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니양 Jun 19. 2024

넘어져서 다행이야

“3년간 공백기의 불행”




우리의 삶에서 모든 고난이
자취를 감추었을 때를 생각해 보라.
참으로 을씨년스럽기 짝이 없지 않겠는가.

니체






  그해 여름에 난 아무것도 몰랐다. 그리고 스무 해쯤은 더 지난 시점에서 나는 알았다. 그것이 바로 경험의 가치라고, 그래서 그건 그 어느 보석보다 값진 것이었다고.


  아마도 열두 살쯤 됐을 거다. 내가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던 때는.


  우리 집에는 어머니를 위한 자전거 한대가 있었다. 그건 성인여자용 자전거로 앞에는 예쁘장한 검정 바구니가, 뒤에는 한 사람은 더 탈 수 있는 철제 의자가 놓인 그런 자전거였다. 그건 그냥 어머니가 늘 타고 다니던 자전거에 불과했는데, 불현듯 나는 그 자전거가 너무 궁금했다.


  그래서 나는 내 키에 겨우 맞는 그 자전거를 이끌고 집에서 한 블록 정도 떨어진 한적한 길을 무작정 찾아갔다. 일단 그곳은 인적이 드물었고, 그 시절 시골에서는 흔치 않게 길이 판판하게 다듬어져 있어서 초보자가 자전거를 끌기에는 안성맞춤인 것처럼 보였다. 물론 당시 나에게 무엇이 있었을까? 정보? 요즘처럼 유튜브나 정보가 쏟아지는 시절이 아니니, 내가 아는 거라곤 단지 어머니와 할아버지가 자전거에 타고 있는 완벽한 이미지뿐이었다. 그러나 나는 어렸고, 순진했으며 또한 순수했다. 순수한 사람이 가질 법한 열정은 또한 순수하기에 실패에 대한 두려움 따위 같은 게 있을 수 있을까? 그렇게 별안간 열두 살 여자아이의 ‘무작정 자전거 타기 프로젝트‘는 시작되었다.

 

  자전거 안장 높이는 당시 내 엉덩이와 거리가 상당했다. 때문에 나의 엉덩이가 안장에 아슬하게 닿을라 치면 다른 곳이 삐끗했다. 그건 무지와 엉성함이 만들어 낸 당연한 결과치들이었다. 이내 자전거 핸들은 균형을 잃고 이리저리 요란하게 꺾였고 자전거 머리는 틈만 나면 양 옆의 논밭으로 치닫곤 했다. 그럼에도 용기 있던 어린이는 포기를 몰랐다. 게다가 할 일 없이 무료한 시골 생활 중에서도 방학 중이었던 나에게는 남는 것이 시간뿐이라, 나는 해가 스멀스멀 산등성이로 넘어가는 느지막한 오후의 그늘을 벗 삼아 연습을 해댔다. 한 사흘쯤 되었을까? 그걸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 그래, ‘감’이라고 하면 되겠다. 능숙하게 자전거를 타던 어머니의 모습을 따라 하고 있는 것 같은, 내 몸과 자전거에 대한 나름의 철학이 생겼던 거였다.



  드디어 자전거 안장에 앉기까지를 성공 한 날이었다. 나는 기쁨에 겨웠고, 자전거에 앉아 핸들을 꼭 쥐며 내성적인 내 성격에 알맞게 조용한  환호성을 질렀다. 하지만 기쁨과 동시에 가속력이 붙은 자전거는 그대로 하염없이 직진해 밭두렁으로 향하고 말았다. 그리고 나는... 어떻게 됐을까?


  다행히 빼곡히 얽힌 수풀이 보호막이 되어준 덕분에 내 몸에는 딱히 이렇다 할 상처 하나 남지 않았다. 그리고 그 시절 툭하면 이유 없이 넘어져 무릎이 깨지곤 했던 나에게 그 정도의 사건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왜인지 나의 마음은 부끄러웠다. 완성된 모습을 목전에 뒀던 탓일까? 잔뜩 기대했던 모양처럼 유연하게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푹 고꾸라진 나 자신이 괜스레 부끄러워 얼굴이 붉어졌다. 비록 나를 보고 있는 사람 한 명 없었지만, 너무도 적나라하게 내가 보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나는 그때의 과정을 참 좋아했었던 것 같다. 모든 순간이 기똥차게 즐거웠고, 그걸 해낸 나 자신이 여전히 자랑스럽게 남아있는 걸 보니 말이다. 게다가 결승선을 알리는 하얀 레이스를 코앞에 둔 육상 선수처럼 ‘목표’가 내 앞에 당도해 왔을 때에는 마음이 더없이 상큼하게 차올라 있었다. 비록 수풀에 꼬라 박힌 내 모습을 혼자 되감기 해보다가 잠시간 창피함으로 머리가 띵하긴 했지만 그것은 하늘 높이 피어오른 연기 같은 나의 열정을 막을 만큼 힘이 세지는 못했다.


