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by 차돌쌤

제1장 하나님은 과연 계시는가?

(내가 믿습니다. 믿음 없는 나를 도와주십시오.)-로마서 1:18~21

1. 믿고 싶어도 믿지 못하는 현대인

· 현대인에게 기독교가 필요한가?

·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느냐?

· 삶의 의미, 죽음 후의 문제 같은 것이 점점 더 중요하게 부각되는 시대

· 사람의 의식은 주위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그들과 의식을 교환하는 가운데 자기 것을 형성한다.

· 영국의 철학자 러셀처럼 불가지론자-신이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지 잘 모르는 상태로 그저 어정쩡하게 살아가는 것

2.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이론적 증명

1) 존재론적 신 존재 증명(Ontological Proof for the Existence of God)

· 무엇이 가장 완전하려면 그것은 ‘있다’라는 것을 그 속성으로 가지고 있어야 한다.

· ‘완전하다’는 하나의 형용사로 ‘아름답다’, ‘거룩하다’와 같이 존재하는 것의 속성을 표현하는 것인데, 존재 자체가 완전이란 관념에 포함될 수 없다는 것이다.

2) 우주론적 증명(Cosmological Proof)

· 원인 없는 원인 혹은 최초의 원인이 바로 하나님이라고 보았다.

· 최초의 원인과 하나님을 어떻게 동일시할 수 있겠는가?

3) 목적론적 증명(Teleological Proof)-지적 설계 이론

· 생명체나 우주의 복잡함과 질서가 진화의 결과이거나 우연히 이루어졌다기보다는 지능을 가진 창조주가 설계했다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 칸트는 궁극적인 인과응보가 이루어지려면 내세가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3. 이론적으로는 증명할 수 없는 신의 존재

· 원인을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되자, 오히려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권위가 추락하게 되었다.

· 사람에 의하여 증명되고 논해지는 신이란 인간이 가진 한계성을 초월할 수 없고, 따라서 사람이 만든 신이 될 것이다.

· 사람에 의하여 투영되지 않은 하나님은 거의 확실하게 인간의 이성과 경험의 요구에 순응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현대인은 쉽게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4. 종교의 씨앗

· 하나님은 이론적으로 증명되는 것을 거절하시는 하나님이다. 그는 우리의 두려움과 경배의 대상이 될지언정 이론적 증명과 이해의 대상은 될 수 없다.

· 하나님의 존재는 전제되어 있는 것이지 증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 로마서 1장 17~27절: 하나님의 존재 자체가 아니라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인식을 문제 삼는다.

· 바울: 엄연히 계시는 하나님을 왜 사람들이 법아들이지 못하느냐?

· 어떤 식으로 설명되든지 간에 절대자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상당히 많다.

· 왜 사람들은 참 하나님을 두고 인조 하나님을 만들어야 하는가? 성경은 인간의 허영이 그 원인이라고 가르친다. 참 하나님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에게 절대적으로 순종해야 한다는 뜻인데, 그것은 니체가 잘 지적한 것처럼 인간이 신의 노예가 되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인간의 권위와 존엄성에 근본적으로 어긋나기 때문에 인간의 위신으로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

· 우상들은 한 가지 공통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들이 사람들에게 참인 것 같고 논리적인 것 같고 그럴듯하게 보인다는 점이다. 그럴듯하고 논리적인 것처럼 보이지 않는 것을 인간이 만들거나 섬기지는 않기 때문이다.

5. 여호와 하나님은 인조 하나님이 아닌가?

· 철학자들은 분명히 기독교의 하나님도 인조 하나님이라고 비판했다.

· 기독교의 하나님만이 참 하나님이란 사실을 이론적으로 증명하는 것이 얼마나 더 어렵겠는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란 증거는 얼마든지 있다. 즉, 어떤 객관적인 증거에 의해서 성경의 하나님은 인조 하나님이 아님을 증명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이미 믿는 사람들에게는 그 믿음을 보강해줄 수 있는 증거가 있다.

