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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규민 Kyumin Ko Oct 21. 2022

향유고래와 나와의 대면

자연과 인간, 나탈리 카르푸셴코 와 바이오미미크리

압도되는 대자연과 내가 마주한다면 어떤 느낌이 들 것인가.


가령 롯데타워만큼의 높은 절벽으로 올라가서 그곳에서 내려오는 폭포와 함께 떨어지는 상상을 해보자. 떨어졌더니 옅은 에메랄드 빛 드넓은 바다가 펼쳐져 있으며 그곳에는 100마리 정도 되어 보이는 돌고래 무리들이 헤엄치고 있다. 나는 그 광경에 매료되었고 돌고래들을 따라 헤엄치며 놀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무리와 어울리다 보니 돌고래들은 하나둘씩 사라지기 시작하였고, 어느샌가 전부 없었다.


무슨 일인가 하고 뒤를 돌아보니 거대한 향유고래가 100cm 안 되는 거리에서 나를 마주 보고 있는 것이다.


그때 과연 나는 어떤 느낌이 들 것인가.


 바다에서 살아온 향유고래는 그곳에서 적응하고 살아오며 수많은 그 나름대로의 경험을 쌓았으며, 육지에서 살아온 인간은 자신의 곁에만 두고 싶어 하는 자연을 취사선택하여 살아왔으며 대신 위험이 되는 다른 생물들은 우리 안에 가둬두며 관람의 형식으로 향유했다. 다른 두 환경에 살아가는 자연과 내가 마주하는 행위는 따라서 다른 세계관과 경험의 충돌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아예 다른 세계관이 마주하였을 때 과연 어떤 감정이 들 것인지 꽤 오래전부터 궁금해왔다.





Natalie Karpushenko ⓒ Natalie Karpushenko Gallery


나탈리 카르푸셴코 Natalie Karpushenko


서두에 언급하였던 것처럼, 과거와 달리 인간들과 다른 동물이라곤 반려동물밖에 없는 도심이라는 하나의 장소 속에 우리는 너무 익숙해져 왔는지도 모른다. 나탈리 카르푸셴코 Natalie Karpushenko는 스위스, 발리, 남아프리카, 하와이, 알래스카 등지를 카메라를 들고 탐험하는 사진작가이다. 대자연, 그중에서도 물과 인간의 모습에 대한 아름다운 모습들을 사진에 포착하며, 자연과 인간이 만나는 경이로운 모습들을 주로 찍는다. 그녀는 인공적인 자연의 모습이 아닌 가꾸어지지 않은 야생 혹은 대자연과 우리가 만나는 모습을 사진에 담으며 우리도 한 때는 대자연의 일부였음을 시사한다.


그녀의 갤러리에는 자연광, 인간, 바다, 식물, 치타, 고래를 포함한 야생동물에서 단순한 선과 최소한의 편집으로 주제를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는 사진들이 대다수이다. 그녀는 자신의 예술 철학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한다.


"나의 아이디어는 자연에서 시작하여 인간을 환경에 추가할 때 구체화된다. 나는 바위 모양을 보고 그것이 여성의 모습을 반영한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또한 야생 서식지에서 동물을 보고 우리도 한때 야생이었다는 것을 기억할 수 있다."


“또한 나는 바다의 플라스틱 속을 헤엄 치면서 집에 쓰레기가 있는 물고기가 된 기분이 어떤지 궁금할 것이다. 내 예술은 자연세계, 특히 모두가 기원한 요소인 물을 통해 다시 연결하려는 욕망의 결과이다.”


이처럼 나탈리 카르푸셴코의 작업은 우리가 우리 주변의 모든 것에서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다는 내러티브이자 서술이며, 우리 세상의 아름다움을 보존하고 복원하기 위해 우리는 눈을 열어 사물을 있는 그대로, 실재하고, 자연스럽고,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물총새의 부리와 신칸센


디자인 분야에서 자연의 활용


카르푸셴코가 사진에서 대자연과 인간에 대하여 언급해오는 것처럼, 디자인에서는 여러 분야에서 자연을 인간에게 가져오려는 시도가 있었다. 이러한 시도 기저에는 우리 주변의 생물들은 수천만 또는 수억 년 동안의 진화를 거듭하는 과정에서 살아남은 존재들이며, 결과적으로 대자연 안의 생물의 구조와 형태, 혹은 기능을 차용한다면 살아 온 환경에 대한 적응효율성이 뛰어남과 동시에 자연친화적인 형태의 창조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물고기를 빨리 잡아먹기 위해 빠른 속도로 물 속에 뛰어드는 길고 끝이 약간 뾰족한 ‘물총새의 부리’에서 차용한 ‘신칸센의 형태’, 물속에서 수압을 최소한으로 받는 ‘거북복의 형태’를 적용한 ‘자동차의 차체 디자인’ 등등은 자연의 형태를 가져오면서 어떻게 자연과 어울려야 하는지 에 대한 인간의 노력으로서 증명된다.


