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 분리하지만 동시에 연결하는 곳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경계, 바로 그 경계란 무엇인가.
사전적 의미로는 '사물 혹은 구역을 나누는 곳', '영역을 나누는 곳'이라고 되어 있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경계는 무엇인가.
우리가 해안가 한 가운데 서 있다 라고 가정을 해보자.
해안가에 서야 파도가 밀려옴을 느낄 수 있고, 수면에 떠있어야 물의 일렁임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물 속으로 잠수를 하게 되면 우리는 더 이상 파도를 느끼지 못한다.
경계는 경계 속에 있으면 경계라고 인식하기 힘든 것이다.
결국 우리는 서로 다른 두 공간, 혹은 물체에 대한 경험이 선행되어야 경계를 느낄 수 있으며,
다른 두 곳의 무의식적인 비교와 대조를 통해 경계를 경험한다.
경계는 선(line)으로서 표현될 수도 있다.
대지 경계선은 대지와 대지의 소유권을 분리시켜주는 법정 장치로서의 선이며, 주차장의 주차라인은 내 주차영역과 다른 차의 주차영역이 다름 이라는 개념을 담고있다. 또한 외벽을 기준으로 실내와 실외가 구분되는 것 처럼 면(surface)도 될 수 있으며 동시에 공간(space)도 될 수 있다.
이렇게 물리적인 것 뿐 아니라 분위기(atmosphere)의 변화 또한 경계를 형성한다.
익선동 한옥마을거리를 걷다가 조금만 대로변으로 나오게 되면 옛 분위기의 한옥과 조그마한 골목길들은 어느샌가 사라지고 익숙하게 볼 수 있는 도시의 풍경으로 바뀐다.
그렇지만 우리는 현재 이러한 변화 또는 경계를 경험하고 있는가?
내 집 문을 닫고 나오는 대로변, 그리고 가는 사무실, 매일 가고 일상적인 공간의 변화는 경계이지만 나에게 새로움을 주는 경계가 될 수 없다.
더욱이 지하철, KTX, 비행기 등등의 대중 교통들은 빠르게 변화하는 풍경과 분위기에 대하여 우리의 감각은 점점 무뎌진다. 어떨 때는 판교역의 빌딩 숲 사이에 출근해 있다가도 서울대 입구역의 빌라촌으로 퇴근하는 등의 하루에도 지하철로 인하여 두, 세번씩은 바뀌는 풍경들은 경계에 대한 우리들의 인식을 흐리게 한다.
이러한 대중교통들은 또한 지역간의 경계를 더욱 심화시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지상철과 고가도로의 경우, 그 소음과 분진 때문에 그것을 완화시켜주는 버퍼존 (buffer zone)이 필수적으로 필요하게 되는데, 지상철이 다니는 폭인 1435mm와 승강장 폭들을 다 합치게 되면 지역과 지역을 가로지르는 30m의 선이 만들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경계는 심리적으로 지역과 지역을 넘어가게 하기에 부담을 주며 도보로는 그 경계를 넘기 어렵게 만든다.
물리적인 요인 뿐 아니라 비 물리적인 요인들도 경계를 흐리고 있는데, 각종 소셜 미디어와 블로그들 또한 그것이다. 예를 들어, 어디를 이동할 때 맛집을 찾아본다, 인스타에 힙한 카페를 찾아본다 등의 많이들 하는 행위는, 그 공간과 음식의 맛, 분위기에 대한 여러 정보들을 수집하는 행위라고 해석 할 수 있다.
정보의 수집은 안전하고 수많은 대안들을 비교, 대조를 통해서 최적의 안을 고를 수 있게 해주는 장점이 있다. 그 곳에 가서 무슨 음식을 먹고, 거기에 공간은 어떻게 되며, 그 공간에서 무슨 이벤트가 벌어지는지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정보의 수집에 지나친 의존은 방문자로 하여금 기대감을 떨어뜨리는 효과도 발생할 수 있다. 거기에 가기 전에 미리 모든 정보를 예상하고 예측하게 되어 별다른 신선함이 없는 것이다. 마치 A에서 B까지의 경계를 지나칠 때 B에 대한 공간의 모든 정보를 알기에 둘 사이를 경계라고 크게 인식할 수 없는 것 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건축에서의 경계는 대체 무엇일까,
단일 건축물의 스케일에서 보면 외부와 내부를 물리적으로 나누는 입면(facade)이 그것이다. 입면은 단열과 방수로 인하여 내외부의 공기와 분위기를 바꿔주며 그 둘의 경계라고 분명히 인식하게 한다. 내외부 뿐 아니라 내부에서는 한 층과 여러 층으로 나눌 수 있는데 한 층은 거실과 화장실을 구별해주는 벽 혹은 문이 경계이다. 층과 층, 동과 동이 여러개로 나누어진 곳은 나누어진 층과 층을 잇는 계단 동선, 엘리베이터 그리고 에스컬레이터가 경계이다. 하나의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넘어가기 위한 통로이면서, 둘 사이를 나누는 경계가 된다.