· 신앙이란 지식에서 유래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앙에서 그 신앙이 입각한 지식이 형성된다.

6. 놀라게 하는 하나님

· 하나님은 인조 하나님이 아니라는 점?

사람이 기대하는 대로 나타나는 하나님이 아니라 전혀 기대하지 않은 곳에서 기대하지 못했던 모습으로 나타나는 하나님이란 사실이 성경에서 볼 수 있다.

① 하나님이 어떤 특수한 지역에 국한되어 존재한다고 믿었던 야곱-벧엘에도 계심

② 육지의 신, 자기 나라만의 하나님이라고 믿었던 선지자 요나-바다, 니느웨

③ 아브라함에게는 생물학적인 한계를 초월하는 하나님으로

④ 정당한 원칙조차도 초월하시는 하나님

⑤ 부활하시는 예수님-여자들을 첫 증인으로 기록

7. 믿음으로만 알 수 있다.

· 하나님은 정말 계시는가 하는 문제는 결국 우리가 그의 존재를 인정할 수 있냐는 문젤 변형된다.

· 광대한 우주와 그 깊은 신비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미미한 존재인가를 깨닫는 것은 현대인의 교만을 꺾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 하나님이여, 만약 당신이 계시거든 나로 하여금 당신을 믿게 하소서.

제2장 현대인에게도 성경이 필요한가?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불이요, 내 길의 빛입니다.)-디모데후서 3:15~17

1. 서로 비슷해지는 현대인

2. 자연과학과 과학기술이 현대인을 결정짓는다.

· 서양의 그릇에 동양의 정신을 담자는 운동이었다. 그러나 그런 시도는 부질없는 것으로 끝나고 말았다.

· 현대인은 과학시술을 믿고 과학을 맹신한다. 그것만이 확실한 것이요, 믿을 만한 근거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3. 콩트의 3단계 이론

· 신학적 단계: 모듬 자연현상을 신들의 작용이라고 설명하고 이해

→ 물신론(物神論)-다신론-유일 신론

· 형이상학적 단계

· 실증주의적 단계

4. 성경을 받아들이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현대인

· 현대인은 성경을 믿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믿는다 함은 안다는 것과는 다른 것이고, 과학적 지식과는 다른 것을 받아들이는 것을 뜻한다.

· 현대인들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야기들이 가득 차 있으니 어떻게 그런 것을 믿을 수 있겠는가?

5. 현대인은 과학을 과신하고 있다.

6. 성경의 목적은 과학의 목적과 다르다.

· 성경은 분명히 하나님이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고, 예수님은 동정녀의 몸에서 나셨으며 부활하셨다고 가르친다. 이것은 핵심적인 기독교 교리이고, 결코 양보할 수 없는 것이나 분명히 과학적 논리나 지식과 충돌을 일으킨다.

· 성경에서는 하나님이 말씀으로 우주를 창조하셨다고 가르치는데, 그것에 대해서 과학이 왈가왈부할 수는 없다. 과학은 피조 세계에 대해서 연구하는 학문이지 누가 그것을 왜 만들었는가 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과학의 영역을 초월하는 것이다.

7. 성경이 반드시 비과학적인 것은 아니다.

· 소위 과학적 사실이라는 것이 실제로 충분히 검증된 것인지, 또 성경의 사실과 모순된다는 것이 진정한 모숨인지 다시 한 번 확인 할 필요가 있다.

· 성경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과연 정확한가를 조사해 보아야 할 것이다.

8.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증거들

· 내용의 일관성, 예언의 성취, 인간적 사고방식을 초월하는 성경, 전통을 통하여 획득한 권위

9. 성경은 성경 자체로 증명된다.

· 많은 기독교인들은 성경이 하나님 말씀이란 사실을 성경 그 자체에서 찾는다.

· 성경의 권위를 성경 그 자체에서 찾는다는 것은 순환논리의 문제를 가지고 있다.

