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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리여니vvv Jun 26. 2024

등산과 하산

자신만이 아는 이유



가시에 찔리지 않고서는
장미꽃을 모을 수 없다.
필페이 <우화집 : 두 여행자>





  나는 등산을 좋아한다. 그런데 오르는 걸 좋아하지, 내려가는 걸 좋아하지는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왜냐하면 내려가는 일이 더 힘드니까...! 사실 오를 때는 단순하다. 두 다리에 바짝 힘만 주면 되니까 말이다. 그런데 내려갈 때는 완급 조절 스킬이 상당히 필요하다. 너무 힘만 줘서도 안되고 너무 힘을 빼서도 안되며 힘주고 힘 빼고를 능숙하게 할 줄 알아야 내리막길을 내려가는 것이 훨씬 수월해진다.


  6-7년 전쯤, 한라산 등반을 주목적으로 한 제주도 여행을 한 적이 있다. 그때에는 한창 직장 다니는 시절이라 휴가는 1년에 한 번, 3박 4일이 주어지는 게 고작이었지만, 액티비티 한 활동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그 짧고도 귀한 여름휴가를 모두 헌납할 정도로 한라산 등반은 매우 매력적이게 느껴졌다.


  나는 제주도 도착 후 첫날 아침에 한라산 등반을 했다. 한라산 정상에 오를 때까지만 해도 별로 힘든 줄은 몰랐다. 몇 군데 가파른 길이나 계단을 제외하고는 생각보다 완만한 길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한라산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더 아름다워지는 풍경에 매료되어 고됨을 잊기도 했다. 하늘과 가까운 느낌, 나무의 특이한 모양, 주변의 것들과 조화로운 산세...



  마침내 정상에 올라 백록담을 구경하고, 사진을 찍고, 정상에 오른 사람들과 한데 어우러져, 싸 온 컵라면을 꺼내 먹을 때에는 감회가 정말 남달랐다. 그것은 목표한 것을 이룬 ‘성공’에 대한 감동이었다. 그래서 한라산 등반이 목표였던 나의 여름휴가는 한라산 정상을 찍었기 때문에 거기서 끝이 났을까? 아니다. 누구나 답을 알고 있듯 거기서 끝났다면 반쪽짜리 여름휴가가 되었을 것이다. 다음 반쪽 코스는 산을 내려가야 하는 것부터가 시작이었다.


  나는 지금 그때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한라산 정상을 올랐다는 성취감보다 휴가가 아쉬웠다는 감정이 더 많이 떠오른다. 왜냐하면 그 뒤의 일정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일단 한라산을 내려가는 게 정말 힘들었는데, 그냥 내려가는 것도 힘든 와중에 도중에 비까지 보슬보슬 내렸다. 비에 젖은 땅은 미끄러워 한발 한발 내딛는 것이 조심스러웠고, 또 끊임없이 이어진 내리막길을 내려가기 위해서 몸에 힘을 많이 주어야 했다. 그런 상태의 대장정이 4시간 정도 계속 됐다. 끝이 보이지 않는 암흑 같은 내리막길을 걷고 걸어 평지에 다다랐을 때에는 ‘살았다!’라는 안도의 한마디가 절로 나왔다.


  문제는 단지 거기에서 끝난 게 아니었다. 왜냐하면 나에겐 그 뒤 2박 3일의 일정이 더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일정 동안 나는 근육통을 앓았고, 움직일 때마다 고통의 비명을 질러댔으나 쉴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남은 휴가를 그냥 보내기에는 아까우니까, 그리고 제주도를 그냥 지나치기에는 아름다운 명소가 너무 많았으니까.  





