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교회는 양과 질에서 폭발적인 부흥을 이루었다. 하지만, 그에 따른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양적 성장에만 급급한 나머지 우리가 자초한 후유증 가운데는 허수(虛數), 허세(虛勢), 허상(虛想)의 삼허현상(三虛現像)이 있다. 하나님은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신다. 진정한 부흥은 한 영혼의 가치를 바로 인식하는 데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따라서 한국 교회의 허수(虛數)를 실수(實數)로 돌려놓는 운동이 필요하다. 이 운동의 기본은 신앙생활과 사회생활을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라는 인식에서 시작된다. ‘신앙은 곧 삶’, ‘삶은 곧 신앙’이다. 양적인 부흥, 즉 교회의 건물이 커지고 새로워지는 것은 문제의 해결이 아니다. 교회의 주체인 평신도를 예수의 제자로 가르치고 훈련하는 것 외는 다른 길이 없다. 즉, 성경의 원리를 돌아가는 것이 우리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종교 개혁은 하나님을 위한 참 교회의 모습을 회복하는 데 의의가 있으며, 평신도 운동은 세상을 위한 참 교회의 모습을 회복하는 데 그 의의가 있다. 급속도로 팽창해 가는 현대 사회 구조 안에서 평신도가 지닌 증인으로서의 큰 잠재력을 구체적으로 활용함으로써 교회의 회복이 시작된다. 또한, 교역자는 교회 위에 군림하기보다는 섬기기 위해 부름을 받은 평신도 속에 포함된 사람이다. 따라서 섬김과 모범의 권위를 행사하는 것이 교역자의 본분이다. ‘우리가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고후4:5)’ 이 말씀의 핵심은 그리스도의 종은 곧 평신도의 종이라는 것이다. 섬기는 자로서 목사의 권위와 교회의 주최로서의 평신도의 영광이 함께 살아나야 한다.
평신도를 깨우기 위해서는 우선 교회의 본질과 일치한 목회 철학을 정립해야 한다. 목회 철학이 정립되면 거기서 목회 전략이 나온다. 그리고 자연히 목회 방법이 분명해진다. 성령이 오신 가장 큰 목적은 제자들을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준비시키기 위해서이다. 또한, 교회는 세상 앞에서 증거하는 공동체로서의 성격을 가지고 고백하는 교회, 전파하는 교회, 찬양하는 교회의 이미지를 나타내어야 한다. 여기에서 교회는 사도적이며 사도적이기 위해 평신도를 포함한 교회가 사도의 계승자라는 사실을 믿어야 하며, 계승자가 되려면 사도가 전해 준 증거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고백해야 한다.
제자훈련은 성경공부도 아니며, 전도와 가르침에 유능한 평신도 기능 양성도 아니며, 중산층 이상의 평신도에게만 가능하지도 않고, 훈련의 열쇠는 평신도가 어떤 사람이냐보다 지도자가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달라진다. 제자훈련에 입하면, 우리는 개인적인 환경, 개인적인 신앙의 관점을 더 우선시하는 듯하다. 하지만, 이 훈련의 승패는 지도자의 리더십에 체계적인 말씀 중심의 훈련이 승패를 좌우한다.
나는 평신도이다. 어느덧 방황하는 시기를 지난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보이는 신앙인이다. 제자 훈련과 사역훈련을 통하여 나는 무엇을 얻으려 했을까? 말씀 공부?, 사역 방향?, 개인 성장?, 의무감? 등 아직은 매번 훈련 속에 하나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제시하시는지는 알 수 없다. 일상 과제 속에서 허덕이며, 허덕임 속에서 훈련에 임하고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제자 훈련과 사역훈련은 누가 억지로 등을 떠밀어서 하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께서 부족하지만, 나를 선택하셔서 임하고 있다. 우리는 대부분 목회자에게 어려운 것을 떠넘기고 있다. 하지만, 하나님은 목회자나 평신도도 동일하게 책임과 의무를 맡기셨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이 훈련 기간, 그리스도인으로서 성장할 수 있는 믿음을 체험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하겠다.
2017.05.15.
평신도의 길을 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