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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어둠에 한쪽 발 들인 후 내가 목격한 것들

무료심리상담 후기

by 새벽바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줄게요]_돈을 내지 않아도 되는 심리상담 프로그램 (by 작가 '바다') : 제주스퀘어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줄게요."

위 무료상담 프로그램을 만들어 사람들을 모집하고 몇몇의 세상과 그 속의 어둠을 만난 이후

지금은 한숨 쉬어가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나는 어땠을까?

그들은 어땠을까?


어떤 관계도 없는 완벽한 타인이 오롯이 온 마음을 열고 당신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준다면,

어떨 것 같은가?


들어주는 사람을 '청취자'라 하고, 털어놓는 사람을 '토로자'라 칭해보자.


그 깊고 진한 어둠의 토로 이후, 그곳에 겁 없이 한쪽 발을 담가본 그 청취자가

나름의 개똥철학이라도 꺼내어 토로자에게 툭- 툭- 어떤 희망의 메시지를 제시했을 때,

그 짧고 서툰 메시지가 토로자의 어둠에 한 줄기 찰나의 빛이라도 되어 줄 수 있다면,

과연 토로자와 청취자의 삶에는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_ 바로 이것이 내가 '실험'이라고 명명했던 표면적인 이유였다.


하지만 '청취자'를 자처한 나의 속마음은 어떤 면에선 단순했다.

어떠한 이득에 대한 계산 없이 오직 타인만을 위한 '봉사'를 해보자라는 것.


왜 나는 이것을 부모에게도, 남매에게도, 사랑하는 연인에게도 하지 못하고

생판 처음 보는 남에게 하고자 했을까.

부모를 애증 하고, 남매에겐 남보다 못하고, 사랑하는 연인에겐 그동안 내가 충족되지 못한 걸 당신이 내놓으라는 듯 빚쟁이가 되면서, 생판 처음 보는 남에겐 포용적이고 관대해지고자 하는 이 모순의 이야기.




타인의 어둠에 한쪽 발 들인 후 내가 목격한 것들


첫 번째, 조용한 상담 장소를 마땅히 찾지 못하던 나는 제주스퀘어 대표님의 긴급한 섭외로 구도심의 작은 카페로 향했다.


생전 처음 만난 그녀는 카페 책상 위에 이러저러한 노트와 예쁜 소품들을 가지런히 놓고

뭔가를 끄적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녀는 이미 충분했기에.


사람이 자신의 물건을 어떤 모양새로 놔두는가 - 를 바라보면,

깊은 무의식을 어느 정도 가늠 할 수 있는데, 심각한 우울이나 공황 상태의 사람들은 대부분

그런 카페의 책상 위에 이렇다 할 것들을 거의 올려놓지 않거나,

혹은 아주 어지럽게 뭔가를 흩뿌려 놓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적어도 다이어리나 노트 한 권이 펼쳐 있다는 것은,

가방이나 핸드폰이나 카드지갑 등이 각자의 존재감을 드러내며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정갈하게 놓여 있다는 것은,

그 사람이 아직은 뭔가를 쏟아낸 후 잘 살아갈 수 있거나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다는 반증이다.


물론 그녀와 나의 기억이 다르게 저장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내 기억에 그녀는 이미 충분했다.


내가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러저러한 개똥철학으로 어떤 메시지를 건네고,

고개를 끄덕이며 잘 들은 이후에 내가 습관적으로 노트에 필기를 한 페이지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끄적거린 노트에는 혼란한 단어들이 꽃처럼 펼쳐져 있었다.


최근의 기분은 어떠셨나요? 기분, 고집, 설레, 허당끼, 색깔이 보이는 사람들, 명확하지 않음, 녹색, 말조심해야지, 흥미, 고착화, 완벽하지 않아도, 원인, 나의 좋은 면은? 벅차다, 옳고 그름, 수용, 스펙터클, 인도 여행, 죽음, 관계, 친구들, 무장해제, 코로나, 장래희망, 말을 예쁘게 하는 내 모습, 귀여운 것들.


