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드리드 정착기
브런치에 글을 쓴 지 두 달이 넘었다.
우선순위가 시급한 일들이 있기도 하고
목차를 짜고 시간 순으로 쓰려고 하니 자꾸 미루게 되는 것 같아서
앞으로는 그때 그때 생각나는 에피소드가 있으면 시간 상관없이 써보려고 한다.
오늘은 스페인어 선생님의 포스팅을 보다가 생각난 에피소드를 써본다.
"시간 낭비 : Pérdida de tiempo"라는 표현을
스페인어로 알려주시면서
Esperar el autobús sin saber el horario es una pérdida de tiemto
시간표도 모르고 버스를 기다리는 건 시간낭비야!
라는 예문을 들어주셨다
이 문장을 보는 순간
비 오는 날 버스 정류장에서
오지 않는 버스를 하염없이 기다린 생각이 났다.
이사하고 맞이한 처음 맞이한 주말, 시내 이케아에 가서 작성해 둔 가구리스트를 주문하고 그릇, 컵 같은 식기도 좀 사 와야지 하며 룰루랄라 집을 나섰다.
우리 집은 마드리드 외곽이라 시내로 나가려면 버스를 타고 지하철로 환승하거나, 택시를 타야 했다. 택시로는 20~25유로 정도 나왔던 것 같다.
그동안 레지던스에서 이사할 집에 볼 일이 있을 땐 택시를 탔는데 이젠 대중교통으로도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아 용감하게 버스를 탔다. 무사히 집 앞에서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이케아에 도착. 이케아 회원 가입을 해서 공짜 커피도 마시고 2유로짜리 시나몬롤도 하나 먹은 것 같다.
운 좋게도 영어 잘하는 직원이 있어서 식탁, 매트리스, 침대, 책장 등등 리스트에 있는 가구를 주문하고 배송요청까지 한 번에 완료했다. 접시와 컵은 당장 써야 하니 양손 무겁게 비닐백에 넣고 뿌듯해하면서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여러 터미널 번호 중에서 우리 집으로 가는 버스 번호를 찾아서 그 앞에 앉았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버스가 오지 않더라
스페인어라고는 올라!(안녕)와 그라시아스(고마워) 밖에 못하는 상황에서 누군가에게 물어볼 엄두도 안 났다. 물어보는 거야 번역기를 써서 물어보면 되는데 대답을 알아들을 수가 있어야 말이지
그런 상황에서 비가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했다. 당연히 우산은 없고 갑자기 양손에 든 컵과 접시가 너무 무겁게 느껴지면서 서러움이 밀려왔다.
'그래 이렇게 쉽게 술술 풀릴 리 없지' 싶기도 하고, '내가 왜 혼자 여기 와서 이러고 있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싶은 생각이 올라오면서 눈물이 똑 떨어졌다.
그리고는.. 결국 또 우버를 불렀다. 나의 완벽한 패배(?)였다. 주말 오후라 차가 하나도 안 막혔고, 싱겁게도 20분도 안 되어 너무나 편하고 또 너무나 비싸게 집에 도착했다.
역시 해외살이가 쉽지 않지
그래도 오늘 프레임 주문했으니까
한 걸음은 나아갔다고 애써 위안하며
맥주 한 캔 하고 매트리스만 있는 침대에서 잠을 청했다.
(매트리스는 스페인짱 카페에서 중고매물로 샀다. 이것도 돌돌 말아 노끈 질끈 매고 택시 뒷자리에 실어왔는데)
그러고 보니 이 식탁도 그날 이케아에서 사고 배송받아 조립한 거네 그전까진 바닥에서 밥 먹었는데 말이야
그래 매우 보람 있는 외출이었던 걸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