아야 되나 수시로 요동치는 불안함에 난 더욱 극심한 고통을 느낄 수밖에 없었네. 그런데 마침 그때 그분께서 전화를 주셨다네.
"안녕하세요. 얼마 전에 뒷 산에서 뵙었던.."
"아.. 네.. 안녕하세요! 연락 없을 줄 알았는데 전화 주셨군요."
"전화드린다고 했잖아요. 세상 속고만 사셨나 봐요. 일단 말씀 주신 내용을 저희 사모님께 말씀드렸어요. 뒷산 얘기도 꺼내니 어찌나 안타까워하시던지 바로 다음날 관련부서 내부 실사가 있었던 거 같아요.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주변에서 들리는 말에 의하면 그쪽 몇몇 사람이 연루된 거 같더군요. 바로 감사에 착수했다고 하니 조만간 좋은 소식이 있으실 거 같아요."
"저... 정말입니까?"
"그럼 뭐 농담하겠어요? 일단 마음 놓으시고 잠시만 기다려 보세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선생님은요. 무슨...."
"제가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존함이라도 알려주십시오."
"아휴 됐어요~."
"선생님! 제 생명의 은인이십니다! 존함이라도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진선이라고 합니다."
"제가 일 잘 마무리하는 데로 이 선생님을 찾아뵙겠습니다."
난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거기서 우리 엄마의 이름이 나올지는 상상도 못 했다.
"그런데 이런 우연히 어디 있겠나? 자네 집안이 날 두 번이나 살렸지 않나. 솔직히 말해 난 그 후 자네 어머님에게 지속적으로 연락드렸어. 한몇 개월 지났을까. 자네 어머님이 독신이라는 걸 알게 되고는 난 더욱 자네 어머님에게 온 열정을 다 쏟았지. 그렇게 자네 어머님과 천천히 친분을 쌓아갔어. 시간이 꽤 지났을 무렵 자네 어머님이 처음으로 내게 전화를 했었네. 정말이지 처음 그분이 내게 전화를 한날이었어."
난 엄마로부터 한 번도 누군가와 만나고 있다는 사실조차 듣지 못했다. 아니 엄마 성격상 얘기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오늘 시간 되시면 저녁에 식사라도 함께 하시죠?"
"어휴, 저야 영광이죠! 제가 모시러 가겠습니다."
"아니에요. 7시경에 늘 보던 곳으로 가도록 할게요."
"네, 여사님 그럼 그때 뵙겠습니다."
우린 그렇게 오붓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어. 그런데 말이지. 그날따라 자네 어머님이 무척이나 외롭고 슬퍼 보이더군. 늘 만남을 가질 때면 식사만 간단하게 하고 헤어졌는데 그날은 자네 어머님이 처음으로 술을 다 드시더군. 그 모습이 어찌나 처량해 보이던지 그게 아마 발단이 되었던 거 같아."
"이 여사님 오늘은 무슨 불편한 일이라도 있으세요?"
"불편은요. 제가 그렇게 보여요?"
"네, 지금 상당히 심각해 보이는 게.. 어디 아프시기라도 한건가요?"
"아프긴요. 아무렇지도 않아요."
그렇게 말을 주고받던 중 내가 괜한 말을 꺼냈어.
"저.. 여사님, 우리가 그동안 보아온 횟수도 꽤 되고 남은 여생 여사님과 함께 즐거운 시간으로 채우고 싶습니다."
갑자기 여사님이 울먹이시는 게야. 내가 얼마나 당황했는지 몰라. 잠시 후 여사님이 화장실 다녀오시겠다고 나가셨어. 그게 자네 어머님 마지막 모습이었어.
시간이 흘러도 돌아오지 않아 전화를 해보니 전화기마저 꺼져 있어 내가 괜한 말을 해서 화를 자초한 거 같아 스스로 자책하며 자리를 잃어 서고 말았지. 그때 자네 어머님을 찾으러 다녀 봐야 했었어. 그 후 자네 어머님과는 연락이 되지 않았고 어느 순간 전화번호 마저 다른 사람으로 변경이 되어 있어 난 이상한 느낌이 들었지. 그래서 난 사람들을 시켜 자네 어머님의 행방을 확인해보았는데 결국 돌아온 건 자네 어머님의 부고 소식이었지. 그 소식을 들었을 땐 세상 모든 걸 다 잃은 것만 같은 느낌이었어. 내가 그렇게 고통 속에 자네는 신경도 못 쓰고 몇 년의 시간을 자책 속에 살아갔는지 모르겠네. 그러다 나도 안정을 찾을 수 있게 되었고 지금껏 살아왔네. 그런데 말이야, 단 한 번도 내 꿈에 나오지 않던 이여사님 내 꿈에 불쑥 나타난 게야. 처음 내가 산에 올랐을 때 모습이었어.
"회장님, 안녕하셨어요?"
너무도 반갑고 그 화사한 모습에 난 어찌할 바를 몰랐네.
"회장님, 내일은 어디 나가시지 말고 오랜만에 저와 함께 오붓한 시간 보내시죠?"
"아니, 이 여사 이 얼마 만에 봅니까!"
난 너무도 감격에 휩싸여 한참을 이여사와 대화를 나눈 것 같아. 그런데 그게 꿈이었더구먼. 꿈에서 깨고는 그 공허함 속에 이 여사를 마지막으로 본 그날이 떠오르기 시작하며 내 마음이 다시 요동을 치더군. 안 되겠다 싶어 몇 안 되는 친구 녀석 얼굴이나 볼 겸 그 사우나에 찾아갔던 게야.
자네가 날 구해준 바로 그날이었어.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