→ 다른 어떤 권위도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증명할 자격은 가지고 있지 않다.

· 믿음 없이는 성경을 하나님 말씀으로 받아들이기가 어렵지만 성경 없이 믿음이 생기기도 어렵다.

10. 죄인에게는 게시가 필요하다.

·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겠는가?

· 인간이 죄인이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계시가 필요한 것이다.

11. 현대인에게는 성경이 필요하다.

· 성경을 믿기 어려워한다는 것은 그들의 세계관과 가치관이 지나치게 과학적 지식에 영향을 받고 있으며, 그것이 지배받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과학적 세계관은 곧 폐쇄된 세계관이다.

제3장 현대인에게도 예수가 필요한가?

(보아라,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할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요한복음 1:1~5

1. 성숙해졌다고 생각하는 현대인

· 하나님 같은 가정이 없어도 모든 것이 설명되고 해결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이 현대인의 일반적인 확신이다.

· 연약한 인간이 의지할 수밖에 없던 그런 전능하신 하나님은 과학적 지식을 통하여 스스로 거의 전능하게 된 현대인에게는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한 것이다.

2. 현대는 인본주의 시대

· 본래부터 인간은 스스로가 주인이었으나 과거에는 무지로 인해 신이 주인이었다고 착각했음을 알아내고 하나님과 사람의 주종관계가 바뀌게 된다.

· 하나님 중심이라고 하는 기독교에서도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시는’ 하나님이며 ‘구원이란 곧 인간화’라고 이해되어 인본주의가 핵심으로 인정되고 있다.

3. 인본주의는 인간성에 대한 낙관주의

· 현대의 인본주의는 이단 기독교적인 세속화 과정을 거친 것이기 때문에 자연을 정복하고 신을 무시하는 배적인 인본주의다.

· 자신들의 능력과 본성에 대하여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는 현대인들에게 인간의 구원자로서의 예수가 과연 필요한가?

4. 드리워지는 어두움의 그림자

· 과거에는 발전(development)이 진보(progress)를 뜻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결코 그렇지 않다. 과학과 과학기술의 발달이 사람의 가치를 높여주지도 못하고 행복 증진은 더욱 보장하지 못한다.

5. 과학문명의 무서운 찌꺼기들

· 신무기(핵무기, 핵발전소), 환경오염

· 환경오염의 책임은 인본주의가 아니라 기독교가 져야 한다는 주장

· 누구를 위한 문명이며, 누가 주인인 인본주의인가?

6. 인간의 죄는 쉽게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7. 악은 죄의 결과다.

8. 영원한 형벌

· 하나님의 존재나 영혼불멸을 전과학적 시대의 미개인들이 만들어 낸 신화에 불과한 것이라고 많은 현대인들은 일소에 붙인다.

9. 죄는 용서받을 수 있다.

·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신로와 의존을 뜻한다. 즉,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신뢰와 의존을 뜻한다.

10. 죄의 용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가능하다.

·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받을 길을 제시하셨고, 그 길이 바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로, 곧 구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 과학적 사고에 지배당한 현대인들은 이런 신화 같은 이야기들을 받아들이기가 매우 어렵겠지만, 그것을 받아들이기 어렵게 만든 현대인이 그 교만이 바로 죄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이다.

11.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준 그리스도

· 인간의 지적 한계와 논리를 초월-삼위일체와 예수의 양성(신성과 인성)

· 현대인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자신을 희생해 인류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 지혜와 사랑 없이는 현대인에게 소망이 없다.

12. 우리에게 부활의 새 소망을

13. 현대인에게는 예수가 필요하다.

제4장 현대인에게도 교회가 필요한가?

(여러분은 택함을 받은 민족이요, 왕의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국민이요,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빌립보서 2:1~4

중요해진 ‘사회’

· 1950년대에는 ‘실존’이란 단어가 지식인들 사이에서 유행하더니 요즘에는 ‘사회’란 말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 사회가 중요해진 것은 서양에서 국가와는 다른 인간 공동체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뒤부터다.

