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과 함께
인생의 봄을 제대로 누릴 용기가 부족한 채 엉거주춤 이십 대를 맞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하나 마음에 품은 것은 다른 사람이 쓴 글을 읽으면 재미있어서 나도 글을 쓰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 세상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비록 용기가 부족해서 도전은 잘하지 못해도 무엇이건 닥치는 대로 경험은 해 보자 싶었다. 그 말인 즉, 오래도록 삶에 대한 태도가 목표나 끈기와는 거리가 멀었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소심한 삶의 자세였다 할 것이다.
그래서인가? 일은 한 거 같은데 거의 해마다 다른 일로 장소가 바뀌었다. 첫해는 건설사 현장 사무실을 다녔다. 그다음 해에는 신문사 지국에서 일하다가 성당 사람들의 추천으로 가톨릭 단체 사무실 일을 보기 시작했다. 그런 중에도 속마음은 책임감과 거리가 먼 학생신분이고 싶었다,
아쉬움 속에서도 삶을 살아가는 데는 소속감을 갖고 싶었다. 또한 최소한의 경비도 있어야 했다. 다행스럽게도 가톨릭 단체 사무실에 다니던 몇 년간은 즐겁고 신이 났었다. 낮엔 일을 하고 퇴근 후에는 교구 및 성당 단체 활동을 했다. 그 단체에서 함께 성서 공부를 하거나 복지시설 등에 봉사를 다니면서 행복했다. 그런 때에도 마음속은 허했다.
세상의 경험이라고 했지만 마음속으로 소심과 욕심을 오가느라 진정한 보람과 성장 대신 주변만 맴돌았다. 가까스로 용기 내어 시도한 수도자의 길 또한 짧은 시간 가슴 떨리게 행복한 추억만 남기고 벗어나버렸다. 내 인생의 봄날은 활짝 피어 보지도 못한 채 웅크리고 있다가 저물 판이었다.
그때쯤 어렸을 때의 가족들로부터 받은 푸근함과 위로가 그리웠다. 가족 모두 나를 주요하게 생각하며 사랑이 넘치던 때로 돌아가고 싶었다. 가족들의 사랑 못지않은 정서적인 안정감은 어쩌면 흙과 함께였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 결론을 도출했다.
그런 생각으로 다시 돌아온 고향마을과 집은 겨울에도 참외모종을 키우느라 비닐하우스 안은 따뜻했으며 날마다 부산했다. 새벽같이 하우스로 가서 참외 모종을 일일이 살피는 것이 부모님의 일과였다. 새순이 너무 자라면 물을 적게 주고, 더디면 열을 가두기 위해 속 비닐을 당겨 덮개를 덮었다.
운동 삼아 마당을 나서다가 하우스로 가보면 동네 사람 여럿이서 품앗이로 일을 하곤 했다. 날마다 자라나는 모습을 보면서 다시 생기를 낼 때는 하우스 밖에도 얼음이 녹고 버들강아지가 눈뜰 준비를 하고 있었다.
또 다른 새봄이었다. 마을 모양새가 소쿠리 같은 고향 동네에서 맞은 삼십 대의 새봄 또한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조용히 기지개를 켰다. 결혼을 해도 시골에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흙은 내게 또다시 삶에의 의욕과 용기를 줄지도 모를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