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간의 24살
본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제품 및 단체는 실제와 무관한 것으로 허구임을 밝힙니다. 특정 인물, 단체, 국가에 대한 표현은 작가의 개인적인 생각이 포함되어 있으며, 받아들이기 불편하실 수 있습니다.
Q의 종말
이 넓은 세상의, 지구라는 행성의, 인간이라는 종에게 마지막 일주일이 주어졌다.
마침 딱 20살이 된 어른의 마음을 아는 '진짜 어른' 이 있을까?
Q는 없다고 생각했다. 막 20대가 되어 '어른'이 되었을 때의 그 감정을 나중에 다시 떠올릴 수 있을까? 이제 다 커서 자유 (?)라는 그 기쁨과, 그와 동시에 미래에 대한 막연함 두려움이 뒤섞여 천 개의 생각이 드는 그 감정. 그건 그때 아니면 느낄 수 없을 것이다.
Q는 어른이 되는 걸 기다려 본 적이 없었다. 뭐, 사춘기가 왔을 때라면 몰라도 어른들은 하나같이 '그때가 좋았지~'라고 하기에 지금이 좋은 거구나, 하고 끊임없이 몰려오는 시험들과 날 평가하려는 시선들에도 그러려니 했다.
그래도 시간은 흐르는 법이라 평가를 받고 선택을 하며 살아오다 보니 어느새 어른이 되었다. 아직 마음만은 어린아이인 것 같은데 사회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은 바뀌었다. 사회는 이제 Q를 보호해야 할 청소년이 아닌 사회에 도움이 되어야만 하는 어른으로 바라본다.
어쩌면 조금 억울할지도 몰랐다. 19살과 20살은 딱 하루 차이고, 달력 한 장 차이고, 달력 한 개 차이인데.
Q가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았을 뿐 어른에 대한 환상은 있었다. 어른이 되면 모든 걸 다 알게 되고 (인생의 쓴맛? 술의 단맛?) 멋있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드라마에서처럼 명언을 툭툭 던지고, 바쁘게 일한 다음에 좋아하는 일도 하고, 힘든 날에 술도 마시는 그런 모습을 상상해왔다.
하지만 하루가 지난다고 해서 갑자기 엄청나게 많은 걸 깨닫고 느끼는 것은 아니었다. 20살이 되고 집에서 마신 술은 여전히 썼고, 아직 공부는 끝나지 않았고, 왜 학생 때가 좋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Q는 자신이 너무 무덤덤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겉으로는 엄청 즐기는 척해 보였지만, 전날 저녁까지만 해도 친구들은 다 밤을 새운다고 하던데 그냥 늘 그랬듯 12시쯤에 잠이 들었다. 아침에 눈을 뜨고 늘 그랬듯 세수를 하고 폰을 켜 날짜를 보니 1월 1일이었다. 100개는 족히 넘게 와있는 문자들에 벌써 정신이 혼미했다.
1월 1일은 Q의 기준에서 평범하게 지나갔다. 친구들과 모여서 저녁까지 놀고, 집에 들어와서는 술을 배웠고, 머리가 아파서 일찍 잠에 들었다. Q는 그때 처음으로 자신이 술이 약하다는 걸 알았고 밖에 나가서 술 마시는 걸 금지당했다.
그로부터 1개월 정도가 지난 지금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20살이었지만 아직 속은 어린아이였다. 여전히 술을 마시면 머리가 깨질 듯 아팠고 공부는 하기 싫었고 학생 때로 돌아가기는 죽도록 싫었다.
하지만 확실히 변한 것이라면 사회의 시선이었다. 사회의 시선은 더 바뀌었다. 새내기 20살이라는 타이틀도 빼앗기고 이제 20살 밖에 남지 않았다. '새내기 20살'이라는 타이틀은 내려놓은 게 아니라 거의 강제로 뺏긴 격이었다. Q는 아직 그 타이틀을 내려놓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변한 것이라면, '20살' 타이틀이 Q의 인생에 마지막 타이틀이라는 것이었다. 그다음 타이틀을 얻을 시간은 Q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그건 역시나 종말 때문이었다. 7일 전에 통보된 짧은 종말, 역시나 그 탓이었다.
그 종말은 Q에게 크지도 작지도 않은 타격을 주었다. 애초부터 삶에 대한 미련이 별로 없는 Q였기에 타인에 비해 적은 타격이었지만, 종말이 가진 타격의 기본값은 강했다.
Q는 막상 종말의 소식을 들었을 때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혼란스럽기도 했지만 당혹스럽기도 했다. 딱히 해보고 싶었던 것도 없었고 꿈이라고는 일상을 유지하는 것뿐이었던 Q였기에 그 종말은 더더욱 어렵게 다가왔다. 종말이라니까 무언가 해야 할 것 같으나, 할 건 없고,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기엔 바쁜 세상에 홀로 서있는 기분이 들고.
