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대가 없는 일상에 대한 감사함

Intro.

by 수경

여행을 하지 않는 일상에서, 우리는 보통 눈앞의 목표만을 향해 달리느라 바쁘다. 정해진 선로 위를 쉼 없이 달리는 지하철처럼 말이다.




초등학생 때부터 중학생 때까지, 나는 상장을 쓸어 모으는 학생이었다. 개근상과 성적 우수상은 물론이고 백일장 글쓰기 대회, 환경 보호 포스터 그리기 대회까지.


조회 시간에 담임 선생님이 상장을 들고 내 이름을 호명하면, 같은 반 친구들이 '또 너냐!'하는 반응을 보이는 것에도 익숙할 정도였다.


스크린샷 2025-08-13 오후 4.19.51.png 영화 <어느 멋진 순간>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는 외고에 진학하게 되었다. 아직 미각이 채 깨어나지 못한 오전 6시반쯤, 눈을 감은 채 밥을 씹어 삼킨 뒤 일명 '0교시'라 불리는 아침 자율학습을 위해 8시까지 학교에 도착했다.


수업이 끝난 뒤에는 밤 10시까지 이어지는 야간자율학습을 하고, 집으로 오는 버스에서 한 정류장을 일찍 내려 독서실로 향했다. 그곳에서 새벽 2시까지 공부를 했다. 지금 보면 정말 말도 안 되는 루틴이었다.




스크린샷 2025-08-13 오후 4.18.56.png 영화 <어느 멋진 순간>


그렇게 열심히 공부를 했건만 지원한 대학에 모두 떨어진 바람에, 수험 생활은 1년이 늘어나게 되었다. 독학 재수 학원에서 하루 종일 칸막이 속에 앉아 말 한마디 않고 공부하다 보니, 집에 돌아오면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였다.


다행히 원하던 학교에 합격하기는 했지만, 돌이켜보면 10대 시절, 특히 고등학생 시절의 나에겐 패배감과 낙오에 대한 '두려움'뿐이었다.




그래서일까. 어른이 되고 세계 이곳저곳을 여행하기 시작했을 때에도 나는 여러 '체크리스트'를 채우기에 급급했다. 프랑스에 가면 파리의 에펠탑을 봐야 하고, 독일에 가면 베를린 장벽을 봐야 하고, 아이슬란드에 가면 꼭 오로라를 봐야해! 라는 것들.


가이드북을 뒤져 보며 리스트를 만들고 이를 일일이 지워 가며 여행을 계획하기도 했다.


스크린샷 2025-08-13 오후 4.24.05.png 영화 <어느 멋진 순간>


하지만 점차 내가 여행에 대해 오해를 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사실 여행은 높은 점수를 받아야 하는 시험이 아니고, 결과를 평가받는 프로젝트도 아니다.


여행은 나를 현실에서 붙잡고 있던 의무와 역할에서 잠시 풀어주고 그 틈에서, 평범한 하루가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를 비로소 느끼게 해주는 존재였다.




tempImageh4IQGw.heic 영화 <어느 멋진 순간>


여행을 떠나면 그 어떠한 허락이나 대가 없이도, 세상은 항상 나를 반겨주었다. 숙소 발코니에 앉아 들려오는 새소리, 길모퉁이에서 우연히 마주친 이름 모를 꽃, 바람결에 실려 오는 바다 냄새로. 그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그러다가 알게 되었다. 사실은 여행을 떠나지 않더라도, 우리가 너무도 당연하게 지나쳐 온 하루 속에, 아무 대가 없이 건네받은 커다란 선물들이 숨어 있다는 것을.


이번에는 그 ‘아무 대가 없는 일상에 대한 감사함’이 스며든 순간들을 꺼내어 보려 한다. 오스트리아 짤츠부르크와 크로아티아 흐바르 섬의 해질녘 마주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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