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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당신의 업이라면,이제 당신은 스스로를 구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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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바다

‘초연당’에서 만난 토로자(내담자) H의 어둠은 '혈육'이었다.
피로 이어진 사이ㅡ세상의 모든 성인들이 ‘업’이라 부르고, ‘자비’를 베풀라 하며, ‘인간의 도리’를 다하라 하며, ‘사랑’하라 외쳤던 수많은 타인들 중에서도 가장 질기게 엮인 인연, 피보다 진한 '혈연'의 '혈육'.


세상에 단 한 명이라도, 누군가 이렇게 말해줄 수 있었다면ㅡ
“그가 당신을 지옥으로 몰아넣는 혈육이라면, 도망쳐도 좋다. 외면해도 좋다.

그리고 죄책감 따위 느끼지 않아도 괜찮다. 정말 괜찮다.

그것이 당신의 피할 수 없는 업이라면, 스스로를 구원하라.”


그렇다면 사람의 무거운 마음에 깃털 하나만큼은 가벼워졌을 까.




어린 시절 하나부터 열까지 동생을 시기,질투하던 언니는 성인이 되어서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후에도, 늙은 부모를 공양하는 이 시기에도, 동생을 향한 집착적이고 뜨거운 감정을 내려놓지 못했다.

토로자 H는 그 혈육의 집착으로 인해 정신과 상담 또한 수차례 받으며, 긴 세월 정신적 고통을 감내해 왔다.

피할 수 없는 혈연의 업이었다.


90분에 가까운 시간동안 긴 이야기가 이어졌다.


뭔가를 토로하는 것 만으로 사람은 일시적으로 가벼워진다.

찰나의 순간 속에 홀로 어떤 깨달음을 얻기도 하고, '아..나는 앞으로 이렇게 해야겠다.' 라는 길이 어슴푸레 하게나마 정해지기도 한다.


청취자인 내가 H에게 그런 짧고 굵은 나침판이 되었길 바란다.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이자 업이라 해도, 그 어둠의 한 가운데에 서 있다면,

이제 스스로를 구원해야 할 순간이다.





헤어나올 수 없는 불행의 늪에 질척거린다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스스로 만들어낸 업이자 환상이다.

당신이 이름을 붙여주고, 살아있다 굳건하게 믿고, 내가 절대 다루지 못한다고 믿는 환상.


혈육이라해도 그와 내가 전혀 다른 존재임을, 완전히 다른 운명으로 다름 삶을 살고 ,다른 운명의 길을 걸어가는 분리된 존재라는 진실을 인지한다면, 내가 그와의 끈끈한 관계에서 느끼는 지독한 불행 또한 아무 것도 아닐 수 있는 것이다.


때론, 세상이 모두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믿어야 살 수 있다.

그러나 때론, 그들과 내가 분리되어 있다는 것 또한 믿어야 오롯이 설 수 있는 것이다.

변화무쌍한 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위해 수용해야 할 두가지 모순된 개념이다.


조금 난해한 이야기 일 수 있지만, 사람의 그림자는 빛이 존재하기 위한 절대적 조건이다.

이 근본은 실체가 없다.

눈에는 보이지만, 만져지지 않는다.

절대 그림자 스스로 움직일 수 없다.

그림자를 움직이는 건 빛을 받고있는 나 자신일 뿐이다.


불행의 늪이 나를 끌어내린다고 믿을 때, 그것을 바라보는 제 3의 눈이 필요하다.


"아냐, 그건 불행의 늪이 아니라 그림자일 뿐이야.

거기서 발을 떼. 그냥 떼는 거야."


나는 토로자에게 '발을 떼라'고 말해주는 한 명의 절대적인 청취자이다.


그녀는 토로의 시간이 끝난 후 속이 좀 후련하다 했다.

또 한번 가볍게 그림자에서 발을 떼어내는 순간이다.


좋다.

그렇게 계속 한 발, 한 발을 떼어내며 가볍게 걸어가면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주기위한 특별한 메세지의 '타로카드'를 뽑아주었다.

내가 뽑은 타로의 행운이 그녀의 삶에 깃들길 바랬다.