  나는 첫 직장에 꽤 운이 좋게 들어갔다. 대학 4학년 마지막 학기를 남기고 있던 때, 대학 교수님의 소개로 취직할 수 있었다. 그때 나는 매우 소극적인 학생으로서 아주 조용한 대학 생활을 하고 있었고, 대학 친구 하나 사귀지 못한 건 물론이거니와 교수님과 안면을 틀 기회도 갖지 않았다. 4학년이 되어서, 내가 취직을 하기 위해 했던 일은 고작해야 졸업을 위해 학교를 성실히 다니는 일과 취직했으면 좋겠다고 기도를 외는 것 정도뿐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인지 단 한번 수업을 들었던 교수님에게서 취직 관련 연락이 왔다. 생전 자기소개서라는 것을 제대로 써본 적도 없던 나의 어리숙한 이력서는 처음에는 좋은 결과를 가져다주지 못했지만 교수님 소개 덕분인지 다행히 기회는 더 주어졌다. 나는 그렇게 두 번의 도전으로 첫 직장에 입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오래 지나지 않아서 나는 직장인의 삶이 내게는 행복을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말았다. 그러나 나는 그곳에서 꽤 오래 버텼는데, 6년 7개월을 다니고 나서야 사표를 냈기 때문이다. 회사에 적응하는 1년 정도의 시간을 제외하고는, 나는 근 5년 정도 퇴사에 대한 소망을 입에 달고 살았지만 지지부진 끌리 듯 시간을 보냈다. 그건 경제적 자긍심 하나를 포기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건 분명 진즉에 끝을 마주했어야 하는 일이었으리라. 내 삶은 언제나 ‘내 것’이고, 내가 행복하지 않은 일에서 나의 정체성을 찾을 가능성은 거의 없으니 말이다. 그렇게 노래를 불러왔던 퇴사를 하던 날, 왜인지 나는 기분 좋은 마무리를 하지는 못했다. 그동안 맹탕 같기만 하던 내가 퇴사 앞에 갑자기 강경해지자 회사 동료들은 나를 이상하게 보며 나의 결정을 말렸고, 그런 상황 속에서 보이는 태도와 달리 나는 죄책감이 휘몰아치는 감정으로 근 7년 동안 매일 앉은자리를 정리했다.


  이런 과정을 겪었던 나는 나의 취직과 퇴사의 과정을 마치 한라산 등반과 같았다고 표현하고 싶다. 한라산 등반처럼 오르는 일보다 내려오는 일이, 그래서 취직보다 퇴사가 더 어려웠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퇴사는 정리의 기술이 필요했고, 내가 완급조절을 할 수 있는 정도의 인간관계 기술을 가졌더라면, 나는 더 나은 결과를 맞이하지는 않았을까 하고, 지금에 와서 종종 생각해 본다.


  오르막길을 오를 때는 과감하게 힘만 주면 되었다면, 내리막길을 내려올 때는 과감하게 나아가면서도 때로는 물러날 줄 아는 자세 모두가 필요했다. 그리고 상처받을 일이 있어도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는 의연하고도 넓은 아량을 가지고 있다면 금상첨화이리라. 또한 더 가볍게 내려오기 위해서는 내려놓아야 하는 것들이 많았다. 그건 내려오기 전까지는 전혀 문제 되지 않았던 것들이었는데, 내려옴을 결심한 순간 짐이 되어버리는, 그런 것들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런 모든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꼭 해내어야만 한다는 자신만의 명백한 이유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거였다. 그건, 남들은 전혀 알아주지 않는 자신만의 아주 은밀하고도 중요한 일일 것이기 때문이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라고 해서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살면서 그런 구간을 만날 때마다 포기해 버린다면, 그건 주도권을 빼앗긴 내 것도 아닌, 그렇다고 남의 거라고도 할 수 없는 흐리멍덩한 삶이 되어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하산과 마찬가지로, 나의 퇴사 경험은 쉽지 않았지만 나는 그때의 선택을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은 없다. 만약 아직도 내가 아직도 하산을 실행하지 않았다면, 나는 여전히 그 산에 머물러야 할 것이다. 그곳의 산세를 이미 전부 구경하고, 라면을 먹고, 사진을 다 찍었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흥미를 잃은 그 일들을 여전히 되풀이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내 인생의 다음 코스, 다음 산, 그리고 더 예쁠지도 모를 다음 산을 오를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매일 생각했겠지. ‘인생은 원래 이렇게 재미가 없는 건가...?’라고.


  내 기억에 한라산이 더 애틋하게 남아있는 건, 잘 올라서가 아니라 어렵고 힘들었지만 잘 내려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직장인이었던 나의 과거가 지금 와서 퍽 자랑스러운 건 운 좋게 취직해서가 아니라 죄책감을 가득 안고서도 퇴직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 자신을 위해 해냈다는 사실이 자못 내 가슴을 뜨겁게 울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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