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 보면 제 선택의 이유는 항상 심플했던 것 같아요. 일단 저는 누군가 나에게 밥 먹자고 하면 “무엇이든 좋아”라고 말하는 사람이에요. 그건 나의 기호가 불분명해서가 아니라 상대의 입장을 먼저 배려해주고 싶다는 표현이고, 또 정말로 웬만해서는 대체로 다 잘 먹기 때문이죠. 그리고 상대가 다음으로 “한식 먹을래?”라고 말하면 “응 좋지, 난 한식 정말 좋아해”라고 말하는 편이죠.
“그 학과에 가면 취업도 잘되고 돈도 잘 번대” 이 말은 제가 스물한 살에 처음 대학에 갈 때에 학과 선택을 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주었던 친구의 말이에요. 그때만 해도 저는 여러 학과들에 대해서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없었어요. 그때는 지금보다 여러 매체가 발달되지 않은 때이기도 했지만 저 역시도 정보를 적극적으로 찾아보는 성격은 아니었거든요. 그리고 그 후로 저는 10년 동안은 그 학과 관련 길을 당연하게 걷게 되었어요.
“이모네 사촌의 딸은 그 일을 해서 집을 샀대” 이 말은 제가 이번에 학과를 선택하는 데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던 저희 어머니의 말이에요. 한 번의 실패 경험담과 내적 내공과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정보가 스물한 살 때보다는 월등히 많았지만 저는 여전히 주변 사람이 저에게 해 준 말을 듣고 선택을 내리곤 해요. 그다음으로는 덤으로 “그 직종이 요즘 뜬대”, “어, 거기 학교 괜찮아”, “나도 방통대에서 그거 공부하고 있어” 등등 몇 개의 정보가 더 저에게 주어졌어요.
저의 선택은 항상 심플, 그 자체였어요. 살면서 막 선택하기를 겁냈던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아, 하나 있다. 퇴사할 때…! 마음으로 선택은 이미 내렸으나 막상 용기가 나지 지지부진 끌었던 가슴 아픈 그때의 향연~ 그런데 책임은 좀 다른 이야기였어요. 한 번의 선택으로 인해 삶의 모습이 통째로 바뀌는 경우가 종종 있잖아요. 하루 한 끼 밥이나 하루 옷차림이야 하루의 컨디션 정도에 영향을 끼치다 말겠지만 직종이나 학과, 사람 선택은… 삶에 참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법이죠. 그리고 그 선택 뒤에 따르는 수많은 경험을 감수해야 하는 건 언제나 자기 자신이고요.
사실 어떻게 보면 저는 철저히 자본주의의 원리에 따라 진로를 선택했어요. 어쨌든 현사회에서 돈이라는 건 중요한 일부분이니까요. 그래서 저도 역시 중요하게 생각하니까요. 그런데 스물한 살 때의 학과 선택 뒤에는 제가 따라가기에는 참 무겁고 버거운 책임이 뒤따랐어요. 물론 눈앞에 펼쳐진 일들을 저는 언제나 해낼 수는 있었어요. 하지만 마음이 점점 불행해졌어요. 꼭 저를 잃어가고 있는 것만 같았거든요. 그럼 지금의 선택은 어떻냐고요? 아직까지는 정말 좋아요. 마음이 가볍고, 용기가 샘솟고, 자부심이 생겨요. 가끔은 나이를 실감하며 현타가 오기도 하지만요. 뭐 어떤가 싶어요. 다시 도전하는 제가 대견스럽거든요. 이처럼 책임을 지어가는 과정에서 느껴지는 무게가 확연히 차이가 나는 이유는 뭘까요?
그건 아마도 기준이 ‘나’로부터 시작되었느냐 아니냐를 구분하게 되었기 때문은 아닐까 싶어요. “난 카페에서 커피 마시는 거 좋아해, 그런데 술자리에서 술 마시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아. 옛날에는 표고버섯 식감하고 냄새가 정말 역했는데, 지금은 잘 먹는 편. 아 그리고 놀리지 마. 홍어 먹는 거 정말 좋아해ㅎㅎ 운동경기 보는 건 일절 없고, 직접 해보는 거 정말 좋아. 친구들은 내가 소심하고 내성적이라 하면 잘 안 믿는데, 속으로는 정말 그렇다니까. 그리고 앞으로는 사람 돕는 일을 했으면 좋겠어.“ 저는 전보다는 더 많이 저를 잘 알게 되었어요. 그건 인생을 좀 더 잘 살아가는 데 중요한 부분인 것 같아요. 왜냐하면 나를 잘 안다는 건, 선택과 책임이 더 즐거워질 수 있도록 마법가루를 뿌려주는 역할을 하니까요.
모두에게 삶이라 불리는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가 보이는 듯 하지만 결국 언제나 잊어선 안 되는 건, ‘내가 사는 내 삶‘이 아닌가 싶어요. 그건 오롯이 자기 자신만이 해낼 수 있는 독특하고도 기쁜 일이죠.
적어도 너를 기쁘게 해 줄 일,
‘자신이 누구인지’ 말해 줄 일을 하라.
<신과 나눈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