  나는 다시 반반하게 다져진 도로로 자전거를 끌고 돌아가 안장에 앉아 페달을 밟고 핸들을 조정해 앞으로 나갔다. 한동안 균형을 잡지 못해 자전거를 멈추고 다시 출발하는 일이 몇 번은 더 계속 됐지만 나는 멈추는 법을 몰랐다. 그렇게 일주일 정도 연습을 하고 나니 나는 내 키에 맞지도 않았던 성인용 자전거를 능숙하게 탈 수 있게 되었고, 이후 자전거는 내 인생에서 굉장히 중요한 교통수단이 되어주었다.





  열두 살의 여름방학이 아주 희미하게 남아 퍼즐 조각 맞추듯 장면장면의 기억만 겨우 떠오르는 서른한 살의 나는 잘 다니던 회사에 갑자기 퇴사를 질렀다. 말 그대로 소리를 내지르듯 급하게 퇴사를 했다. 말이야 후련하게 내지른 퇴사 같겠지만 사실 내 인생의 방황기는 그때부터가 진짜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퇴사 후 나는 3년간의 공백기를 가졌는데, 당시 내 안을 가득 메웠던 생각은 망한 내 인생에 대한 이야기들 뿐이었고, 때문에 나는 내 인생의 항로에서 앞으로 나갈 한 발자국조차 내딛을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건 누구나 겪을 법한 실패에 대한 이야기 때문이었다. 순조롭지 않은 연애와 결혼, 적성을 고려하지 않은 진로, 사회생활이 어려운 성격, 낮은 자존감, 경제적 어려움, 심리적 불행... 그러나 나와 같은 어떤 이들은 쉽게 털어버리지 못할 그런 이야기 때문이었다.


  나는 내 인생이 망한 이유만을 볼 수 있었고, 그래서 희망을 찾을 수 없었으며, 나를 지탱해 줄 그 무언가조차 모조리 무너진 것 같은 심경 속에 살았다.





  어느 날 아침, 눈이 일찍 떠진 나는 산책길에 올랐다. 그 아침의 공기는 두 귀와 코끝이 시리도록 차갑기만 했고, 숨을 내뿜는 즉시 입김은 하얀 연기가 되어 피어올랐다. 그 모습을 눈으로 좇다 문득 올려다본 하늘에서는, 산등성이 너머로 갓 피어난 말간 햇살이 하늘 결을 따라 출렁거리고 있었다. 매일 보던 햇살이건만 유독 그날의 해가 달리 보인 건, 내가 전과는 달라졌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그 해가 너무나 반짝거려서였을까? 그것도 아니면 그 말간 햇살이 그날만큼은 더 새빨개 보였기 때문이었을까? 나의 가슴이 햇살을 따라 울렁거리다 왈칵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순간 내 입에서 “망해봐서 다행이다”란 말이 불쑥 튀어나왔다. 만약 내가 망하지 않았다면... 3년간의 공백기와 그로 인한 불행을 느껴 볼 기회가 내게 주어지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해가 뜨거웠던 열두 살의 여름방학을 기점으로 내가 자전거를 능숙하게 탈 수 있게 된 건 넘어진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기 때문이었다. 만약 내가 자전거와 함께 밭두렁에 꼬라 박힌 날, 아파서 또는 나 자신을 부끄럽게 여기고 포기했다면, 나는 그 이후로 오랫동안, 아니 어쩌면 영영 자전거를 타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나에게 불행이 찾아오지 않았다면, 그래서 그냥 그랬던 날들을 전과 같이 그냥 그렇게 보냈었다면... 나는 나에게 주어진 것들을 이토록 찬란하게 다시 볼 수 있었을까?  



  아이스크림은 더울 때 더 시원하게 느껴지는 법이고, 사람은 떨어져 보면 더 보고 싶은 법이니까. 그래서 나는 종종 생각한다. ‘그때 넘어져 봐서 참 다행이다’라고 말이다.





이전 09화 좋아해서 남겨둬야 하는 것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