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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을 눈이 아닌, 귀로 듣는 아이

한글 떼기 걱정도 추가요

by 우주소방관

영상을 눈이 아닌 귀로 듣는 아이, 바로 우리 첫째다. 물론 영상을 안 보는 건 아니다. 집에 TV는 없지만, 일주일에 한 번 1시간 정도 태블릿으로 영상을 보는 시간이 있다. 이 시간을 얼마나 기다리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 외의 날에는 영상을 ‘듣는다’. 그것도 아주 잘, 열심히, 그리고 즐겁게.


미국에 이민 온 이후, 첫째가 사랑에 빠진 만화가 생겼다. 바로 ‘바다 탐험대 옥토넛’. 이전에도 좋아하는 만화는 있었지만, 이렇게 푹 빠진 건 처음이다. 얼마나 좋아하냐면, 옥토넛 책이 읽고 싶다고 해서 한국에 계신 부모님께 부탁드려 시중에 판매되는 한글판 옥토넛 책을 전부 택배로 받아보았을 정도다. 평소에도 책을 좋아하지만, 요즘은 아침 점심 저녁마다 옥토넛 책이 늘 손에 들려 있다. 여기까지만 보면 전혀 문제 없어 보인다. 책은 가까이할수록 좋은 거니까.


그런데 걱정은 따로 있다. 첫째가 하루에 한두 시간씩 옥토넛 ‘영상을 듣는다’. 소파에 앉거나 침대에 누운 채로, 거의 미동도 없이 가만히 앉아 귀로만 듣는다. 가끔 지나가다 보면 혼자 웃고 있기도 하다. 내용이 재밌나 보다. 요즘은 블루투스 스피커까지 옆에 두고 듣는데, 옥토넛 시작 소리만 들리면 스피커를 꼭 안고 놓질 않는다.


그리고 더 큰 걱정은 차에 타기만 하면 “옥토넛 들어도 될까요?” 하고 물어본다는 거다. 하원할 때도 “오늘 어디 가요? 가면서 옥토넛 들어도 돼요?”라고 묻는다. 한 번도 그냥 넘어간 적이 없다. 처음엔 반갑게 틀어줬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되다 보니 남편은 조금 지쳐 보인다. 나도 가끔은 그렇지만, 그래도 영상 ‘보는 것’보다는 덜 자극적이니 괜찮지 않을까 싶어 틀어주곤 한다. 그리고 나도 함께 들을 땐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둘째도 덩달아 옥토넛 팬이 되어버려서, 우리 셋은 옥토넛을 주제로 자주 토론을 한다.


벌써 옥토넛과 함께한 지 한 달쯤 되어간다. 계속 이렇게 지내도 괜찮은 걸까? 나쁜 것 같진 않지만, 그렇다고 아주 좋은 것도 아닌 것 같아 마음이 좀 애매하다. 뭔가 찜찜하다.


첫째는 한국 나이로 여섯 살. 곧 한글을 떼야 할 것 같기도 한데, 따로 집에서 공부를 시키고 있지는 않다. 대신 가끔 한글 떼기 책을 읽고, 항상 마지막엔 옥토넛 책으로 마무리한다. 같은 책을 수십 번은 읽은 것 같은데도 여전히 재미있나 보다. 그래서 이제는 옥토넛 책으로 한글을 조금씩 가르쳐볼까 생각 중이다. 예를 들면 ‘바다’라는 단어는 자주 나오니까, 그건 꼭 첫째가 읽게 해보는 식이다. (도움이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런 고민을 나누었더니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초등학교 입학 준비는 읽기 능력보다 정서적 안정감이 더 중요해요. 영어는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 6개월에서 1년이면 따라잡을 수 있어요. 한글도 꼭 떼야 하는 건 아니에요. 언어가 ‘즐겁다’고 느끼는 게 훨씬 중요한 출발점이에요.”


정말 그럴까?

가끔은 미래로 살짝 다녀오고 싶다. 지금의 이 선택이 맞는 길인지, 아이에게 좋은 방향인지… 아주 잠깐이라도 확인해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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