아직 첫 파도라서 충격이 덜한 건지, 실감이 안 난 건지, 정말로 딱히 충격이 없는 건지 헷갈렸다. 정말로 별생각이 들지 않았다. 머릿속에 종말이라는 키워드가 띄워져있었지만 아무런 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다가 몇 초 후에 Q는 그게 첫 파도이기 때문이라는 걸 알았다. 꽤 길었던 로딩 시간을 거쳐 떠오른 결과가 Q에게 큰 충격을 가져다주었기 때문이었다. '24살은 못 되어보고 죽겠구나.'
Q에서 '24'은 환상의 숫자였다. 20살이 된 Q가 생각하기에 '진짜 어른' 이 되는 나이이기도 했다. 대학교를 졸업하는 건 둘째치고, Q에게 늘 '4년'이라는 시간은 일 하나를 해결하는 시간이었다. 무언가 마음먹고 준비를 한다면 늘 4년이 걸렸다. 아주 오래, 집중해서 열심히 준비하고 그걸로 미래를 결정한다면, 늘 걸린 시간은 4년이었다. 24살도 그랬다. 20살로부터 4년 뒤니까 미래를 위한 무언가를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24살이 되면 멀리, 훌쩍 여행을 떠날 생각이었다. 아마 아이슬란드로, 한 달 조금 넘는 시간 동안 떠나서 자유를 만끽하고 싶었다. 역시나 Q에게 24살은 자유의 나이였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7일 만에 24살이 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게 가장 큰 아쉬움이었다. 누가 생각하면 바보 같고 소소하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Q에게는 중요했다. 어른이 되는 걸 기다린 적은 없었지만 24살을 기다린 적은 많았다.
"24살이라고 뭐 안 바뀌어~"
Q가 어린아이가 불만을 토로하듯 선배에게 전화를 걸어 하소연을 하자 선배가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Q의 학원에서 친해진 선배인 히원은 시원시원하고 유쾌한 성격이 특징이었다.
"선배! 선배랑 저는 다르죠~ 24살이 되면 무언가 바뀌었을 거라니까요."
Q의 말에 히원이 쿡쿡 웃었다. 히원은 가벼운 목소리로 대꾸했다.
"23살이랑 24살은 종이 한 장 차이지~ 하나도 안 바뀌어. 여전히 술은 쓰고, 공부하기 싫고, 학창 시절로 돌아가기 싫지."
"... 선배랑 저는 다르잖아요? 저는 혹시 모르는 거 아녜요."
"글쎄.. 난 35살 정도 되면 알 것 같다. 7일 만에 10살 먹는 방법 없어?"
"저도 궁금해요, 선배. 7일 만에 4살 먹는 방법 없어요?"
전화를 끝내고 Q가 소파에 비스듬히 기대앉았다. 한 파도가 지나가고 나니 다시 또 다른 파도들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더 세지기도, 약해지기도 했다. 삶에 미련이 없는 줄만 알았던 Q였지만 막상 삶이 없어진다고 하니 미련이 없기는 어려웠다. 아무리 취미도 특기도 없는 Q 라지만 20살이 된지 2개월 조금 넘게 지났는데 죽고 싶진 않을 터였다.
Q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할지 짐작도 할 수 없었다. 다른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았다. 다른 점이라면 다른 사람들은 소식을 듣고 멘붕에 빠지지만 Q는 소식을 듣고 조금 뒤에 멘붕이 온다는 것이었다. 하고 싶은 것도 해보고 싶은 것도 없으니 더욱 어려웠다. Q 스스로도 왜 24살이 되면 하고 싶은 건 많지만 20살인 지금 하고 싶은 건 없는지 의문스러웠다. 히원의 말대로 23살과 24살도 종이 한 장 차이인데.
24살에 할 수 있는 걸 지금 못하는 건 아니지 않을까. 아이슬란드 여행, 매일 다이어리 쓰기, 매일 운동 가기, 다이어트하기, 채식하기, 서핑 배우기. 무언가 깨닫기를 제외하면 지금 못 할 것도 없었다. 비록 매일 ~하기는 7일 하고 끝을 맺겠지만.
Q는 검색창을 뒤져 근처 서핑 용품 대여소를 찾았다. 지금 당장 하기 어려운 것들을 제외하면 그나마 해볼 만한 게 서핑 배우기였다.
어쩌면 물을 잔뜩 먹을 지도 모른다. 처음 배우니까. 아직 미숙해서 수십 번 빠질 것이다. 빠지면 또 겨우내 나와서 또다시 도전하겠지. 늘 그랬듯 이번에도 그럴 것이다.
Q는 현관문을 열었다. 조금 오랜만에 여는 것 같았다. 문 손잡이의 먼지 쌓인 매끄러운 감촉이 조금 새로웠다. 밖에서 햇빛이 쏟아져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