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니바퀴처럼
이왕에 부부로 만났으니 씨실과 날실처럼 다른 색깔과 모양으로도 착착 짜이는 천같이 조화가 잘 이뤄지면 얼마나 좋으랴!
남보기에는 둘 다 순둥이 같았으나 번번 철커덕 걸리고 삐걱대느라 혼이 났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어떻게든 맞물린 채 엮어 온 것이다. 누가 먼저 힘들다고 멈추거나 튕겨나가진 않았으니 무늬만의 부부를 넘어서서 부모 역할은 나름 각자 해내었다 할 것이다. 그래서인지 별 무리 없이 아이들은 자라 주었다
입장을 바꿔 놓고 보면 남편은 나무꾼 같은 우직함 뒤에 어쩌면 불안이 숨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속마음은 전두지휘하고 싶은데 환경상 부모님 뜻에 따라 사느라고 본성을 몰랐을 수도 있었겠다 싶다.
나 역시도 내 부모의 뜻은 알겠지만 제대로 채워 드리지 못하고 살다 보니 하루하루가 기쁨과 보람 대신 눈치 보고 감추고 탓하느라 흐린 때가 더 많았으니 말이다.
따로 또 같이 건강하게 원가족으로부터 독립하지 못한 채로 새로운 역할을 하자니 적응이 잘 안 되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화가 나면 또 다른 화가 생성되고 원망하면 원망이 돌아왔다. 그것을 안지도 시간이 꽤 흘러서였다.
어느 순간 느낀 것이 상대방만 잘못이 더 많고 크다는 명제가 슬슬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때는 이미 누군가 먼저 손을 들고 항복해야 되었다. 선뜻 결단하지 못해 냉랭한 표정을 감추지도 못한 채 그저 살기 위해 같은 자리에서 밥수저를 든 것이다. 말한 대로, 생각한 대로, 행동한 대로 여지없이 다시 나타나는 반복적인 나쁜 행동을 멈춰야 했다.
소리치거나 미워하기를 멈추어야 한단 생각이 들자 그제야 내가 보였다. 이미 오래전부터 서로를 맞물고 있었던 것이다. 양보도 이해도 없이 기대와 서운함만 가득한 채 행동은 남편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다.
화가 나면 한바탕 부딪친 뒤 감정까지 상한 나는 행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 정작 해야 할 일을 하고자 하는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간신히 밥상을 차리고 대충 치우며 생활한 게 습관이 되어갔다.
하지만 남편은 뼛속까지 천성적으로 타고났기에 원가족으로부터의 요구대응에 이어 스스로 해야 할 일들을 기분이나 몸 컨디션과 상관없이 해내고 있었다. 덕분에 종종 어머님께선
'울 집 큰 아들은 산부처다.'라고 하셨다. 하지만 나와 아이들에게는 그다지 해당사항이 없었다.
좋지 않은 말을 날마다 반복했다. 무엇보다 부모님께는 너그러운 지갑열기가 나와 아이들 앞에서는 엄청 어려웠다. 반찬값이나 옷은 아예 원천봉쇄였고 시험기간 동안에도 밥값을 받아내려면 몇십 분을 기다려야 했다. 한마디로 균형이 맞지 않았다. 하지만 나름 정한 규칙을 자신은 물론 처자식들도 따라 하길 원했다.
그 규칙을 아이들은 어느 정도 습득하곤 했지만 나는 오랜 습관이 바뀌지 않아 수시로 타박대상이 되었다. 급기야 한 번씩 튀어나오던 남편 말투는 그간의 산부처 이미지를 갉아먹게 되는 원흉이 되어갔다. 그것은 확실히 본성을 드러내어 자신이 진짜 어떤 사람이고 누구인지를 어머님을 포함한 다른 사람에게 알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 본인의 뜻을 말로 하긴 하는데 두서가 없거나 억지고집 같을 때가 있어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놀라고 당황하게 했다. 그것은 남편에겐 또 다른 변화의 시작이었다.
유순한 듯 쉬 변하지 않는 본성을 드러내고 제대로 변화를 꾀해야 하는 것은 피차일반이었던 것이다.
개성 있는 두 사람이 새로 만들어가는 가정 울타리는 그렇게 알게 모르게 조금씩 진화되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