2. 인간이 사회에 의해 결정된다는 생각

3. 사회 속에서 무력해진 현대인

· 개인의 사상이나 가치관ㅇ의 상당 부분이 공동체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을 지적한 것은 마르크스와 최근 철학자들의 중요한 공헌이라 할 수 있다.

· 극단적으로 흘러 개인의 모든 것이 사회에 의하여 좌우된다고 주장하는 사회결정론에 이르게 되면 문제는 달라진다.

· 소외(疏外, Entfremdung): 인간이 만든 산물이 인간의 자유를 박탈하고, 인간의 행복을 위해 형성해 놓은 문화가 인간을 불행하게 만드는 상태-유물론적 인간관

4. 점점 평준화되어가는 현대인

· 지나치게 강력해진 사회 속에서 그 영향력에 대항할 힘도 이론적인 근거도 차지 못하는 현대인은 과거 어느 때보다 사회의 조작에 수동적이다. 그래서 대형화되고 규격화된 사회 속에서 점점 평준화되어 가고 있다.

· 평준화: 개인의 특성 상실, 공장에서 나온 옷을 입고, 공장제 음식, 대량 인쇄물, 똑같은 TV

· 동일한 음식을 먹고, 동일한 의복을 입으며, 동일한 정보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이름만 다르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겠는가?

5. 이익공동체로 변하는 사회

· 더 많이, 더 효율적으로 생산하고, 경쟁에 이기 위하여 강력한 조직을 만들지만, 그것으로 말미암아 진정한 정신공동체는 자꾸 갈라지고 정신적 외톨이가 되고 마는 것이다.

· 가정이 파괴되고, 사회적 결속력을 약화시키게 되는 것은 현대인이 직면한 역설적 상황이다.

6. 정신공동체의 마지막 보류

· 가정과 교회는 오늘날 남아 있는 가장 중요한 정신공동체다.

· 우리나라 교회가 1970~80년대에 크게 성장한 것도 바로 교회가 정신공동체의 기능을 잘 담당했기 때문이다.

7. 세속 한가운데에 있는 거룩한 모임

· 교회란 말의 그리스어 에클레시아는 ‘부름을 받은 자들’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이것은 ‘거룩’이란 것과 관계가 있다.

· 하나님께서 이 세상으로부터 교회를 따로 세웠다는 것이고, 그것은 곧 교회가 거룩한 모임이란 것을 뜻한다.

8. 교회는 섬기기 위한 공동체다.

· 현대의 교회는 과거 이스라엘 백성과 비슷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은 많은 민족들 중에서 선택된 백성들이었다.

· 오늘날 교회의 역할은 바로 이스라엘 백성이 선택을 받았을 때의 의도된 목적을 수행하는 것이다(하나님께 예배, 기쁜 소식 전하고, 하나님께 영광, 세상에 봉사).

· 만약 교회가 본래의 봉사단체로서의 성격을 상실하고 교인들의 물질적, 사회적, 심리적 이익을 추구한다면 그것은 결국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선민의 자이레서 쫓겨난 것과 같은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9. 사랑과 신앙의 훈련장

· 교회라는 공동체 안에서 실제로 사랑을 경험하며, 성경의 가르침을 배우며, 다른 사람들의 체험으로부터 교훈을 얻으며 서로 위로하고 용기를 얻어야 하는 것이다.

10. 교회의 궁극적 목적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

제5장 세 가지 질문에 대하여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요한복음 18:37~38

세 가지 기본적인 질문

· 나는 누구인가? 왜 사는가? 어떻게 살 것인가?

2. 질문의 중요함

· 물리학자 뉴턴: 가장 창조적인 순간은 만유인력의 공식을 발견했을 때가 아니라 ‘사과는 왜 떨어질까?’하는 질문을 던졌을 때였다.