이처럼 자연계의 환경 안에서 생태계의 형태를 모방하는 것은 그 생물체가 살아가고 있는 자연 서식지의 생존적 진화특성을 차용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는 ‘자연스러운 형태’를 가져옴으로써 그 환경에서 진화된 점이나 프로세스들에서 인간의 생활에서 도움 되는 점을 찾아 쓴다. 그와 동시에 자연과 형태적으로 어우러지는 ‘자연스러운’ 형태를 도출해 낼 수 있는 것이다.





건축에서의 자연 : 바이오미미크리


이러한 자연을 모방하고, 그것을 가져오려는 노력은 건축 디자인 분야에서도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예로부터 건축의 과정은 그 내재적인 속성에서 자연의 과정과 반대시 되어왔다. 왜냐하면 구축의 과정부터 대다수의 건축은 자연을 훼손함으로써 축조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건축의 속성은 ‘자연과 대응되는 개척자’라는 이미지로 굳혀지며 인류의 탄생, 발전과 동시에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그와 동시에 자연은 인간에게 생명의 원천과 신비라는 이미지들로 여겨지며 식량과 다른 이로움을 주며 인간의 생활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어왔다. 따라서 건축과 대척되는 자연을 차용하고 닮으려는 노력은 인류 전체의 역사에서 화두였으며 당연스러운 결과 도출인 셈이다.


Corinth Style, Vernacular Design, Arnuvo Style ⓒ archdaily, Hotel van Edtvelde


‘바이오 미미크리 Biomimicry’라는 건축사조는 동양의 목구조를 활용한 건축물이나 고대에 사용되었던 코린트식 기둥, 버네큘러 디자인 Vernacular, 아르누보 양식 등등의 수많은 인류의 시도들 중 그러한 노력들의 현대적 결과물이다.


1997년 컴퓨터의 발견과 더불어 제니 M 베이어스가 생체모방 : 자연이 가져다 준 혁신, Biomimicry : Inovation Inspired by Nature 이라는 논문으로 자연의 형태뿐 아닌 작동 시스템과 진화 프로세스 등을 적용하는 방법론에 대하여 발표하였고, 그것을 생체모방, 바이오 미미크리라고 명명하였다. 생체를 뜻하는 Bio와 모방을 뜻하는 Mimetics라는 그리스 단어의 합성어로서 생체모방이며, ‘자연의 형태와 기능 그리고 진화 프로세스 등을 모방하여 결과적으로 친환경 혹은 지속가능성에 도움을 주는 방법론’이다.

 

한마디로 말해 자연의 생명현상을 분석하고 작동 프로세스를 파악하여 이를 건축물의 디자인에 반영하는 건축사조이라고 할 수 있다.




Beijing Stadium ⓒ CGTN


베이징 스타디움


바이오 미미크리 하면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건축물 중의 하나는 베이징 스타디움인데, 최근의 ‘송은 아트센터’ 를 설계한 건축회사 헤르조그 앤 드뫼롱 Herzog & Demeuron 앤 파트너스에서 설계하였다. 이러한 형태는 새의 둥지의 형태와 유사한데, 외관에 뻗어있는 42000톤의 철골은 디지털 시뮬레이션을 통해 불필요한 부재 부분을 제거하고 구조적으로 안전한 형태를 생산한 결과이다. 쉽게 말해서 새의 둥지의 형태를 가져와서 설계했다는 점이 베이징 스타디움이 바이오미미크리로 분류되는 가장 큰 이유인 것이다.


하지만 새의 둥지의 형태를 모티브로서 설계 한 것 뿐이지, 그것의 원리까지 차용한 것은 아니다. 둥지를 짓기에 가장 중요한 기술은 새가 놓는 굵은 나뭇가지 사이사이에 가는 나뭇가지가 쐐기의 역할을 함으로서 외부에서 압력이 가해지게 되면 빈틈이 촘촘해지면서 결집력이 강해지는 쐐기효과인데, 부재가 쌓여져 구조적으로 하중이 전달되는 원리가 아닌, 격자망 구조물과 지붕들은 개별 부재들을 용접을 통해 연결하였다. 


또한 베이징 스타디움은 24개의 트러스 기둥 골조들을 지붕의 오픈 부위를 접하도록 일정한 패턴으로 연결하여 기본 시스템을 만든 후, 부 거더들로 이들을 나누기도 하고 연결하기도 하며 전체 형태를 만든 것이다. 이 역시 새의 둥지를 만드는 패턴과 흡사하다고 하기는 어렵다.




ICD / ITKE Research Pavilion 2011 ⓒ ICD / ITKE Research Buildings


Sandollar Pavilion, 2011


일전의 프로젝트인 베이징 스타디움처럼 자연물의 형태를 직접적으로 차용한 것이 아닌, 생물체의 구축시스템이나 진화 프로세스를 바탕으로 디자인 한 형태도 존재한다. 그것을 설계하고 연구하는 곳으로는 ICD, Institute of Computational Design and Construction 라는 슈트트가르트 건축 리서치 팀이 있다.


