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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규민 Kyumin Ko Sep 27. 2022

와인의 건축적 해석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을 찾아서

와인을 좋아하는 이유


 나는 다른 술 보다 와인을 마시는 것을 좋아한다. 물론 와인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생각나는 이미지, 와인을 따르고 재즈를 틀어놓고 음미하는 그런 고급진 이미지를 소비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진짜 이유는 와인 종류에 따라, 와이너리에 따라 천차만별로 달라지는 맛이다.


 와인은 크게 레드와인과 화이트와인으로 나뉘고, 레드와인 중에서도 포도 품종에 따라 나뉘어지는데, 흔히 까쇼라고 부르는 까베르네 소비뇽, 메를로, 피노누아 등등에 따라, 블랜딩 blending (와인을 만들 때, 포도의 품종끼리 섞는 것을 말한다.) 과정에서 얼마나 어떤 포도 품종을 혼용하느냐에 따라 맛이 다양하게 달라진다. 혹여나 범인凡人이 이 글을 보고 그 맛의 차이를 참이슬과 처음처럼, 그리고 진로이즈백의 차이 쯤으로 생각한다면 필자는 매우 발끈할지도 모른다.




chateau fleur ursuline 2011, Château NardianSaint-Émilionc2011, chateau le bernet medoc 2012


와인의 건축적 해석


 와인의 레이블을 보면 생산국가 그리고 지역, 포도의 품종, 와인의 이름, 빈티지 (양조에 사용된 포도를 수확했던 연도) 등의 정보가 기입되어 있다. 하지만 맛에 대한 정보는 일체 없다. 다만 오직 그러한 정보들을 가지고 우리는 정보를 찾아서 맛을 알아보거나, 레이블의 디자인만 보고 유추하는 것만이 가능하다. 따라서 필자는 와이너리나 포도 품종에 대한 정보만 알아가서 와인을 구매한 후에, 맛에 대한 구체적인 생각이 자리잡지 않은 상태에서 시음하는 것을 선호한다. 마치 영화를 보기 전에 감독에 대한 정보를 제외하고 아무런 줄거리와 등장인물을 모른 채 감상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디캔팅 Decanting 후, 와인의 향을 맡아보는데, 숙성을 거친 후 마주하는 와인의 향은 단순히 포도 향만 나는 것이 아닌 레드커런트, 블랙베리, 프룬 등의 향이 난다. 이런 향은 한 가지의 것만이 나는 것이 아닌, 여러 가지 향이 복합적으로 나에게 다가온다. 오늘은 이런 향이 난다 라는 나름대로의 유추 후, 영화를 다 보고 난 후에 관련 영상들과 후기를 찾아보는 것처럼 검색을 통해 다른 사람들은 이 와인에서 어떤 점을 느꼈고 어떤 맛을 음미했는지 살펴본다. 그런 점들이 나에게 매우 매력적으로 다가왔으며 나름대로 찾은 소소한 취미이다.


 또 다른 부분은 와인에 관련된 스토리 인데, 한 와인에 관한 이야기를 조금만 검색을 통해 찾아보면 알겠지만 하도 워낙 방대하고 많아서 할 이야기가 많아서 와인을 마시는 동안에 책을 마시고 있는 느낌까지 들 때도 있다. 양조장 마다 가문이 존재하고 이 와인이 탄생하게 된 배경 등 역사적인 부분에 대한 스토리부터, 떼루아 Terroir 라고 하는 프랑스어로는 '토양'을 의미하지만 포도주가 만들어지는 모든 환경에 대한 이야기까지. 테이스터에게 와인 그 자체는 다양하고 입체적으로 다가와서 먹고 난 후에 정보를 찾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며 더욱 가치있고 크게 다가온다.




경사로를 이용한 건물의 매스와 재료 (출처 - Space, 디자인 - 디자인 스튜디오 유랩, 사진 - 강민구)


건축의 와인적 해석


 사실 부제에서도 명시해 놓았듯이,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의 일부이지만, 내가 와인을 좋아하고 감상하고, 기록하는 이유가, 건축물이나 공간을 좋아하는 이유와 맥이 닿아있지 않을까 라고 오래 전부터 생각했었다.


 토양과 풍토 기후 등등은 와인의 맛에도 미치지만, 대지에 실존하는 건축물의 형태와 배치와도 연관되어 있다. 삼각형 대지에 삼각형 건물이 들어설 수 있는 것처럼, 대지의 모양은 건물의 형태에 직접적으로 관여할 뿐 아니라 내부 공간 배치까지 영향을 미친다. 모양 뿐 아니라 대지의 물리적인 조건 Physical Condition 도 관여하는 경우가 많은데, 예를 들어서 높이 차가 많이 존재하는 대지에 들어서는 건물은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디자인이 설계를 하기 전 물음이 되며 심지어 주된 컨셉이 될 수도 있다. 주변 맥락 Context가 좁고 가느다란 골목길이면 그 골목길을 안으로 들여오는 것이 설계의 아이디어가 될 수 있다. 이렇게 다양한 형태들이 장소, 역사, 기후 등의 변수에 의해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다.


 처음 건물의 형태를 외부에서 관찰하였을 때 은유적으로 나에게 표현하기 힘든 인상을 심어주며, 재질과 형태, 그날의 날씨와 분위기, 사람들의 사용 패턴 같은 수많은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나에게 하나의 이미지를 형성하며 영향을 준다. 사람들은 건축가들 혹은 도시계획가들이 만들어 놓은 구조체 밑에서 맘대로 앉고 쉬기도 하며, 각자의 취향과 기호에 맞추어 건물을 이용하며 해석한다.

 내부로 들어와서는 외부에서 보았던 것과는 또 다른 것들이 보인다. 외벽의 재료와 외부매스의 형태의 이미지들은 그대로 머릿속에 간직한 채, 내부 공간을 들어서면 실제 예상했던 것과 공간의 크기라던지, 기둥과 보등의 구조체, 내벽의 마감재 등이 한번에 보이며 복합적으로 방문자에게 다가온다.


내 외부에 대한 방문 혹은 감상이 끝난 후에 방문자는 건물에 대한 이미지를 재해석하여 기억하게 되는데, 어쩔 때는 건물의 형태 및 분위기가 너무 명확하고 강렬하여 좋은 기억으로 남을 수도 있고, 건물의 동선과 프로그램의 구성이 복잡하여 재방문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게 될 수도 있다. 마치 프랑스 보르도 지역의 올드 빈티지 와인을 마셨을 때, 와인의 향과 맛이 뇌리에 강력하게 남아서 좋은 기억으로 남거나 이태리 아파시멘토 와인을 마셨을 때, 생각했던 것 보다 맛이 복합적이고 입체적이여서 한번 더 감상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과정과 비슷하다. 또한 건물을 설계한 건축가에 대해 찾아보게 되면 그 건축가가 가지고 있는 건축적 생각들 혹은 형태 및 재료 등을 알 수 있거나, 그 땅에 대한 정치적 완력다툼 혹은 그 건물에 대한 스토리들을 볼 수도 있고 그것이 그 건물을 감상하는데 도움을 준다.




건축물의 감상과 와인 시음은 본질적으로 오감을 활용한 감상 행위라는 것에 있어서 공통점이 많다.

또한 여러 감각들이 복합적으로 나에게 오는 행위 자체는 싫증이 아닌 새로움과 신선함을 주며 또한 감상을 즐겁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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