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야 말로 고치거나 사거나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어떻게든 글쓰기 반 선생님들께 구구절절 변명이라도 할 작정이었다. 말로 다 못할 수 있으니 그냥 쓰보자 싶었다. 그렇게 해서 다시 들고 온 노트북이었다.
안 그래도 짧은 실력으로 노력도 않고 있어 해가 거듭 바뀌어도 늘지 않아 눈치 보고 있는 글쓰기 수업 시간은 부득부득 다가오는데 가만히 앉아서 다시 열어본 카페글은 한마디로 가관이었다. 그간 동료 선생님들 글 올리기 속도를 맞추지 못해 애만 태웠다. 점점 나빠지는 눈은 두고라도 간간 말썽이던 노트북이 기어이 인터넷 연결이 되지 않은지가 반년이나 된 걸 그대로 들고 있었다.
다른 것들은 어떻게 폰으로 해낼 수가 있어서 그럭저럭 지나왔다. 하지만 한동안 매주 가야 하는 글쓰기 수업시간은 제목과 소제를 정해서 초고를 적은 뒤에 고칠 시간이 있었다. 하지만 내 컴퓨터로는 인터넷 연결이 되지 않으니 남의 글을 읽기만 하다가 가까스로 한편씩 핸드폰으로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것도 마감 시간이 다 되어 갈 즈음에야 하고픈 이야기의 소재와 제목을 정하고 손가락을 놀렸다.
평소에는 그다음에라도 다시 볼 틈이 있어서 고쳤건만 이번에야 말로 아주 난감한 상황이 연출되어 해명을 제대로 해야 할 것 같다. 새로 컴퓨터를 사자니 겉이 멀쩡하다. 또 일반 글을 써서 저장하고 있어 쓸모가 있다. 그런데 인터넷이 안 되니 뭔가를 제대로 정리해서 올리기에는 폰 기능으로는 역부족이었다. 그런데도 참여하고 싶어서 신청을 했고 또 글도 몇 편 올렸다.
애초에 띄어쓰기나 첨삭 실력이 취약하니 이해해 주겠거니 했다. 하지만 어느새 글쓰기 강좌도 중반을 넘어서고 있어 좀 더 밀도 높은 글을 은근 요구하는 분위기라 나도 비록 실력은 부족하나 고칠 시간을 갖고 팠다. 그런데 번번 흐릿한 상태로 안경을 써도 잘 보이지 않는 글을 올리고야 말았다. 다시 보면 변변찮은 내가 봐도 오탈자 투성이었다. 번번 부끄럽고 미안했다.
애초에 컴퓨터가 정품이 아니었다. 아이들이 쓰던 것들이 방마다 하나씩 뒹굴고 있어 어느 것이든 되겠거니 하고 차일피일 미루다가 제대로 물어보니 죄다 들 인터넷은 안 된다고 한다. 이번에야 말로 그간 모은 비상금으로 좀 더 용량이 크고 확실한 정품으로다 컴퓨터를 장만해야 하나 싶었다. 그래도 일기는 쓰야지 하고 안내소로 들고 와서 열었다. 그런데 집에서는 감감무소식이던 인터넷 신호가 안내소에서 잡히는 게 아닌가! 그것도 평소에는 핸드폰으로도 잘 잡히지 않던 곳에서 말이다.
몇 년을 한결같이 강습해 주신 교수님께 해명이라도 하자 싶어 그간의 일들을 써 내려가니 속이 좀 풀린다. 다행이다. 비상금이 들어 있는 통장내역을 열었다 닫았다 한지도 몇 달 되었다. 건강상 일을 쉬다가 다시 한지도 겨우 일 년이라 비상금이래야 몇 푼 안 되지만 그래도 친구들과 밥을 사 먹기도 하고 예의비로 쓰면서 나름 뿌듯했는데 한꺼번에 쓰면 또다시 빈통장일 걸 생각하니 속이 벌써 시렸었다.
글을 다시 열고 수정해서 투고할 곳을 생각하기도 했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어제까지 마감인 곳이 있었건만 컴퓨터를 핑계 삼아 그냥 지나온 것이다. 투고를 목적으로 하려면 통장을 털어야 하는데 만약 새 컴퓨터로 작성해서 던져서 떨어지면 그때는 무얼 핑계되지? 안전모드로 그냥 일기라도 묵묵 써 모을까? 그 갈등이 없었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글이냐? 돈이냐? 그 사이에서 갈등하면서 하루하루 지낸 그 속 시린 상태를 잊고파 아예 인터넷을 열지도 않고 지낸 그 맘을 컴퓨터가 안 걸까? 아무튼 귀찮음이 훨씬 더 강하게 작용해서 그냥 둔 걸 인내심이라 이름 짓고 반년 가까이 버틴 내가 승리한 것은 맞는 것 같다.
한낱 기계도 오락가락하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데 사람인 나도 더 이상 헷갈리지 말고 그나마 제일 오랫동안 마음 쓰인 글쓰기에나 좀 더 집중할까 싶다.
어떻게든 여유가 생긴 것은 사실이다. 컴퓨터는 되고 비상금은 다시 굳혀졌으니 신명 나게 두드려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