ICD 대학교에서는 매년 자신들의 개념을 담거나 연구를 하고 있는 형태의 파빌리온을 디자인하는데, 프로젝트의 출발점은 특이하게도 성게의 일종에서 발견되는 Sandollar라는 연잎 성게류에서 발견되는 판 구조였다. (Mairs, 2016)


ICD / ITKE Research Pavilion 2011 ⓒ ICD / ITKE Research Buildings


슈트트가르트 팀은 성게의 복잡한 내부 구조를 이해하기 위하여 여러 종에 대해 SEM 스캔을 수행했다. (Bechert & Sonntag, 2016) 그리고 구조를 분석한 결과 결과적으로 손가락 관절 같이 생긴 구조체와 추가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섬유질 요소로 결합된 이중층 방해석 판의 형태로 구성되었다는 점이 발견되었다.


따라서 ICD팀은 151개의 이중층 방해석 판의 구성을 따라서 파빌리온을 설계 하였으며, 각각의 판들은 와이어들을 이용해 로봇으로 꿰매어졌다. 그 결과, 가볍지만 구조적으로 강화된 Sanddollar의 구조적인 메커니즘을 따르게 된 형태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ICD / ITKE Research Pavilion 2015-16 ⓒ Ronald Halbe

ICD Aggregate Pavilion


또 다른 작업물 중에 2018년에 설계된 ICD Aggregate Pavilion은 생물체의 진화 특성이나 작동 원리가 아닌 다른 자연의 특성을 가지고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자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래, 자갈 또는 눈에서 발견되는 특성에 대한 연구이다.


모래나 자갈은 재료의 특성에 따라 뭉쳐져 돌이 되기도 하고 퇴적되어 지층이 되기도 한다. 모래가 뭉쳐져 돌이 되면 특성이 변하지만 모래고유의 성격이 반영된 사암이 만들어진다. 오랜 시간이 되어서 퇴적되는 경우도 있지만 풍화작용을 거쳐서 돌이 자갈 혹은 모래로 만들어지는 경우도 존재한다. 집합, 골재의 말로 해석될 수 있는 Aggregate Pavilion은 이런 컨셉에서 나오게 되었다.



ICD / ITKE Research Pavilion 2015-16 ⓒ ICD Research Buildings



 이러한 재료적 특성과 재료들이 합쳐졌을 때 나타나는 특성들에 대하여 디자인 팀은 서로 다른 행동을 가진 두 가지 유형의 설계된 입자를 사용하였는데, 위의 사진에서 볼 수 있는 1 흐를 수 있는 볼록한 구체와 2 상호 연결될 수 있는 수직, 수평구조가 포함된 세분화 재료로서 구성된다. 볼록한 구체는 기성품이면서 탈착식이며, 수직, 수평구조의 세분화재료는 재활용 플라스틱이 사출 성형 공정을 거쳐서 사용된 맞춤제작모듈이다. 그 둘은 합쳐지고 서로 연결되면서 구축이 가능한 공간으로 남아있을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겨났고 연구진은 그걸 토대로 파빌리온을 설계했다.






‘자연’스러움


이처럼 자연과 같이 하고 싶은, 자연을 본받고 싶은, 자연을 곁에 두고 싶은 인간의 여러 예술적 방법들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그 중 바이오 미미크리라는 것은 자연의 형태만 단순히 모방한 것이 아닌, 자연의 작동원리도 차용한 것이 있었다는 사실도 알아보았다.


우리가 길을 가다가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가로수나 생태공원 만이 우리가 향유할 수 있는 자연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 중심적으로 생각하는, 인간이 사고하기에 인간과 함께할 수 있는 편리한 자연의 부산물이다. 조경이 아니더라도 또한 대자연을 데려오길 원하였던 인류는 과거에 동물원이나 아쿠아리움에 대자연 그 자체를 자신이 의도하는 대로 배치하여 왔으며 하나의 프로그램으로서 그러한 욕망을 투사시켜왔다.


하지만 최근의 카르셴푸코의 작업들과 바이오미미크리의 건축사조들은 오히려 자연의 장점을 취득하고 존중하며 진정한 의미로 지구에서 자연과 함께 갈 수 있는 인간의 방법들을 제시한다. 건축, 사진, 여러 투사체들에 녹아 든 자연의 개념들은 우리의 삶을 더욱 이롭게 해주며 자연과 함께 할 수 있는 기존과 다른 방법을 제시한다. 형태만 차용하던 옛날의 건축과는 달리 오늘날의 건축은 진짜 자연과 함께 하려는 ‘자연스러운’ 건축이 되고 있다.


*이 글은 <문화의 날> 칼럼으로 기고한 글을 일부 편집하여 작성된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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