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는 차갑게 언 심장을 녹인다
사소한 말 한마디에 원수가 되고, 배려는 차갑게 언 심장을 녹인다.
우리는 종종 의도하지 않게 사소한 말 한마디로 누군가의 마음에 상처를 주기도 하고, 반대로 타인의 작은 배려에 큰 위로를 받기도 한다. 이 글은 내 경험을 통해, 상처와 배려가 어떻게 서로 얽히고 영향을 주고받는지를 보여주려고 한다.
명절 아침, 시어머니와 나는 창고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그 위에 불편한 자세로 앉아 전을 부치고 있었다. 남편이 다가와 “도와줄까?”라고 물었다. 시어머니는 잠시 아들을 바라보더니 한숨을 내쉬며 단호하게 말했다.
“남자는 부엌일을 하면 안 돼. 부엌일은 여자의 일이야.”
얼마 전에 유산한 나는 차가운 창고의 공기가 피부에 닿을 때마다 몸이 저리게 아리고, 마음은 더욱 움츠러들었다. 추위와 피로가 나의 몸을 짓누르는 가운데 그저 묵묵히 일을 이어갔다. 집 안에서는 막내동서가 얼마 전 낳은 갓난아이가 재롱을 부리며 따뜻한 웃음꽃을 피워내고 있었다. 나의 손에 닿지 않는 그 꽃이 너무나도 부러웠다.
어린 시절, 명절이면 친정어머니는 기름 냄새 가득한 부엌에서 전을 부쳤다. 어머니의 얼굴에는 늘 땀방울이 맺혔고, 손목은 기름에 데기 일쑤였다.
“너, 장남에게 시집가지 마라.”
어머니는 전을 뒤집으며 매번 같은 말을 반복하셨다.
“네가 장남에게 시집가면, 너도 나처럼 살 거야.”
잠시 말을 멈춘 어머니는 나의 눈을 마주 보며, 미소 지으려 애쓰셨다.
“너는 나처럼 고생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절대로 장남에게 시집가지 마, 아니, 아예 시집가지 말고 네 삶을 살아라.”
27년 동안, 어머니는 내게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그런데 왜 나는 장남과 결혼을 했고, 지금 이 자리에서 이러고 있는 걸까?’
어머니의 말을 듣지 않은 과거의 내가 원망스러웠다.
창고에서 일을 끝낸 후, 몸도 마음도 지친 채로 집 안으로 들어갔다. 시댁 식구들이 모두 나를 바라보았다. 그때 막내 서방님이 시댁 식구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형수에게 똥 기저귀 갈아보라고 하자. 자기 아이를 안 낳아 본 여자는 똥 기저귀 못 갈걸.”
막내 서방님은 전혀 악의 없는 얼굴로 웃으며 물었다.
“형수 똥 기저귀 갈 수 있어요? 없어요? ”
기저귀 가는 시범을 보이며 신나서 말하는 막내 서방님은 방금 자신이 형수의 가슴에 커다란 비수를 꽂은 줄도 모르고 자기 아기를 자랑하기에 바빴다.
“형수같이 애 안 낳아 본 여자는 이런 것 못 하죠? 자기 자식을 낳아야 이런 것도 하는 거야.”
가슴속에서 올라오는 울컥하는 감정을 삼키며,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내 눈빛이 어두워졌지만,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나는 속으로 ‘나쁜 자식! 사람을 뭐로 보고. 내가 말이야, 내 조카 똥 싸는 모습에 반해 조카를 내 자식처럼 사랑하는 사람이야!’라고 말했다. 그러나 곧바로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무해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건넸다.
“서방님, 대단해요, 정말 멋진 아빠네요.”
그 이후로 시댁에만 가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차갑고 씁쓸한 감정이 일었다. 예전처럼 자연스럽게 웃을 수 없었다. 묻는 말에만 짧게 대답하며 밥만 차려 놓고는 시댁 식구들이 없는 방으로 자리를 피했다.
