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내가 사랑했던 것
영원한 변화 이외에는
세상에서 아무것도 계속되지 않는다.
라캉 후작 <애송 시집>
내 기억 속에는 영화가 있다. 감정이 흔들리고 동요될 때마다 꺼내보는 그런 영화 말이다. 거기에는 감성을 자극할 만한 로맨틱한 이야기나 빠른 전개로 흥미를 유발하거나 빅웃음을 자아내는 웃긴 내용 하나 없다. 그저 하늘 같은 평온한 이미지가 24시간 내내 상영될 뿐이지만 내게는 그 무엇보다 즐거움을 준다. 그건, 내 가슴이 일평생 사랑해 온, 그리고 앞으로도 사랑할 나만의 영화였다.
어린 시절 우리 가족은 총 두 번의 이사를 했다. 한 번은 산골 마을에서 슈퍼로, 그다음은 슈퍼에서 다시 산골마을로 이사를 갔다. 다시 이사를 갈 때 우리는 새집을 지어 들어갔는데, 나는 그때 살았던 집을 생각하면 기분이 좋다.
나의 영화는 고향 집 마당의 앵두나무 앞에서 시작된다.
당시 우리 집 뒤뜰에는 매실, 배, 감, 자두, 포도, 앵두, 살구, 대추 등의 다양한 나무가 있었는데, 나는 초여름 최고의 이벤트는 단연 앵두나무와 함께한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봄이 되면 키가 작달막한 앵두나무에 하얀 꽃들이 어여쁘게 얼굴을 비추긴 하지만 그것이 그렇게도 탐스러운 과육을 내어 놓을 거라는 건 상상도 할 수가 없다.
그런데 여름 어귀로 접어들면 앵두나무의 초록 잎들 사이로 퍼런 열매가 가지마다 송알송알 맺히기 시작하는데,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큰 감흥이 생기지는 않았다.
하지만 볕이 뜨거워지고 낮이 길어지면서 앵두는 빨갛게 달아오르고, 씨알도 제법 굵어지는데, 그게 그렇게 마음을 설레게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사실 나는 앵두나무가 열매를 영글기 전의 그 기간을 견디지 못하고, 퍼런 열매가 맺힌 순간부터 틈만 나면 앵두나무를 찾아갔다. 하루하루 더디게 가는 그 시간 동안에는 초조함과 신기함, 설렘과 실망 등으로 복잡한 감정으로 점철되곤 했지만 나는 실은 그 시간마저도 사랑했는지도 몰랐다.
부쩍 빨개지지 않던 앵두는 어느 날 불쑥 빨개지곤 했다. 그러면 고 앵두 언제 한알을 맛볼까 기대에 찬 나는 초롱초롱한 마음이 되어서는 한참을 앵두나무 앞에서 앉아있다 가곤 했다. 그리고 마침내 앵두가 탱글탱글 탐스럽게 거듭났을 때에는 나로서는 그것이 그렇게 날아갈 듯 기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또 스스로 맺어준 그 열매가 매우 감사했다.
나는 날마다 앵두나무를 찾아가 앵두를 따먹었다. 앵두를 두 손 가득 따서 한입에 털어 먹고 있으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는 사람이 되는 것 같았다. 앵두는 맛과 설렘과 즐거움을 내게 선물해 주었다. 그래서 그 시절 나에게는 그 기간이 매우 특별한 시간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모든 영화가 그렇듯 클라이맥스를 맞은 이야기는 끝을 맺어야 한다. 영원히, 영원히 상영될 수는 없는 법이니까. 그리고 ‘나의 앵두나무’ 영화도 예외가 되지는 않았다.
