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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리여니vvv Jul 01. 2024

나의 아버지에게

어른이 되어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

 


사랑이 그대를 부르거든 그를 따르라.
비록 그 길이 힘들고 가파를지라도.
사랑의 날개가 그대를 감싸 안거든
그에게 온몸을 내맡기라.
비록 그 날개 속에 숨은 칼이
그대를 상처 입힐지라도.  

<예언자>, 칼릴 지브란





  아버지, 나의 아버지.


  한 때 저는 아버지가 죽기를 바랐지요. 매일 술에 취해 가족들에게 손찌검하는 당신이 너무 미웠거든요. 술에 절은 당신의 눈빛에서는 다정하던 예전의 모습은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매서운 바람이 불었습니다. 그런 당신을 누군들 무서워하지 않을 수 있었겠어요? 갈수록 어둡고 폭력적으로 변하는 아버지 당신을 옆에서 지켜보기란 정말로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날 당신은 역시나 술에 취해 있었습니다. 몸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술을 진탕 마신 당신은 늦은 저녁, 이름 모를 어느 아저씨의 등에 업혀 집으로 돌아왔어요. 널브러진 당신을 보며 저는 안도했고, 또 귀찮았습니다. 당신은 기억이나 하실까요? 당신의 팔다리를 하나씩 잡아끌며 팽개치듯 방에 누인 저희 삼 남매의 표정을 말입니다. 하지만 그날이 당신과의 마지막 날이라는 걸 알았다면 과연 저희는 그때와는 다른 표정을 지었을까요?


  새벽녘, 컴컴한 어둠을 뚫고 갑자기 요란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건 준비된 이별이었던 걸까요? 그날은 마침 연휴였고, 때문에 친가족들이 전부 시골집에 모여있었죠. 우왕좌왕하는 소리와 기도하는 소리가 뒤섞여 길을 잃은 듯싶더니 이내 흐느끼는 소리가 그 위를 덮었습니다. 그리고 늦게나마 우리는 당신의 소식을 작은 어머니로부터 전해 들을 수 있었습니다. 숨을 쉬지 않아 병원에 갔다는 당신의 소식을 말입니다.


  그때 저희 삼 남매는 잠이 덜 깬 채, 그리고 멍한 상태로 숨을 죽였더랬죠. 아마도 믿을 수 없어서였던 것 같습니다. 매일 당신이 어서 죽어버리기를 그토록 바라왔던 저건만, 왜인지 감정이 참 이상했습니다. 가족의 죽음을 현실로 받아들이기에는 제가 너무 어렸던 탓일까요? 이상하게 속으로는 그런 기도가 새어 나왔습니다. ‘하나님, 그래도 아버지를 데려가지 마세요. 아버지를 살려주세요’ 그러나 사실 저는 직감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걸 말입니다.


  그제야 두 목을 타고 꺼이꺼이 슬픔이 밀려왔습니다. 정말로 떠나버린 당신이 미워서, 그리고 문득 보고 싶어서... 복잡한 눈물이 한동안 흘러내렸습니다. 당신은 그 후의 저희 삶을 아실까요? 당신의 장례는 집에서 치러졌습니다. 거실에는 당신의 마지막을 기리기 위해 동네 사람들이 자리를 메워주었고, 큰방에는 노란 삼베 상복을 입은 당신의 차가운 주검이 누여있었습니다. 그리고 저희 삼 남매는 작은방에 모여 울었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마도, 우는 것, 그리고 아버지와의 영원한 이별을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전부였던 것 같습니다. 그때 사람들의 표정을 보셨으면 당신은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요? 가여워 어찌할 바를 모르는 어른들의 눈빛은 때로는 어린 마음에 상처가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당신은 아실까요?



  그로부터 수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저는 가끔 당신이 돌아가신 그날로 돌아가곤 합니다. 그날 좀 더 다정한 손길로 당신을 만질걸, 한 번쯤은 당신이 집에 돌아오셨음을 감사해 볼걸, 그리고 아무리 당신이 미워도 어서 빨리 죽기를 바라지는 말걸… 하는 이제는 많이 늦은 후회 몇 점을 남기고 돌아옵니다.


  저는 자주 꿈을 꿉니다. 제 고향 집에서 노는 꿈을 말입니다. 그리고 그곳에는 항상 당신이 있습니다. 꿈속에서 당신은 그저 안방을 차지한 채 잠을 청하고 계실 뿐이지요. 그러나 저는 당신이 그저 그곳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을 받곤 합니다. 그 안정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는 것이죠.


  아버지, 저는 어느덧 서른여섯 먹은 어른이 되었습니다. 아마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10년 전쯤의 나이와 같겠네요. 제가 이렇게 제 어린 날 마주한 아버지와 어깨를 견줄 만큼의 어른이 되고 보니 문득문득 아버지가 진 삶의 무게에 대해서 이해가 되곤 합니다. 그때 당신이 짊어진 가장의 무게는 얼마나 한 무게였던 걸까요? 아픈 몸으로도 끝끝내 일을 놓지 않았던 당신은 놓지 않은 것이 아니라 못했던 게 아니었을까? 당신이 매일 술을 마신 것은 어쩌면 당신이 유일하게 아는 고통을 잊는 방법은 아니었을까?




  저는 당신이 당뇨병으로 인해 죽어가는 과정을 오랫동안 지켜봐 왔습니다. 손 발이 썩고 온몸이 마비되어 가는 중에도  매일 새벽에 일어나 집안의 대소사를 돌봐오던 당신을 보았습니다. 당신으로 인하여 냉장고는 늘 먹거리들로 가득 채워졌고, 마당이며 밭에는 각종 채소가 빼곡했지요. 그리고... 매년 갖은 음식을 만들어 주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던 것을 즐기던 당신을, 저는 보곤 했습니다.


  어릴 때 저는 그것들이 전부 당연한 것들인 줄 알았지요. 하지만 어른이 되고 보니 알겠더군요. 그건 당신이 매일 죽을힘을 다해 해낸 것들이었고, 온 힘을 짜낸 사랑으로 비롯한 것들이었다는 것을요. 결코 당연한 것들이 아니었다는 걸 말입니다.



  당신의 생이 거의 끝나갈 즈음 술을 마시고 가족들을 때린 것을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을까요? 그러나 저는 지금 당신의 심정만은 어렴풋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항상 우리에게 진심이었던 당신의 고단한 마음을 저는 이제는 조금 더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아버지, 나의 아버지. 당신을 일찍 떠나보내 그동안 삶이 참 고단했습니다. 저희의 고단함을 당신이 알아주실 날이 오기는 할까요?


  아버지 저는 당신의 손을 꼭 잡고 얼굴을 마주 보며 말해주고 싶습니다. 그래도 아버지가 제 아버지여서 고마웠다고 말입니다. 문득 당신이 그립네요. 한때 제 옆에 머물다 가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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