3. 기본적인 질문을 하지 않는 이유?

1) 이미 잘 알고 있다.

· 사람들은 이 두 문제(정치, 종료)에 관한 한 절대적으로 객관적이고 정확한 대답은 없다고 하면서도 자기의 견해와 자기의 입장은 절대적으로 옳다고 믿기 때문이다.

2) 아무래도 알 수 없다.

3) 삶의 무의미가 폭로될까 두렵다.

4) 다른 사람들을 따라하면 된다.

5) 모든 것은 숙명적으로 결정되어 있다.

4. 그래도 근본적인 질문은 해야 한다.

· 삶의 가장 중대한 문제에 대해서 물어보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에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제6장 나는 누구인가?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를 잃거나 빼앗기면, 무슨 이득이 있겠느냐?)

-고린도전서 15:10

가장 중요한 질문

2. 자신을 들여다보는 것으로는 ‘나’를 알 수 없다.

3. ‘나’는 관계에서 태어난다.

4. 나의 나된 것은 오직 은혜로

· 내가 ‘나’되는 것은 은혜라 할 수 있다. 즉, 내가 가진 어떤 자격, 능력, 조건과 관계없이 그런 것들을 초월한 다른 이의 사랑 때문에 ‘나’가 되기 때문이다.

5. 하나님은 우리의 영원한 ‘너’

· 잃어버린 양과 목자의 관계는 ‘나’와 ‘그것’의 관계가 아니라 ‘나’와 ‘너’의 관계다. 거기서 ‘너’는 대체 불가능한 존재다. 잃어버린 양 한 마리는 아흔아홉 마리의 양으로 대체할 수 없는 것이다.

· ‘나’와 ‘너’의 관계를 가짐으로 나의 가장 영광스런 모습이 드러난다. 그리고 그 모습은 내가 태어날 때부터 내가 마땅히 가져야 할 것이며, 그 관계에서 나의 참모습이 드러난다.

6.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운 ‘나’

· ‘나’는 누구인가? 그것은 어떤 문장으로 표현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다만 다른 인격체와 ‘나’와 ‘너’의 관계를 맺을 수 있을 때 태어나는 것이며, 하나님의 사랑 속에서 천하보다 더 귀한 존재임을 인정받는 것이다. 그 사랑의 빛 아래서 부끄러운 나는 바로 그 때문에 감격하고, 그런 ‘나’를 가능케 한 사랑을 실천함으로 다른 ‘나’들을 탄생시키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나의 본래의 모습이다.

제7장 왜 사는가?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에서 으뜸은 사랑입니다.)-요한일서 4:7~11

모든 삶이 동일한 가치를 가지는 것은 아니다.

2. 인격체는 삶의 가치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한다.

· 책임을 질 수 있으려면 어떤 행위나 말을 한 과거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이 동일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 어떤 행위나 말에 대하여 책임을 질 수 있으려면 그 행위나 말이 어디까지나 자기 것이라는 인식이 있어야 한다.

3. 이 질문은 빨리 제기되어야 한다.

4. 삶의 목적들

1) 허무주의: 삶이란 그 자체로 아무 의미도 없다.

2) 쾌락주의: 삶의 궁극적인 모적은 최대한 행복하고 즐겁게 사는 것이다.

3) 자기완성: 본래 주어진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그 의미라고 보는 것이다.

5. 사랑이 삶의 참다운 목적이다.

· 기독교에서 가르치는 삶의 의미는 사랑이다.

·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나 영원한 구원을 얻는 것이 궁극적 목적이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모두 사랑으로만 가능하다고 가르친다. 사랑은 단순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여러 가지 방법 중 하나가 아니라 가장 기본적인 길이다.

6. 아가페 사랑과 에로스 사랑

1) 에로스(eros): 남녀 간의 사랑, 부모와 자신 간의 사랑

· 이유가 있는 사랑이다. 그것은 사랑스럽거나 사랑할 가치가 있기 때문에 하는 사랑이다.

