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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 Oct 15. 2024

나의 여정 with 달리기

DAY 4. 달리기 - 달리기가 나에게 준 영향에 대해 써보세요.

2022년 10월 3일, 저는 국제평화마라톤대회에 출전했습니다. 생애 첫 마라톤이라서 그런지 긴장이 많이 되었습니다. 미리미리 읽어둔 팁들을 떠올리며 출발 전 과일주스도 한잔 마셨고요, 스트레칭도 꼼꼼하게 했습니다. 비가 오는 날이었는데도 참가자분들이 아주 많았습니다. 출발 신호에 맞춰 저희는 같은 우비를 입고 뛰기 시작했습니다.


이 마라톤에 출전하기까지 제겐 1년이라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어떤 말 한마디가 동기가 되어 매일매일 집 앞 개천가를 걷기 시작했었어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걷고 또 걷고. 단 5분을 걷더라도 걸었습니다.

매일 같은 시간에 개천에 나가 걷다 보면 처음엔 혼자 걷는 것 같아도 점점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하거든요.


두런두런 담소를 나누시는 분들, 공터 벤치에 앉아 데이트를 즐기시는 분들, 강아지 산책시키러 나오신 분들이 보이고요, 그리고 또 하나, 저와 같은 사람들이 보여요. 무거운 몸을 이끌고 나와 힘겨워 보이는 얼굴을 하면서도 매일 같은 시간에 나와 걷고 있던 분들이 있었습니다. 오늘 같이 걷던 사람을 내일 또 같은 곳에서 마주치면 왠지 모를 동질감이 생겨나며 저도 모르게 가슴속에선 반가움이 퐁퐁 솟아납니다. 내가 힘든 만큼 저 사람도 힘들 거라는, 그럼에도 자신만의 뭔가를 뛰어넘고자 그곳에 나와 함께 걷고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선망의 대상도 생깁니다. 바로 러너(runner)분들이에요. 달리기를 통해 다져진 그들 특유의 다리와 날렵하고 다부진 몸을 정말 부러워했었죠. 40분 파워워킹도 힘들어서 뒤뚱뒤뚱 걷고 있는 제 옆을 바람과 함께 스쳐 지나가는 분들이었습니다. 저쪽에서 마주쳤을 때도 뛰고 계시더니 한참을 걸어 이쪽으로 돌아오는 중에도 여전히 뛰고 계시더라고요?! 따라서 뛰어본 적도 있었지만 30초 만에 숨이 넘어갈 것 같아서 멈췄습니다.


그렇게 저는 달리는 이들을 부러워하며 매일 개천가를 걸었습니다. 언젠간 저도 마라톤에 한번 도전해보고 싶다 생각하면서요. 그리고 1년 뒤에, 드디어 마라톤에 출전하게 된 것입니다.


출발 신호를 듣고 들뜬 마음으로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몸이 따라주지 못할걸 알면서도 자꾸만 빠르게 뛰어나가고 싶더라고요. 하지만 1년 간의 기록을 통해 그렇게 해서는 완주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제 나름의 페이스를 유지하려 노력하면서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속도는 당연히 느렸어요. 저는 본래도 잘 뛰지 못하는 사람이고, 마라톤에도 처음 나가보는 것이었으니까요. 3킬로, 5킬로가 지나는 지점에서는 몸이 천근만근이었습니다. 추월해 나가는 사람들이 자꾸 보이니 더 빨리 뛰고 싶다는 생각과 동시에 어차피 완주만 하면 되는데 좀 걸을까 하는 생각이 왔다 갔다 하더라고요.


7킬로 구간을 지날 때쯤엔 저는 거의 홍당무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어요. 조금만 뛰어도 얼굴이 빨개지는데요, 피가 몰려 퉁퉁 부은 얼굴을 하고서도 뛰는 것을 멈추지는 않았습니다. 아주 느렸지만 그래도 뛰었습니다.


'걸을까? 아니야. 여기까지 왔잖아.'

'걸을까? 아니야. 조금만 더 가면 돼.'


한걸음을 뛸 때마다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단 마음에 저 자신과의 지난한 싸움이 이어졌는데요, 그때 저를 버티게 해 주었던 단어는 '후회'였습니다. 후회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요.


' 그냥 그때 좀 더 참고 뛸걸.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니었는데. '


이런 말을 하고 싶지 않았어요. 결승점에 거의 다 다다랐을 때는 정말 힘들었지만 길목 길목 서계시던 스텝분들의 응원에 힘을 얻었고요, 마지막 오르막길 코스에서는 남은 힘을 모두 쥐어짜 저도 다른 참가자들을 추월하여 힘차게 올라갔습니다. 그 기분이 또 나쁘지는 않더라고요.


마라톤이 끝나고 한참이 지나도록 제 방 책장 가장 높은 곳에는 마라톤 완주 메달이 놓여있었습니다. 하기 싫은 일을 마딱뜨렸을 때, 스스로 나태하다 느껴질 때, 분명히 이 순간을 후회할걸 알면서도 그렇게 행동하고 있는 저 자신이 느껴질 때마다 결승선을 통과하던 순간을 떠올렸습니다.


힘들었기 때문에, 노력했던 순간이 있었기 때문에, 나 자신과의 지난한 싸움이 있었기 때문에 얻을 수 있었던 감격의 순간을요. 드디어 끝났다는 가벼움과 스스로에 대한 대견함, 완주의 성취감은 모두 그 순간을 지나오며 얻을 수 있었던 선물 같은 것이었었죠.


저는 오늘 마라톤을 가지고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되었지만 세상에는 이렇게 자신만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며 나 나름의 길을 걷고 있는 분들이 많이 계신 것 같아요. 나의 정체성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고통을 들여다보며 그것을 승화시켜 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사람들이요.


이번에 한강 작가님 노벨문학상 수상 소감을 보던 중에 예전 소년이 온다 인터뷰 영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 도청에 남기로 결심해서 죽게 된 동호가 우리에게 오는 소설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80년 5월에서부터 5년 뒤, 10년 뒤, 20년 뒤, 30년 뒤, 천천히 이렇게 넋으로 걸어오는 걸음걸이를 상상했고, 그래서 제목도 소년이 온다가 됐어요. "


5.18 사건의 사진첩을 보고 인간의 폭력성에 크게 충격받았던 초등학교 5학년 한 소녀가 40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인간 폭력성과 정체성에 대해 끊임없이 고뇌하고 탐구했던 시간은 아시아 최초이자 한국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이라는 세계적인 상징성을 가지는 사건으로 그 가치를 증명해 낸 것 같아요. 저는 이것이 한강 작가님 그녀만의 마라톤이 아니었나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글을 읽고 써가는 저희들도 저희만의 마라톤을 뛰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해요.


저는 힘들 때 극복하는 방법은 잘 몰라요. 주로 그냥 받아들이는 편이죠. 그래도 그 시간 속에서 저를 지탱해 주던 한 가지는 먼 미래에 오늘날의 저 스스로를 후회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제 스스로에게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아서요.


그래서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께서도 가끔은 너무 지쳐 다 그만두고 싶어 지신다면 먼 미래의 내가 오늘을 어떻게 기억하게 될지를 생각해 보셨으면 좋겠어요. 그렇게라도 지난한 싸움에 힘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이 결국 언젠간 큰 가벼움으로 돌아오게 될 거라고 저는 믿거든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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