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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규민 Kyumin Ko Sep 28. 2022

기성품의 맞춤제작

Ready-made가 아닌 Custom-made, Heatherwick

기성품 Ready-made과 나와의 만남


평범한 사람에게는 이상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나는 처음 산 새 물건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아무리 사용해도 처음 상태 그대로 사용하기 전의 것과 똑같으면, 그 물건은 내 것이 아닌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오히려 그 물건이 가죽이나 철과 같은 재질 material 처럼, 때가 타도 된다고 생각되는 재질이나 물건일 때, 그 물건을 조심하게 다루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둔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시간이 지나며 그 물건은 흠집이 나기도 하고 에이징 aging 된다. 점점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 물건과 나는 나랑 함께 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어떻게 보면 물건을 산다는 행위는 공장에서 나온 물건과 나와의 만남이다. 공장에서 나오게 된 기성품이 나를 만나서 같이 다니다가 기스가 나거나, 아니면 다른 부분이 바뀌게 되면, 그건 오로지 나만이 말할 수 있는 스토리가 된다.






맞춤제작 Custom-made과 나와의 만남


 골동품이나 맞춤제작 매력은 여기에서 나오게 된다. 기계가 만든 것이 아닌, 장인이 한땀, 한땀 만들거나 아니면 그렇지 않더라도 여러 사람들이 오래 사용한 물건은 기성품과는 다른 친근한 아우라로 나에게 다가온다.


 헤더윅 스튜디오의 수장, 토마스 헤더윅 Thomas Heatherwick의 디자인을 열광하는 이유 또한 마찬가지이다. 헤더윅 스튜디오는 여러 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특정 형태에 사로 잡히지 않는다. 맥락 context, 장소 loci, 클라이언트 client에 맞는 맞춤제작 custom-made 결과물을 지향한다. 물론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흔히 쓰는 치약이나, 칫솔과 같은 생활용품, 물건들은 기성품이 훨씬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겠지만, 건축의 영역으로 들어가면 얘기가 달라진다. 한정된 대지 안에서 우리는 공장처럼 건물을 찍어낼 수 없다. 대지의 환경이 다르고, 프로그램 program (건물의 용도) 이 다르고 무엇보다도 구축할 수 있는 기술과 상황 여러 조건들이 달라진다.


디자인을 하면서, 대다수의 다른 사람이 만든 작품을 보고 있자면 어떤 특정한 형태에 사로잡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곡면의 형태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이나 특정 형태의 반복 같은 행위가 일관되게 드러난다. 나의 디자인에 대한 취향이 그렇지 않으려고 해도 고스란히 건물에 반영된 결과이다.






 그의 스튜디오의 지향점은, 디자인하우스 - 월간디자인토머스 헤더윅의 인터뷰와 작품들에서 잘 나타나 있다.


헤더윅 스튜디오의 디자인 아이디어는 모두 '이야기와 내러티브'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이때의 디자인 컨셉과 이야기와 내러티브는 별개의 것이 아니라, '내러티브'를 디자인으로부터 오는 경험을 묘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클라이언트의 필요에 반응해나갈 때, 머릿속에 이야기가 생겨나서, 프로젝트 방향을 이끌어 가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우리는 프로젝트를 부분과 조각들의 물리적인 합으로 보지 않고, 대신, 모든 요소들을 껴안는 철학을 만들려고 노력한다. 내러티브는 하고자 하는 것들을 모두 포용할 수 있도록 돕고, 이 방향이 맞는지 틀린지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이 방식을 따르자면, 내러티브가 곧, 문제 해결은 아니다. 오히려 프로젝트에 박차를 가하며, 완전체로 이끌어나가게 하는 수단이다.

디자인을 완성하는 아주 작은 요소들을 결정하는 단계에서 해당 아이디어가 내러티브 안에서 명확하게 설명할 때, 가장 타당성 높은 디자인이 도출된다고 생각한다. 상하이 엑스포의 영국관과 런던의 새로운버스 디자인 모두 굉장히 복잡한 테마를 가지고 있지만, 내러티브는 이 모든 테마를 포용해서 더욱 간단하면서도 강력하고, 설명 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Zeitz MOCCA, 자이츠 아프리카 현대미술관 외관, 2017 ⓒ Heatherwick Studio
Zeitz MOCCA, 자이츠 아프리카 현대미술관 내부, 2017 ⓒ Heatherwick Studio


Zeitz MOCCA, 자이츠 아프리카 현대미술관, 2017


 자이츠 현대미술관의 건물은 1921년에 지어진 건물로 당시에 곡식창고로 쓰기 위해서 지어진 거대한 원형 기둥으로 보이는 건물의 구조에 곡식을 보관했다. 곡식창고라는 건물의 역사를 살리기 위하여, 또한 미술관 관람객의 넓은 중앙 아뜨리움 Atrium 공간을 위하여 원통형 콘크리트 구조체를 원형으로 둥글게 잘라내었다. 따라서 관객들이 내부에서 그 공간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디자인했으며 과거 곡물창고의 형태를 명확하게 인지할 수 있게 한다. 이러한 창문 디자인 때문에 미술관 내부에 들어오는 빛의 방향 또한 굴곡지며 스테인글라스 처럼 들어오게 된다.






