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6부, 스쳐가는 날처럼
눈을 뜨지 못할 만큼 눈부시게 밝은 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난생처음 느껴보는 희열이 느껴지고 흐릿한 몽롱함이 지금 어디 있는지 조차 구분할 수 없었다. 멀리서 누군가 내게로 다가오는 모습이 모습이 보인다. 낯선 환경, 낯선 곳이지만 포근함이 느껴졌고 언젠가 와본 것만 같은 느낌마저 들기 시작했다.
"엄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토록 보고 싶었던 엄마의 얼굴이 내 눈에 들어왔다. 화사한 원피스를 입고 내가 기억하는 엄마의 젊은 시절 모습으로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아들."
환하게 웃어주는 엄마의 얼굴 그리고 다정하게 불러주는 한마디에 난 왈칵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고생 많았어, 아들. 많이 힘들었지?"
난 엄마를 쳐다보며 어린아이가 된 듯 복받치는 설움에 하염없이 울고 있었다.
엄마는 내 등을 쓰다듬으며 한참을 그렇게 안아주었다.
"엄마가 떠나고 혼자 잘 컸네. 우리 아들."
내가 진정될 무렵 차분한 목소리로 내게 말을 건넨다.
"자, 아들 이제부터 잘 들어. 여긴 아직 네가 올 곳이 아니야. 네 염원이 하늘까지 닿아 잠시 중간계에 머물고 있는 거야. 지금 돌아가지 않으면 영영 돌아가지 못해. 엄마가 알려주는 데로 바로 나가도록 해."
"엄마, 더 있다 가면 안 돼? 엄마가 그때 나한테 전화한 거 맞지?"
엄마는 온화한 미소와 함께 내 등뒤 쪽을 손으로 가리켰다.
"자, 아들! 빨리 저곳으로 나가도록 하렴. 시간이 얼마 없어."
난 떼쓰는 어린아이처럼 엄마의 손을 잡고는 꿈적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잠시 뒤,
엄마의 등 뒤 먼 곳에서 검은 소용돌이가 우리 쪽으로 몰려오고 있었다.
엄마는 온화했던 얼굴은 순간 굳어졌고 다급히 내 손을 잡고는 달리기 시작했다. 난 영문도 모른 채 알 수 없는 공포감속에 달리기 시작했다. 검은 소용돌이가 우리 쪽으로 거의 다가올 무렵 엄마는 다급히 내게 말했다.
"자, 어서 이곳으로 들어가!"
난 마지막 엄마의 모습을 보며 이내 손을 놓고 그곳으로 뛰어 들어갔다. 한참인가 어디론가 빨려 들어가며 희열감은 순간 사라지고 극심한 어지러움과 엄청난 고통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눈을 떴을 땐 난 어느 폐지더미 위에 드러누워 있었다. 가랑비가 내리고 있었고 순간 극심한 추위와 함께 온몸에 고통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난 천천히 일어나 주변을 살피고 있을 때 안주머니에서 전화벨 소리가 났다.
"자네! 지금 어디인가?"
지금 상황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이곳이 어디인지도 분간할 수 없었다.
"저... 지금..."
"그래, 지금 어디야?"
그때 불쑥 머리를 스쳐가는 한 장면이 떠올랐다. 어르신의 전화를 받고 내려 올려할 때 순간 미끄러져 내가 건물 아래로 떨어지던 기억. 그리고는 '이제 모든 게 끝이구나'라고 생각하며 내 모든 기억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던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른 것이다.
갑자기 허무함이 몰려왔다.
"아.. 네. 어르신 그 건물 앞에 있습니다."
난 그곳에 그렇게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난 어르신의 도움으로 아는 지인 분이 운영하는 화물 운송회사에 들어가게 된다. 그곳에서 일을 배우며 이년 째 되는 해에는 내 차를 마련하고 독립하여 그래도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일이었지만 난 하루도 쉬지 않고 일했고 집에는 한 달에 한두 번 갈 정도로 일을 배우고자 열심히 노력했다. 그 덕 분인지 내 성실성은 회사에도 알려지게 되었고 이년이 조금 넘을 무렵 회사 사장의 제안으로 독립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다.
그렇게 삼 년이 지날 무렵 거래처가 늘어감에 따라 두 명의 기사를 채용하고 한대의 차량을 더 매입하여 사업으로 확장하기 시작했다.
내 차량을 운행할 보조기 사는 6개월 여 일을 가르치며 인수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고, 다른 한 기사는 경력자였기에 큰 신경 쓰지 않고도 무난하게 일을 처리하였다.
그렇게 보조기사와 업무 인수 마지막 날 부산에서 인천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새벽 4시경 인천에 도착해 물류단지로 가고 있었다. 운전하며 가장 힘든 날이 비 오고나 눈이 오는 날인데 하필 마지막 업무 인계날 비가 오고 있어 은근히 불편한 마음이 들고 있었다. 그래도 마지막 날이니 물건 실어 놓고 보조석에 앉아 있는 동생 녀석과 함께 삼겹살에 소주나 한자나 할 생각을 하니 엉덩이는 들썩 거렸다.
언 6개월 여 함께 일하며 나이차이는 십오 년은 났지만 물불 안 가리고 열심히 해준 덕에 나도 마음을 열게 되었고, 사장이란 호칭보단 형 동생이란 호칭을 사용하게 하여 친형제 못지않은 우정을 쌓을 수 있었다.
"창범아, 좀 있다 삼겹살로 먹을래? 돼지찌게로 먹을래?"
난 신난 말투로 동생에게 물으며 옆을 돌아보는데 순간 동생의 눈이 동그래지며 하얗게 질리는 표정을 볼 수 있었다.
순간 나도 놀라 앞을 보니 대로 한복판에 사람이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머릿속은 하얗게 변하며 순간 급 브레이크를 밟는데 상당한 굉음과 차량이 요동치기 시작하는데 빗길이라 차가 미끄러지며 끝내 전복되고 말았다.
차가 전복될 때 한복판에 서 있던 사람 옆으로 스쳐 지나가는 가는데 그때 난 서있던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지난번 꿈에 본 것처럼 정지된 영상처럼 천천히 시간이 흐르며 그의 눈과 마주쳤다.
그 녀석이었다.
차는 한없이 미끄러져 갔고 가드레일을 들이받으며 다리 아래로 곤두 박질 친다.
시간은 멈춘 듯 모든 기억이 되새겨지며 마지막 잔잔한 미소가 입가에 드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