토로자의 모든 이야기는 비밀에 부쳐지기에 나는 들은 이야기 중 그 어떤 것도 자세하게 쓰지 않는다.

익명이라 해도.


내가 1시간이면 충분하다 예측했던 상담은 자연스럽게 흘러 1시간 반을 향해갔다.

나는 그녀에게 마무리를 할 시간이라 통보했고, 내가 들고 다니는 분홍색 메모지에

어떤 메시지를 적어주기로 했다.




내가 어둠을 헤매고 있을 때,

나를 살게 한 문장은 "내가 바라는 대로 이루어질 나의 밝은 미래는 이미 정해져 있다."였다.


인간이 겪는 무수한 두려움, 불안, 공허함, 결핍 등은 결국 - 알 수 없는 '미래'로부터 기인한다.


당장 1시간 이후에도 큰 즐거움은 없을 거라는 믿음.

당장 내일도 내게 기쁨은 오지 않을 거라는 믿음.

일주일 후에도, 계절이 변해도 내 삶은 크게 나아지지 않을 거라는 믿음.

1년 후에도 내가 여전히 이 정도 수준일 거라는 믿음.


그 숱한 근거 없고 희망 없는 믿음이 주는 불안과 두려움.


지금 내 삶이 비교적 평온하고 만족스럽다 해도

이것을 유지해야만 한다는 믿음.

언젠가 닥쳐올지 모르는 불행에 대비해야 한다는 믿음.

나 역시도, 사람들도, 우리 모두는 그런 뿌리 깊은 믿음을 품고 살아간다.


나의 믿음은 진짜일까?

"내가 바라는 대로 이루어질 나의 밝은 미래는 이미 정해져 있다."

인간의 믿음이 각자의 운명을 창조한다면,

나는 이 믿음을 의식적으로 선택하겠다.


나는 이렇게 하루하루의 삶을 이루어 내기 위한 내 안의 예언자를 만들었다.


타인을 만나면 적어도 나를 닮은 조각 하나는 마주하는 것이라 했다.

그녀를 통해 나는 나의 조각 하나를 마주한 것이다.


첫 번째 세계는 그렇게 나에게 다가왔고, 인사를 나누었다.




'불안'도, '우울'도 물리쳐야 할 적이 아니다.

그저 그 자체로 존재할 뿐이다.

누군가의 존재를 어찌 함부로 없어지라 마라 통제할 수 있을까.

존재를 인정하는 순간 조금 나아질 것이다.

'불안'도 '고통'도, 결국 그 자체로 존재하고 있을 뿐 인 감정의 생명체이다.

_ 나의 작은 결론.


그렇게 묵직할 수 있는 상담의 끝에, 가벼운 기분으로 종결하기 위해 나는 '타로카드'를 꺼내 들었다.

이것은 나의 작은 이벤트였다.


타인에게 줄 수 있는 작고 가냘픈 희망의 예언자가 되어 보기로 작정한 것이다.

놀랍게도 정말 최고로 좋은 카드 2장이 튀어나왔다.


나는 자신감 있게 분홍 메모지에 '당신의 스펙터클한 미래는 정해져 있습니다.'라고 적어주었다.

그녀의 얼굴이 밝아진 것 같아 나는 왠지 내 일부가 치유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먼 길을 달려 집으로 돌아왔다.


그 후 일주일이 지났고, 나는 두 번째 토로자를 만났다.


카페를 전전하기엔 너무 번잡했는데 고맙게도 제주스퀘어 대표님이 또 좋은 장소를 박 씨처럼 물어다 주었다.


제주 구도심 골목 어딘가에 예쁜 꽃과 풀로 꾸며진 곳.



[초연당]


이 초연당에서 만난 그들의 이야기를 다음 편에 이어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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