시댁 동네를 산책하다 어르신 한 분을 만나서 인사를 건넸다. 어르신은 나에게 대뜸 “밥값 해야지!”라고 말했다. “저도 일해요.”라고 웃으며 어르신에게 말했을 때, 그 어르신이 충격적인 말을 했다.
“그거 말고. 아들을 낳아야지.”
나는 시댁이 있는 마을까지도 싫어졌다.
‘내가 이 집에 아이를 낳아주러 온 씨받이인가?’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시댁에서의 내 위치에 대한 의문이 점점 커져만 갔다. 그런 의문은 불안과 서운함으로 변하며 차곡차곡 쌓여갔다. 어느 순간, 남편과 시댁에 내려오는 동안 싸우고, 시댁에서 돌아오는 길에도 싸우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마당에서 일을 마치고 집 안으로 들어갔을 때, 부엌에서 어머님과 막내동서가 속삭이고 있었다. 어머님이 동서에게 말했다.
“얘야, 입덧 심할 텐데, 요리하느라 힘들지 않니?”
“아뇨, 이 정도는 참을만해요.”
동서의 말에 어머님은 말했다.
“네가 둘째 가진 걸 알면, 큰 애가 얼마나 속상하겠니? 내가 큰 애한테 빨리 애 가지라고 성화하고 있으니, 그 애들도 곧 애를 가질 거야. 그때까지만, 네가 둘째 가진 걸 비밀로 하자.”
마음속에서 끓어오르는 복잡한 감정에 압도당한 나는 잠시 멈칫했다. 그동안 나를 미워한다고 생각했던 그들의 눈빛이나 행동에 상처받았다. 하지만 그들이 나를 배려하고 있다는 것을 안 순간, 처음엔 믿기지 않았고,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잠시 후,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나를 발견했다. 나는 살며시 집안을 나와 마당 구석에서 하염없이 울기 시작했다.
한참을 울고 나서 본, 어머님과 동서의 얼굴은 예전과 달리 따뜻해 보였다. 어쩐지 어색했지만 내 얼굴에 미세하게 변화가 생겼다. 긴장이 풀린 듯한 미소가 자연스럽게 입가에 떠올랐다. 순간적으로 가슴이 따뜻해지면서, 그동안 차갑게 얼어붙었던 심장이 녹는 것을 느꼈다.
“동서, 임신 축하해. 아이를 갖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데,
드러내고 자랑하고 축하받아야지”
나는 그들에게 그동안 내가 반복된 유산으로 고통받고 있었다고 말했다. 유산을 막으려면 절대 안정이 필요하다는 말도 했다.
“어머님, 용한 무속인한테 들었는데요, 다음에 임신하면 아무에게도 알리지도 말고 아무 곳도 가지 말고 집에서만 있으래요. 안 그럼 또 유산된다고. 만약 다음에 제가 시댁에 안 내려오겠다고 하면 저 임신한 줄 아세요.”
지금 나에겐 아들이 있다!!!
이런 경험은 내가 사소한 말 한마디로도 얼마나 쉽게 타인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존재인지, 그리고 나의 사소한 배려가 상처 입은 사람을 치유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추가로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다. 요즘은 의학의 발달로 임신 초기에는 충분한 휴식이 필요하다는 것이 알려졌다. 그러나 당시의 나는 시댁에서 해야 하는 일이 고되다고 말하지 못했다. 남들 다 쉽게 낳는다는 아들, 나는 시댁에 오가며 힘든 일 하느라 쉽게 유산되었는데, 왜 시어머니께 “저 힘들어요”라고 말하지 못했을까? 무속인의 말을 빌려서야, 겨우 시어머니께 내가 지금 힘들다고 알아달라고 말한 과거의 내가 안타깝다. 그리고 그 시절을 무사히 버텨 오늘을 사는 나에게 수고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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