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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규민 Kyumin Ko Oct 07. 2022

세계관 구축과 확장, 그리고 충돌

글을 쓰는 이유

사실 글을 쓰기 시작한지는 그렇게 오래 되지 않았다.


대신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한 지는 5년, 6년 정도 된 것 같은데, 언젠가 디자인에 대한 생각과 인사이트들로서 글을 쓰고 그것을 담은 나만의 책을 한번 내보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설계들과 그때는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작업들을 우선순위에 놓고 지내게 되었고 글을 쓰는 욕구는 한쪽 깊은 구석에 놓아 두었던 것 같다.

하지만 논문을 쓰기 시작하면서 글을 쓰고 싶어하는 욕구는 다시 스멀스멀 올라오게 되었는데, 처음에 글을 흐름을 잡아놓고 서론 본론 결론의 논리 구조에 맞추어서 한번에 쓰는 과정에서 어떻게 단어를 선택하고 문장구조를 어떻게 배치하느냐에 따라 논문의 억양과 문단의 뉘앙스가 달라지는 것이 매력적으로 다가왔었다.


그러하여 1년 전부터 브런치 작가의 서랍에, 그리고 메모장에 글을 써보기 시작했다.

우선 글을 쓴다고는 하고 끄적이는데 어떤 성격의 글을 쓸 것인가가 필요했다. 사실 그러한 것을 선택한 이유는 개인적인 경험에서 도출되는데, 나는 주변에서 글을 쓰고 그것을 기록으로 남기는 사람 중에 자신의 경험에 빗댄 지극히 주관적인 글이거나 피상적인 정보의 나열 및 정리의 글을 보며 느낀 점이 많았다. 그러한 글도 물론 일상생활을 정리하고 자아성찰에 좋지만 나는 다른 종류의 글을 쓰고 싶었다.


글을 쓰는 것도 상업적인 글이 있거나 다른 사람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글이 있고 개인적인 에세이가 있겠지만, 그 성향들로 글의 성격을 나누자면 나는 딱 그 중간 성향의 글을 쓰고 싶었다. 한마디로 글 자체가 전체적으로 다듬어져 있어서 내 글을 보는 사람들이 같이 공유하고 의견을 나눌 수 있으면서도 또한 블로그 같이 매우 사적인 글도 아닌, 그런 성향의 글을 원했다. 글을 쓰던 초창기에는 그런 글을 원하고 있다는 감정이 우선이였다. 욕구가 먼저였고 이유가 다음이었다. 하지만 글을 쓰고 나의 생각들을 정리하면서 나는 내가 글을 쓰는 이유에 대하여 몇가지 뚜렷한 특징들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나의 세계관 구축


글을 기고하기 위하여 처음 한 행위는 한 건축가의 작품들을 전부 살펴보고 경향성을 내 기준으로 도출해보는 것이었는데, 이러한 특성들은 지극히 개인적으로 내가 영화를 보는 순서에 기반된다.

영화를 볼 때도 나는 한 장르의 영화만 골라 보는 것이 아닌, 리들리 스콧이나 드니 빌뇌브 등의 영화를 만든 감독을 한번에 몰아보는 취미를 가지고 있다. 그렇게 되면 영화의 세계관을 구축하는 감독의 시점에서 시간이 달라지거나 만나는 배우에 따라 달라지는 영화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찾아내는 재미가 쏠쏠하다.


예를 들어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감독인 웨스앤더슨의 영화 프랜치 디스패치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배우와 연출구성이 거의 흡사하지만 스토리나 플롯의 구성의 차이가 존재한다. 마찬가지의 이유로 한 명의 건축가나 건축회사의 작업들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건축 세계관 혹은 가치관이 형태상이나 매스에서 드러나거나, 나마 받을 수 있다. 그렇게 하다보면 하나의 경향성을 얻은 것과 같은 느낌을 받으며 행위를 반복하면 디자인에 대한 견해와 이해가 확장되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견고한 세계관


그리고 그런 세계관은 내가 글을 쓸 때 더 견고해지고 논리가 잡히게 된다. 우선 글을 쓰는 행위는 나의 생각들을 시각정보로 교환하는 행위 중 일부분인데, 어쨌든 다른 사람들에게 공유할 정도의 생각은 내가 어느 정도 정리가 끝난 후에 글을 시작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래서 관련 논문 및 자료, 책 같은 다른 시각자료를 레퍼런스로 삼게 되고 그것을 다시 내것으로 소화시키는 과정에서 지식이 견고해지고 단단해진다.