생각해보면 우리 건축가들은 계속해서 경계를 만들어내는 행위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층과 층, 실과 실, 내부와 외부, 건물과 건물, 도시와 도시..
건축가들은 그 경계들을 설계에 자주 활용하곤 한다. 내, 외부가 소통하게 하기 위해서 경계부인 입면(facade)에 큰 통창을 내기도 하고 한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넘어가는 경계부인 통로에 여러 장치를 해놓기도 한다. 넓은 개방감을 내기 위하여 통로의 높이를 점점 줄인다던지, 극적인 효과를 위해 통로의 조도를 조금 낮춘다던지 말이다. 이러한 행위는 하나의 공간과 또 다른 공간이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에 따라 주로 달라지는데, 가령 내부의 화장실과 같은 실은 프라이빗한 정도가 주택에서 최상위에 속하는 공간이라 거실이나 기타 공용공간에서 보이지 않게 해야 한다. 따라서 보통 창문을 최소한으로 뚫고 벽으로 완벽히 경계짓는다. 하지만 거실과 부엌은 처음 집에 들어오면 보이는 공간이면서, 가족들의 공용공간이라 보통 경계를 안두고 한 공간이나 영역분리만 해주는 (LDK : Living, Dining, Kitchen) 경우가 많다.
도시적인 맥락에서는 건물과 건물을 구분짓는 담벼락과 재질 분리, 건물과 건물의 사이의 도로가 경계이다. 이러한 경계들은 대개 소로 (8~12m내의 도로)에서 중로로 중로에서 고속도로로 처럼 다른 공간으로 가기 위한 이동수단의 목적을 두고 생성된 경우가 많다. 고속도로가 그러하고, KTX가 같은 특성을 지닌다. 아까 예시를 든 지하철과 마찬가지로, 지상철은 어떤 곳을 가기위한 수단이 되기도 하지만, 거기에 거주하거나 그곳을 지나치는 사람에게는 경계라고 인식할 수도 있는 것이다.
흔히들 경계를 부정적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보통 경계를 강화한다고 하면 '한국이 중국에 대한 경계태세를 강화하였다' 라던지, '엘리자베스 2세의 장례식에 경계를 강화한 채, 정상들이 도착하였다던지' 등의 매우 은밀하거나, 둘 사이의 긴장관계가 형성될 때 사용된다. 반면에, 경계를 허물거나 약화시킨다 라는 표현은 '예술과 일상의 경계를 허뭄' '일상과 비일상의 경계를 약화시켰다' 등의 서로 다른 두 객체의 협업관계, 서로가 서로의 장점을 흡수한 채 새로운 것이 탄생하였다 라는 맥락으로 사용되는게 다수이다.
어느 학생팀의 설계안 중에 신선하다고 생각했던 설계 안이 있었는데, 기존에 있던 청와대를 이전한다면 어떤 곳으로, 어떤 디자인으로 해야 할까라는 물음에 양화대교 밑에 청와대를 설계해 선유도공원과 가깝고 주변에 국회의사당이 있으면서 교통인프라와 연결시켜 접근성이 좋게 디자인 한 프로젝트였다. 청와대의 권위를 내려놓고 일반인간의 소통을 위해서 기존에 있던 경계를 허문 프로젝트라고 극찬한 기사를 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만약에 이 청와대의 디자인 안이 실제로 현실화 된다면, 과연 어떤 이슈가 발생할 지. 최소한의 프라이버시만 남겨두고 경계를 허물었다고 하지만, 기존에 있던 경호체계가 약화되면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말이다.
경계를 허물었다는게 잘못되었다는게 아니다. 무조건적으로 경계를 허물었을 때 어떠한 결과를 초래할지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한다. 때로는 두 객채가 분리되거나 소통을 하지말아야 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객체 사이에 경계를 강화해줄 필요도 있다. 두 다른 간극을 좁히고 경계를 허물었다-라며 박수칠 동안 자세히 들여다 보면 화장실을 아예 통유리를 하고 있는건지 모르니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