마지막으로 나는 그녀에게 작은 메모지에 글귀를 한 줄 써서, 전달해주었다.


"아무것도 문제가 아닙니다."


인간사회가 규정하고, 윤리도덕에 의해 권위가 부여된 무거운 단어들 - 혈육, 책임, 도리 - 일지라도,

그것은 그 자체로 그저 존재할 뿐이다.

사람에 의해 의미가 부여되고, 사람에 의해 움직여지고, 사람에 의해 칼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니 그 어둠에 자생력을 불어넣지 말라.

부모든, 자식이든, 배우자든, 친구든, 관계는 그저 관계로 존재할 뿐

그것의 무게와 어둠은 각자가 만들어낸 그림자일 뿐이다.


나는 H에게 "아무것도 문제는 없습니다." 라는 말을 몇 번이고 반복했던 것 같다.


"아무것도 문제는 아닙니다. 그저 그것일 뿐입니다."


내 말은 사실이었다.

제 3자의 시선으로 보았을때, 단 한명의 혈육이 주는 속박과 고통이 아니라면, H의 삶은 모든 것이 훌륭하고 완전했다.


서로 깊이 신뢰하고 평생의 반려자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H의 배우자가 있었고,

그 사이에서 탄생한 사랑스럽고 건강한 아이가 있었고,

스스로 공부하여 얻은 안정적이고 멋진 직업이 있었고,

그들이 살아갈 안락한 집이 있었고,

이렇다저렇다 해도 아직 건강하시고 든든한 울타리 같은 부모가 있었다.


H는 단 하나의 '어둠'과 나머지 모든 안정된 행복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

정말로,

H에게는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이다.

_여러개의 행복과, 그 행복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한 한 개의 불행_


그 어둠에서 가볍게 발을 떼어라.

죄책감 따위 느끼지 않아도 괜찮다.

그것은 문제도 아니고, 늪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닐테니..!




그것은 이름일 뿐이다.


그가 당신의 업이라면,
더는 피를 흘리지 마라.

그저 사뿐히 발을 떼어라.

그것은 문제가 아니다.

그림자이다.


당신을 옭아맨 건 피가 아닌,
그 피에 붙인 이름이니,

빛을 돌려라,
죽은 그림자는 안개처럼 사라질테니.


이제 기억하라.
당신을 구원할 이는
오직 당신 뿐임을.


그리고,
지금 이 순간부터,
당신을 구원하라.

그것은 문제가 아니다.

그저 당신이 붙인 어둠의 이름일 뿐이다.



초연당1.jpg 상담장소 '초연당'_ 당주님과 나솔님이 제공해주신 장소. 풀과 꽃이 싱그럽죠?


초록 풀이 정갈하게 각자의 집과 같은 화분에서 세상을 구경하고 있다.

이곳에 들어서는 청취자의 설레는 마음을 구경하고, 불안하거나 혹은 기대하는 마음으로 들어서는 토로자의 어둠을 구경한다.


그리고 작고 여린 풀들은 그들끼리 속삭인다.


'인간들은 왜 그림자를 저렇게 짊어지고 다니지~? 안개보다 가벼운데 말이야!.'


장마가 띄엄띄엄 눈치를 보는 여름의 끝자락에서,

초록 풀잎에 맺힌 이슬이 똑 똑 떨어진다.

목마른 가슴에 감질맛 나게 물을 적신다.


청취자인 나는 이 마당에 서서 가만히 상념에 빠졌다.


'내가 붙들고 있는.. 내가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는 이 그림자는.. 무엇일까?

당신일까..?'


바다를 가득 채우고 있지만, 채워도 채워도 목이 마른 '바닷물' 같은 존재를 갈망한다.


ㅡ나는 나를 찾아오는 많은 토로자들에게 '가볍게 발을 떼라'고, '감은 눈을 뜨고 빛을 마주하라'고 말하면서, 적장 나 스스로는 어제의 그림자를, 어제의 상처를, 어제의 외로움을 자꾸만 돌아보고 있었다.


https://youtu.be/eik-DGRGDVg?si=pFh4BTajoOWpBZn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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