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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니양 Jun 23. 2024

넌 나의 친구

마음의 평화를 위해 그를 찾는다




친구란 그대의 필요를 채워 주는 자이다.
사랑으로 씨를 뿌려
감사하는 마음으로 수확하는 그대의 밭.
또한 그대의 식탁이며 따뜻한 난롯가.
그대는 배고픔 때문에 그에게 가고,
마음의 평화를 위해 그를 찾는다.

<예언자>, 칼릴 지브란




  세상에는 다양한 관계가 있다. 그리고 나에게도 다양한 관계가 있다. 가족, 친구, 지인 등등... 관계 중에도 다양한 관계가 있고, 또 다양한 양상의 관계는 다양한 감정을 동반한다. 좋을 수도 있고, 싫을 수도 있으며 애매하기도 한 뭐 그런...


  나는 사람 사이를 상당히 중하게 여기기는 하지만 모든 관계가 반드시 필요하다거나 좋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좋은 관계란 것은 인생 치트키처럼 일부분 삶을 풍요롭게 할 방법이 주어진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좋은 친구란 삶의 순간순간을 얼마나 풍요롭게 꾸며주는 존재인지 나는 감히 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감사하게도 나에게는 그런 친구가 몇이나 있기 때문이다.


  “나 요즘 푸바오 영상 보는 재미로 살잖아.”


  오랜만에 만나 다양한 주제의 수다를 떨던 중 서영이가 툭 던진 말이었다. 푸바오? 한창 영상이며 인터넷, sns를 클릭만 하면 나오던 이름인지라 나도 푸바오라는 판다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름을 안다는 정도일 뿐, 나는 푸바오에 대해서 그 이상의 매력을 느끼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서영이가 푸바오라는 말을 꺼내자 호기심이 인 나는 서영이에게 제안을 했다. “그럼 우리 다음에 볼 때 푸바오 보러 에버랜드에 갈까?.” 그렇게 서영이와 나는 푸바오를 보기 위하여 에버랜드를 찾았다.


  “와, 나 중학생 때 와보고 에버랜드 처음이야.”

  “야, 너 연애를 안 하니까 에버랜드도 안 와보지.”


  서영이보다 기껏해야 두 번 정도 연애를 더 해봤을 나는, 그동안 달리 연애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서영이를 신기하게 여기며 놀리듯 말했다. 그러나 그런 나와는 달리 서영이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평온한 미소로 답할 뿐이었다.


  푸바오 가족을 보기 위해서는 족히 1시간 이상은 기다려야 할 것 같았다. 줄이 끝없이 길게 늘어서 있었고, 그 뒤에도 계속 사람들이 줄을 섰다. 그러나 내 마음은 쉬고 있는 나그네와 같이 한가로웠다. 그건 아마도 ‘함께’ 였기 때문이었을 거다. 기다리는 사이 서영이는 나에게 열변을 토하며 푸바오와 푸바오의 가족에 대해서 알려줬다. “아니, 아니~ 그러니까 푸바오는 여자애고, 아래 쌍둥이 자매가 있고, 아빠는 러바오, 엄마는 아이바오야…!”


  긴 기다림 끝에 우리에게도 드디어 푸바오를 볼 수 있는 5분이 주어졌다. 5분 동안 각자 흩어져 분주하게 사진을 찍었고, 결과는 달랐다.


  “서영아, 너도 러바오가 앉아서 대나무 뜯고 있는 모습 정면으로 봤어? 정말 귀여워.”

  “헐 진짜? 나 아예 못 봤어… 아쉬워!!ㅠㅠ“





  “저… 미안한데 혹시 돈 좀 빌릴 수 있을까?”


  대략 4년 전쯤일까? 나는 문자로 서영이에게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 그전에 두 명의 친구에게 먼저 말을 꺼냈지만 딱히 기대하는 소식을 들을 수는 없었다. 물론 급한 마음에 꺼낸 말이긴 했지만 한 편으로는 나는 서영이가 거절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도 없잖아 있었다. 나는 그동안 누구보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돈 문제로 얽히고 싶지 않다고 생각해 왔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막상 곤란한 상황이 되니 친한 친구들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응? 무슨 일이야? 일단 나한테 있는 돈 보내줄게.”


  곧바로 전화를 걸어온 서영이는 당황한 기색은 역력해 보였지만 나의 사정을 깊게 묻지는 않았다. 되레 내가 말한 액수보다 적은 금액을 빌려줘서 미안하다고만 했다. 채우지 못한 금액이 못내 마음에 걸렸는지 나에게 다른 방법도 제시했다. “우리 같이 하는 적금도 있잖아, 그것도 일단 좀 빌리는 건 어때… 십시일반으로 모아봐야지.”


  그 말을 듣고 난 뒤의 내 맘은 이전과 같을 수가 없었다. 그동안 돈을 빌리고 받는 행위 자체에 대해서 꽤 부정적으로 생각했던 나로서는, 우선 나 자신이 돈을 빌리는 입장이 되었다는 것이 씁쓸했으나 한편으로는 그동안 내가 친구로만 여겼던 서영이가 다르게 보였다. 그녀는 나보다 어른이었고, 깊은 속내를 지녔으며 상대의 어려운 마음을 두루 살필 줄 아는 행동이 무엇인지, 단 하나의 오차도 없이 꿰뚫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부유한 상황 속에서도 친구는 언제나 존재하기 마련이라고. 하지만 어려운 상황에서 나를 도와준 친구는 친구 그 이상으로 다시 태어난다. 마치 수호천사나, 깨달음을 주러 온 현자 같은 개념이 그 이름 앞에 형용사처럼 붙어버리는 것이다.


  그때 내가 느낀 감정은 정말 친구 그 이상의 것이었다. 나는 그녀를 달리 보기 시작했고, 내 안에 다른 존재로 그녀를 되새김질했다. 그리고 서영이와 같은 친구가 나에게 몇 명이나 더 있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된 또 다른 순간을 맞았을 때 나는 충격에 빠지고 말았다. 그리고 나는 속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신은 그들의 존재를 알아차리라고 나에게 고난을 보낸 것일까? 어둠을 마주하고서야 별을 보는 것처럼, 내게 별을 쏟아부으시는 중일까?’


  그처럼 더 방대해지는 사랑의 감정은, 아이러니하게도 휘몰아치는 큰 고통 속에서 더욱 영화롭게 피어나는 법이었다. 나는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 어떤 외로움이 내 눈을 막을지라도, 내 곁에는 항상 그런 ‘좋은 친구’와 같은 존재가 함께 있어준다는 것이 진실이라는 것, 그렇기에 나는 기죽어 살 필요가 없다는 것, 사랑은 우선이 아니라는 것, 사는 데 중요한 건 나 혼자 잘나서 사는 것이 아니라 함께 잘 사는 거라는 것.


  고등학생 시절부터 꾸준히 서로를 놀려대고, 또 서로의 안부를 궁금해한 서영이와 나 사이에 푸바오에 대한 기억이 하나 더 생겼다. 그리고 우리는 지나온 날보다 앞으로의 날이 더 기대되는 사이가 될 것이다. 깊어진 마음이 기쁨으로 드러났을 때 나는 그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아니, 그걸 놓치다니 바보네 바보야.”


  그리고선 판다의 앞모습을 보지 못한 서영이를 맛깔나게 놀리는 것에 신이 나는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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