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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지기 Mar 27. 2024

잔소리 좀 하지 마.


우리 첫째는 9살이다. 초2

10살도 안 된 아이가 엄마인 나에게 얘기한다. 

"잔소리 좀 하지 마."

난 숙제가 있다는 것을 알려줬을 뿐인데......


하...

긴장 백배. 기다려온 사춘기가 이제 시작되는 건가.

잔소리하지 말라고 얘기할 수는 있는데 말투가 어쩜 저렇게 얄밉게 얘기할 수 있지? 별의별 생각이 스쳐 지나가고 갑자기 화가 올라왔지만 잠깐 참기로 했다. 그리고 계속 어떻게 대응을 해야 할 것인가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서운함도 쌓이고 이 상태로 얘기하면 분명 화를 낼 것이 분명했다.


이틀이 지나고 잠이 들기 전.(우리 집은 애들과 내가 함께 잔다.)

얘기를 시작했다. 

"첫째야, 엄마도 잔소리가 너무 싫어서 정말 안 하고 싶어. 그런데 생각해 보니 잔소리의 기준이 뭔지 도대체 모르겠다. 네가 좀 알려줄래?"

"엄마, 엄마가 말한 거 잔소리 아니야. 내가 잘못했어."


이틀이나 지난 일이기에 우리 아이는 다 잊었나 보다. 워낙 감정 변화가 빠르게 지나가니 나는 그 감정을 따라갈 수 없다. 내 감정은 훅 끓어올랐다가 내려갈 기미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천천히 내려가는데, 우리 아이들은 화냈다가 웃고 울다가 웃곤 한다. 나중에 찾아올 사춘기가 걱정된다. 아이가 아닌 내가 걱정된다. 덩치는 산만한 어른인데 마음속은 질풍노도 속 아이 같아서 그것이 더 걱정된다. 마음이 넓디넓어 사춘기 자녀를 품어줘야 하는데, 혹시라도 그러지 못할까 봐. 그러다가 아이의 마음속에 깊은 상처를 남길까 봐 그래서 걱정이다. 


'사랑을 받고 표현하는 집에서 자랐다면 나도 괜찮은 사람이 됐을 텐데......'라며 핑계도 대보고 핑계는 아무 쓸모없다고 이제라도 배워야 한다며 책을 집어든다. 먹고살기 힘든 어린 시절에 아빠의 술 냄새와 엄마의 비교 속에서 자랐던 끔찍했던 기억이 너무나 슬퍼 눈물과 분노만 가득했던 때도 있었다. 내가 받은 상처는 굉장히 오랫동안 나를 힘들게 했고, 이제는 그냥 그러려니... 그 힘든 시절 그래도 무사히 잘 지나와서 다행이란 생각으로 살고 있다. 그렇지만 현시대를 살고 있는 나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 우리 아이들에게 그런 못난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 하루하루 발버둥 치는 삶이지만 겉으로는 백조처럼. 평온한 모습으로 아이들에게 여유를 주고 싶다. 


  커가는 아이에게 등불을 밝혀주는 어른이 되고 싶다. 언제든 달려와 마음 편히 얘기할 수 있는 엄마가 되고 싶다. 삶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는, 허무맹랑한 얘기도 함께 나누는 부모이고 싶다. 


하나하나 모든 것을 챙겨주는 영유아 미취학 어린이의 부모는 끝났다. 이제야 초등 어린이를 둔 엄마라는 것이 '잔소리' 사건으로 피부에 와닿게 되었다. 어린 시절을 되짚어 내린 결론은 '한 발 뒤로 물러서자'이다. 한 걸음 뒤에서 묵묵히 믿어주는 엄마가 되자. 오늘은 이렇게 다짐한다.


(생각해 보니 나는 굉장한 쫄보인가 보다. 이제 겨우 시작한 투정에 온 감정을 담아버렸다.)    



사진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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