Spun Chair, 2010 ⓒ Heatherwick Studio

스펀체어, 2010


 회전체로 의자를 만들 수 있을까라는 물음에서 시작했다. 의자가 가만히 고정되어 있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계속 회전하게 만들면서 키치함을 더했다. 철과 구리와 같은 금속으로 구축하였으며, 램프, 드럼 원의 형태를 이루는 물체를 제작할 때 사용되는 금속 가공 기법, 스피닝 Spinning 가공법을 이용하였다. 사람들은 Spun Chair에 앉아 빙글빙글 돌면서 즐거워하며, 뒤로 넘어갈 듯 안넘어갈 듯 위태로움을 느끼며 다른 사람들과 시각적인 교류를 한다.


Spun Chair - Form study, 2010 ⓒ Heatherwick Studio






1000 Trees, 2021 ⓒ Heatherwick Studio


1000 Trees, 2021


어디에서든지 자연을 쉽게 만끽할 수 있을까. 상하이의 도시재생사업 프로젝트로서 쑤저우허의 대상지를 생태문화 휴양 공간으로 탈바꿈 시킨 1000 Trees이다. 대규모의 건물을 개발하는 것이 바로 옆에 위치한 공원과 강에 잘 어울리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였다. 따라서 완결된 건물로 정의 내리기 보다는 1000개의 높이가 다른 그리드 공간을 생각해 내었다. 공간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언제 어디에서나 나무처럼 생긴 구조체 위의 자연을 즐길 수 있을 뿐 아니라 1000개의 나무는 1년에 21톤의 이산화 탄소를 흡수 할 수 있다. 건물 기둥부에 급수, 우수관이 매립되어 있으며, 비 그리고 토양의 습도를 감지할 수 있는 센서가 달려있어, 토양의 습도에 따라서 물을 줄 수 있다.


1000 Trees, 2021 ⓒ Heatherwick Studio






기성품의 맞춤제작 Ready-made to Custom-made


 헤더윅 스튜디오는 외적인 강력한 이미지에 집착하는 것을 최대한 지양한다. 오히려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그 프로젝트의 본질, 질문이 무엇인지 발견하려고 노력한다. 예를 들어, 프로젝트가 그 공간에 정체성을 부여해서 사람들을 끌여들이려고 하는 것이 주 목적인지, 버스 내부의 공간을 넓혀서 사람들이 쾌적하게 탈 수 있는지 등등의 여러 질문들은 한정된 대지, 프로그램 등등의 상황들이 결정해주는 경우가 많다. 질문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되면 답을 하기가 쉬워진다. 부수적인 생각들은 사라지고 하나의 중심적인 핵심생각들에서만 꼬리를 물고 다른 2차적인 질문들이 형성된다. 그 공간에 정체성을 부여하려면 독특한 재료 혹은 가시성이 좋은 색감이나, 눈에 띄는 형태가 필요하다. 등의 생각들은 질문에 대하여 더욱 더 섬세하고 구체적으로 답할 수 있게 한다.


또 헤더윅 스튜디오의 작업들이 좋은 이유 중 하나는 형태의 명확성이다. 프로젝트에서 질문에 대한 명쾌한 답을 냈다고 하더라도, 완벽한 설계는 아니다. 건축가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각을 벽이나 계단 등의 건축적 요소를 활용하여 하나의 형태로 귀결해야만 한다. 그러한 관점에서 헤더윅 스튜디오의 작업들은 각각의 프로젝트의 문제나 이슈에 대하여 명확한 결론을 도출한 후에, 건축적인 형태로 변환할 때, 한 가지 명확한 형태로 귀결시킨다. 대지의 모양이 모가 나서 이 부분은 각지게 하고, 어떤 부분은 엣지가 없어야 해서 각이 없게 하는 것이 아닌, 하나의 통일된 형태로 특성들을 감싸준다.


이것은 토마스 헤더윅이 건축 및 디자인을 하는 방식이며, 각각의 대지와 클라이언트에 맞춤제작 Custom-made 결론을 도출한다. 사용하는 툴 Tool은 기성품 Ready-made을 맞추고 공장제작일지라도, 결국 기성품을 가지고 전혀 새로운 가치를 지니는, 맞춤제작을 만들어낸다. 이게 바로 기성품의 맞춤제작이 아니고 뭐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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