또한 요즘 가지고 있는 생각인데 내가 나를 잘 알고 세계관을 풍부하게 해야하며 가치관을 확실히 해야지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 또한 수월하다고 느낀다. 혹시 어떤 사람이 관심사가 나와 다르면 내가 가지고 있는 경험과 생각들이 그 사람과 대화를 하면서 동이 나며 밑천이 드러난다는 느낌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어떻게 보면 새로운 사람과 대화를 한다는 것은, 혹은 연애를 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살아오고 축적한 아카이브와 세계관과 내 세계관이 충돌하는 행위라고 여겨진다.


서로 다른 두 세계관은 충돌하면서 대화를 통해 알아간다. 그럴 때 나는 내 세계관이 확고해야지 다른 사람이 어떤 주제와 화두로 말을 하게 되었을 때 나의 경험을 토대로 생각을 교환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어떤 사람은 살아온 경험과 지식, 그리고 인사이트가 매우 풍부해서 나조차 감탄하면서 매우 흥미롭게 되는 사람이 있는가 한편, 그 사람의 관심사와 세계관의 폭이 맞지 않거나 좁아서 대화 지속자체를 얼마 못하는 것을 경험하곤 한다.






떠다니는 생각정리


다른 이유는 길을 걷거나, 지하철을 타거나 생각에 잠기게 될 때, 연계적으로 계속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되는데 그것들을 하나의 큰 줄기로 정리를 해보고 싶은 욕망 때문이였다. 그 생각들은 연계과정이 너무 빠르게 일어나고 연관성이 매우 희박해서 장소를 이동하거나 다른 행위를 하다보면 휘발해버려 잡을 수가 없게 되었다. 글을 쓰면 내가 정확히 하고싶은 말이 무엇인지 두서없이 연계되는 생각들을 서랍장처럼 차곡차곡 정리하게 된다.


이렇게 정리를 계속해서 하다보면 신기하게도 이 주제는 이 항목에 들어가야 된다는 위치를 알게 되기도 하고, 이 주제는 다른 주제랑 연관되어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일례로 와인을 좋아해서 어떤 점 때문에 와인을 좋아하는지에 글을 쓰다보니깐 신기하게 내가 와인을 좋아하는 것과 건축을 좋아하는 이유가 같은 것을 알게 되었으며, 또 커피와 차를 좋아하는 이유와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와 맥을 같이 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처럼 하나의 주제에서 깊게 파고들어가서 생각이 견고해지는것 뿐 아니라 그 주제는 다른 서랍장에 같이 들어가면서 서로 다른 주제끼리 연결된다.






세계관의 확장


 마지막 이유는 역시 영화에 비유해보자면 내 세계관의 확장이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한 감독의 작품을 몰아보다 보면, 기계적으로 몰아보는 것이 아닌 새로운 것에 관심이 가게 된다. 어떤 특정한 감독이 한 영화에만 관심이 가는 것이 아니라 배우의 연기에 관심이 갈 때도 있고 감독이 즐겨 쓰는 기법들과 미장셴 그리고 플롯이 관심이 갈 때도 있다. 마치 길을 걷다가 흥미로워 보이는 골목길 쪽으로 들어가는 것 처럼, 관심이 바뀌면 그쪽으로도 가보는 것이다. 그때마다 느꼈던 것은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도 있고 예상치 못한 것들이 나를 반겨줄 때도 있다는 것이다. 때론 그런 것들이 기존 경로보다 기억에 더욱 많이 남기도 한다. 그렇게 해서 처음 글을 쓸 때는 5개의 주제들이 있었는데, 관심이 가서 그것에 대하여 찾아보고 생각하다보니깐 주제들이 확장되어서 한개, 두개씩 추가되고 결국 여러 갈래로 갈라지게 되었다. 현재 작가의 서랍에 있는 글의 주제만 25개가 넘는다. 그리고 그때 그때마다 주제들에 대한 생각들을 나열하여서 적고, 정리하고, 정보를 찾고 이 행위를 반복하게 되는 것이다. 한개 한개씩 주제를 늘려나가는 것이지만 그 주제들은 서로 연관되며 끈끈해진다.






글을 쓰는 개인적인 취향과 이유에 관련된 내용이지만, 다른 작가들과의 공통된 부분도 있을 것이고 물론 다른 부분도 많을 것이다. 또한 내가 글을 계속 쓰면서 글을 대하는 생각과 관심 주제가 바뀔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중요한건 생각을 계속 다듬고 글을 기고하고 수정하며 세계관을 확장시켜 나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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