그 어여쁜 앵두나무는 어느 날 문득 할아버지에 의해 댕강 잘려나갔다. 아니, 마당 곳곳의 수많은 나무는 할아버지의 손에 차례차례 잘렸다. 그때의 나는 할아버지의 행동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다만 나의 앵두나무를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점이 매우 아쉬울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그건 아마도 할아버지의 필사적 노력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건 어쩌면 먼저 떠나보낸 셋째 아들의 흔적을 지워보기 위한 할아버지만의 사투였을지도.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아버지 생전 사사건건 부딪힘이 잦은 부자지간이었지만 미운 정이 더 무서워서 그런 걸까, 할아버지의 가장 아픈 손가락이 된 아들의 흔적은, 우리들 사이에서 그렇게 하나 둘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나는 이따금씩 그때의 일들을 떠올려보는데, 그건 마치 별 같다. 그리고 별은 내 마음속에서 다시 살아나 반짝 빛을 발하곤 했다. 나는 때때로 한참 동안 그 별을 보았다. 그 아름다운 별을 가슴에 고이 품고서 보고 또 보았다.
수입이랄 것이 전혀 없을 때가 있었다. 당연했다. 나는 퇴직했고, 앞으로 어찌해야 할 바를 전혀 몰랐으니까. 그건 짝꿍 또한 마찬가지였던 것 같았다. 우리는 서른을 훌쩍 넘겨버린 시점에 긴긴 방황의 시기를 맞았다. 그건 누구나 맞이할 법한, 그러나 누구도 맞이하고 싶지 않은 그런, 길고도 어두운 시간을 동반했다.
우리는 둘 다 수입이 없었고, 있는 돈을 최대한 아껴서 생활해야 했다. 사실 있는 돈이랄것도 얼마 없어서 선택지조차 없을 때가 많았지만 말이다.
수중에 이삼만 원이 전부인 날이었다. 또 마침 냉장고에 쟁여진 먹을 것은 똑 떨어지고, 대여섯 개 남아있던 라면도 질리던 참이었다. 그런 현실에도 나는 매일 라테 한 잔을 포기할 수가 없었다. 그럼 작은 희망마저 죽어버리는 것 같아서.
그래서 나는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고심 끝에 마트에서 우유와 칼국수 밀키트를 사고, 분식집에서 김밥 두 줄과 편의점에서 강아지 간식 한 봉지를 샀다. 금액을 맞춰 남겨놓은 커피값으로 라테 한 잔을 손에 쥔 나는 당당한 걸음으로 귀가했다. 오늘 하루 먹을 양식도 마련했겠다, 강아지 간식도 샀겠다, 라테까지 야무지게 쟁취했으니 이보다 기쁠 일이 어디 있을까 득의양양한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참 마음만큼이나 현실 또한 넉넉하지 못했던 시기였다. 하지만 그때 나는 나에게 되뇌곤 했다. ‘지금은 지금이니까 지금 이런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거야’라고 말이다.
이것은 내 마음속에서 이따금 상영되는 ‘나와 앵두나무’ 영화가 가르쳐 준 교훈 덕분이었다.
경제적 불안, 쉬는 날들에 밀려오는 두려움, 2시간 반짜리 아르바이트, 국가의 도움을 받아 다닌 학원, 자격증을 따낸 기쁨, 배움의 의지가 생겨 다시 도전한 대학교, 강아지와의 두 시간짜리 산책, 고양이 똥치우기, 따뜻한 날 호수 걷기, 일어나기 싫어 삐댈 대로 삐댄 아침, 샤워 후 느끼는 개운함, 세탁방에서 한 번에 돌리는 45개의 수건….
뜻대로 된 일과 뜻대로 되지 않은 일… 그리고 지루하고 평온하고 궁핍한 일상들… 그것들은 전부 지금 일어나는 일들이었다. 지금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느낄 수도 있지만, 나중에는 보고 싶은 ‘아무것’이 될지도 모를, 그런 앵두나무 같은 시간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다짐했다. 설령 뜻대로 되지 않은 일들이 내 앞에서 파도를 치듯 몰려올지라도 잠시만 슬퍼하자고. 어쩌면 지금의 순간이 문득 기묘하고도 소중했다고 느낄 순간이 올지도 모르니까. 아니, 반드시 오고 말 테니까.
그건 마치
어린 내가 너무도 사랑했던
앵두나무와 함께 했던 그 순간들과 같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