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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산아래 첫 집 6

울지 못한 애도

by 하리

이십 대의 카드를 다 써버린 뒤에 돌아온 원 가족 품에서 그 옛날의 꿈들은 더 이상 빛나지 않았다.

일이 터지기 시작하니 세상이 흔들렸다.


언제까지나 내편일 것 같았던 아버지는 당신 뜻도 내 뜻도 아닌 방향으로 세월의 물살에 떠밀려가는 딸에게 적잖이 실망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가끔 마주치면 더 실망스러운 말로 표현하셨다.

부녀지간사이에 생긴 금이 점점 벌어져 갔다.

멋지게 일하는 당당한 모습을 기대했는데 하는 일마다 이내 파투를 내는 모습은 더 이상 아빠의 사랑스러운 딸이 못되었다. 대화도 단답형이 된 지 오래이다가 기껏 던진 말이 '섭섭하다.'였다.

결혼결심 전 마지막 직장이던 장애인 시설에서 사무실 일을 보던 중에 시설 증축을 하고 축하식이 있었다. 그 자리에 왔으면 하고 연락드렸건만 오지 않았다. 퇴근길에 공중전화를 걸었다. 섭섭하다고 한 것이 그토록 귀하게 키운 딸이 아버지께 건넨 마지막 말이 되었다. 다음날 친척 아주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사고가 났으니 빨리 집으로 오라는 것이었다. 준비가 채 끝나기도 전에 시 걸려온 전화는 병원으로 바로 가라는 것이었다.

병원 영안실에서 마지막으로 본 아버지 얼굴은 넋이 나간 가족들에 비해 놀라울 정도로 편안해 보였다. 눈을 감겨드리고 내 반지를 끼워 드리면서 얼결에 고별인사를 했다. 하지만 그때도 이후에도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그것은 이후 오래도록 가슴에 돌덩이로 남았다.

연이어 연탄가스에 취하는 사고가 났다.

이젠 정말 더 이상 사람들 속에서 일을 하면서 살아갈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엉망진창인 채 지친 몸과 마음으로 맞은 또 다른 봄 앞에서 드디어 생각을 바꾸었다.

거의 막차 수준이지만 결혼을 해야겠다고 말이다. 혹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면 다시 힘이 날지도 모른다는 가정이 섰다. 그때에야 종종 선자리가 들어왔다. 하지만 번번이 뜨뜻미지근한 한 두 번의 만남으로 봄이 다 갈 지경이었다.


진달래가 질 무렵 타박타박 마을로 걸어온 매파할머니가 있었다. 그리고 건너 건너 마을에 더벅머리 총각이 있다는 소식을 온 마을에 소문을 내고선 중매작전이 시작되었다. 울지 못한 애도 (당산 아래 첫 집 5)/ 박신자 5

이십 대의 카드를 다 써버린 뒤에 돌아온 가족 품에서 옛날의 꿈들은 더 이상 빛나지 않았다.


언제까지나 내편일 것 같았던 아버지는 당신 뜻도 내 뜻도 아닌 방향으로 세월의 물살에 떠밀려가는 딸에게 적잖이 실망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가끔 더 실망스러운 말로 표현하셨다. 부녀지간사이에 생긴 금이 점점 벌어져 갔다.

아버지는 당신이 하지 못한 대신 내가 일과 사람들 앞에서 당당한 모습을 기대했다. 하지만 하는 일마다 이내 파투를 내는 내 모습은 더 이상 아빠의 사랑스러운 딸이 못되었다. 대화도 단답형이 되어갔다. 그런 내가 아버지께 마지막으로 한 말이 '섭섭하다.'였다.

집에서 간신히 마음을 다독이느라 애쓰던 중에 지인의 요청으로 다시 일자리를 찾아 나선 곳이 장애인 시설이었다. 그곳에서 사무실 직원으로 근무한 지 일 년쯤 뒤에 시설 증축을 하고 축하식이 있었다. 그 자리에 오셨으면 하고 미리 연락드렸건만 오지 않았다. 퇴근길에 공중전화를 걸었다. 다른 직원들은 가족들이 나름의 정성을 들고 와서 축하해 주었는데 아예 오지도 않아서 섭섭하다고 했다.

다음날 친척 아주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아버지가 오토바이 사고가 났으니 빨리 집으로 오라는 것이었다. 준비가 채 끝나기도 전에 다시 걸려온 전화는 병원으로 곧장 가라 했다. 몹시 불안하게 했지만 그냥 많이 다친 정도겠지 했다.

하지만 병원에 도착하니 영안실로 가라고 했다. 아버진 병원에 도착하기도 전에 이미 숨이 넘어간 상태였단다. 너무 놀라서 숨이 멎은 듯했다. 그런 중에도 그나마 내가 한 것은 미처 감지 못한 눈을 감겨드린 일이었다. 입관 전에 내 손가락에 낀 반지를 빼서 아버지에게 끼워 드리며 고별인사를 했다. 하지만 땅이 꺼지도록 울어도 시원찮을 판인데 울음이 나오지 않았다. 장례를 다 치를 때까지 울지 못했다. 그렇게 아버지 죽음에 대해 애도를 못한 채 시간이 흘러갔다.

다시 일상이 이어졌다. 한 달쯤 지난 초겨울에 그만 연탄가스를 마시고 의식을 잃었다. 출근 시간이 되어도 오지 않는 나를 찾아온 직장 동료에 의해 발견되어 병원으로 옮겨졌다. 차를 타고 가는 줄도 모르다가 병원에 도착할 때쯤에야 한기를 느꼈다.

병원에서 퇴원 후 집에 돌아와 머물렀다. 어느 정도 몸 상태는 나아졌건만 더 이상 사람들 속에서 일을 하면서 살아갈 의욕이 남아 있지 않았다. 수녀원에 이어 홀로서기의 두 번째 계획도 다시 원점이었다.

또 다른 봄 앞에서 생각을 바꾸었다. 늦은 감은 있지만 결혼을 해서 혹시 엄마가 되면 다시 힘이 날지도 모른다는 가정이 섰다. 그때부터 종종 선자리가 들어왔다. 하지만 번번이 뜨뜻미지근하더니 봄이 다 갈 때가 되었다.


모내기 준비가 막 시작될 무렵이었다. 타박타박 마을로 걸어온 매파할머니가 있었다. 마을 사람들로부터 노처녀가 있다는 말을 듣고 우리 집을 찾아왔다. 근처 마을에 젖소를 키우며 성실하게 사는 노총각이 있다며 말을 꺼냈다.

나는 그때까지 들일은 해보지 않았었다. 일도 일이지만 육 남매 맏이라 해서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나를 설득하기 위해 매파 할머니는 씨족 일가인 온 마을 사람들을 부추겨가며 본격적인 중매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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