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차돌쌤 Jul 28. 2024

편두통

며칠 째 편두통으로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었다.

두통으로 인해 병가를 쓸가 하다 접고

근무지로 향했다.

타이레놀을 먹고, 십분간 두통이 사라지지 않으면 병가를 쓰고

병원에 가야지 하면서 분주한 아침을 보냈다.

십분의 시간이 흘렀다. 다행히 두통이 사라졌다.

분주한 아침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얼마 뒤 두통이 시작되었다.

3일째 두통이 나와 이별을 고하지 않았다.     


이번에 나를 고통스럽게하는 두통은 평소와 달랐다.

귀 뒤쪽을 주기적으로 찌르는 두통이었다.

두통이라고 이야기 하기 보다는 근육통에 가깝다고 표현을 하는게 맞을 정도로 찌르는 느낌이 강했다.     


두통?

내 나이 만으로도 50이 되니

함께 삶을 산 것 중에 편두통이 있었다.

대학시절 편두통을 항상 지니고 있었다.

시험 기간이 되면, 더 심함 편두통이 있었다.

우리 시대를 사는 모든 이들이 그랬듯이, 

시험 결과에 따라 학업을 더 할 수 있던지, 아님 포기를 했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장학금을 받지 못하면, 아르바이트나 학업포기가 연결된 시기였다.

그래서 항상 나의 필통에는 ‘게보린’이 있었다.     


게보린을 먹으면, 얼굴의 반쪽이 얼얼하다.

약효가 전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30분 뒷면 두통이 사라진다.     


내 나이 만으로도 50이 되니

그런 삶의 절박한 시험은 없다. 하지만, 간혹 두통이 찾아 온다.

아마도 예전의 그 습관성 두통이지 싶다.

두통이 찾아오면 다시 게보린을 먹는다. 그럼 호전되어 다시 살수 있다.하지만, 며칠부터 온 편두통은 게보린을 거부하였다.

아내 몰래, 게보린을 세 개나 먹었다.

약의 독기를 희석시키기 위해, 억지로 다른 먹거리와 함께 먹었다.

3일 동안 몸 무게가 갑자기 2kg 불어지만, 두통은 사라지지 않았다.

며칠째 누워있는 나를 보고,

딸이 어이없다는 듯 이야기 한다.

“아빠, 게보린은 두통약이 아니고 생리통약 아니야?”

“그런가?”

아픈자는 귀가 얇다. 과거의 경험은 단지 추억이 된다.

그래서 타이레놀을 먹었다. 

게보린보다는 더 효과 있는 듯 하였으나, 역시나 아직 도통이 남아 있었다.     


4일째 되던 아침

아내는 레이져를 쏘면서, 병원에 가라는 신호를 보냈다.

병가를 낼까 하다가 

또 참고, 오후에 퇴근 후 신경외과를 찾았다. 병원은 한사했다. 

간호사 선생님 두 분은 인터넷을 하고 있었고, 

의사 선생님은 진료실의 문의 열고 책을 보고 있었다.

이렇게 환자가 없나? 바로 진료를 받을 수 있다는 희망으로 접수를 했다.     


그러나, 

얼마 전부터, 신분증을 제시해야 진료를 받을 수 있다고 간호사 선생님이 이상한? 말씀 하신다.

상황이 더 어렵게 되자, 머리야 더 아파 왔다.

신분증을 가지러 다시 집으로?

망설이자, 간호사 선생님께서는 앱을 설치하면 된다고 하면서, 앱을 보여 주셨다.

머리를 쥐어잡고 설치하였다. 왜 이렇게 느린지, 왜 이렇게 에러가 생기는지

20분이 걸려, 설치후 진료를 받았다.     


진료시간은 단 2분,

소염제와 두통약을 처방해 주셨다. 

의사선생님께서는 “일시적인 통증으로 5일 지나면 사라질 것이다.”라고 이야기를 아주 짧게  말씀해 주셨다.

“5일 이 약 먹어 보시고, 더 이상 고통이 있으면 큰 병원 가시면 됩니다.”     


섭섭함이 밀려왔다.

50이 들어서일까? 

참다가, 참다가 병원을 찾았는데

신분확인을 위해 20분간 앱을 설치했는데

진료는 2분, 그리고 참고 기다리라는 짧은 처방!   

  

내 나이 만으로도 50이 되니

젊었을 때의 그 두통보다 

현재의 두통은 몸과 마음의 고통을 동반한다.          

이전 05화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