· 대상을 어떤 이유 ‘ 때문에(because of)’ 사랑하는 것이다.

2) 아가페(agape):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사랑

· 능동적인 사랑이다. 그것은 어떤 이유가 있거나 마음이 끌려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먼저 사랑하는 것이다.

· 대상을 ‘그럼에도 불구하고(in spite of)’ 사랑하는 것이다.

· 기독교는 구원의 확실성을 말해준다. 우리의 구원이 변할 수 있는 인간의 믿음, 결심, 노력이나 자격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에 달려 있기 때문에 그 구원은 확실하다.

· 어떤 신학자: 에로스에서는 욕망이 사랑의 원이라면, 아가페에서는 사랑이 욕망의 원인이다.

7. 사랑의 위대함에 대해서는 직관에 호소할 수밖에 없다.

8. 아가페는 삶의 목적으로 적합하다.

제8장 어떻게 살 것인가?

(여러분은 이런 마음을 품으십시오. 그것은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입니다.)-마태복음 22:37~40

반드시 물어보아야 할 질문

· 어떤 일을 할 때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반드시 생각해 보고 행동해야 한다.

· 우리 삶은 대부분의 경우 어떻게 행동하고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도 별 도움이 안 되도록 짜여 있다.

학교에 들어가서 졸업해야 하고, 굶어 죽을 테니 직장을 구해야 하고, 직장에서 쫓겨나지 않을 정도로 열심히 일해야 하고, 남는 시간은 취미 생활 하고

· 아무 생각 없이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면서 하루하루 살아간다.

·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를 반드시 물어야 한다.

2. 우선 절제할 수 있어야

· 현대인은 과거 사람들보다 더 바빠야 하는가?

현대인들이 과거의 사람들보다 더 많은 욕구를 충족시키려 하기 때문이다.

· 성령의 열배는 한 마디로 사랑인데, 그것은 절제 없이는 불가능하다.

· 아가페 사랑을 이루려는 사람은 가장 기본적인 조건은 자신의 욕망을 절제하는 것이다.

· 사회의 강자들이 절제하는 것은 사회의 존속을 위하여 필수적이다.

3. 하나님의 사랑을 인식해야

· 사랑을 실천하려면 무엇보다도 우선 사랑이 가장 고귀하다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

· 사랑하는 사람이 되려면, 우선 자기가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는 것으로 비로소 자기의 정체성과 중요성을 발견하고, 자신도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임을 발견하는 것이다.

·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한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기 위하여 모든 것을 바치려 할 것이다.

·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장 기본적인 명령으로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 하셨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도 구체적으로는 모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임을 성경이 가르친다.

4. 사랑은 연습해야 한다.

· 아가페 사랑은 사랑해본 사람일수록 더 잘할 수 있다.

5. 작은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 하나님의 사랑에 감동하고 예수님의 희생에 감격하였다 해서, 바로 그다음 순간부터 원수를 사랑하고 이웃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는 사람이 될 수는 없다. 상당 기간의 훈련이 필요하고, 그 훈련은 가장 작은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 원수를 사랑하고 이웃을 위해 목숨을 내어줄 정도로 사랑할 수 있기 위해서는 우선 계명부터 지킬 수 있어야 한다.

· 이웃에게 거짓말하고, 이웃의 아내를 탐하면서도 이웃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을 하나님은 사랑이라 보시지 않는 것이다.

· 바울은 율법이 우리의 개인교사라고 했다(갈라디아서 3:24).

· 우리는 계명을 지킴으로부터 사랑의 삶을 시작해야 하며, 그 목적은 너무나 고위하게도 하나님을 닮는 것이다.

·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닮는 것이고, 계명을 지키는 것은 사랑 실천의 시작이고 연습이다.

6. 사랑을 위하여 달란트가 개발되어야 한다.

· 모든 능력은 그대로 사장되는 것보다는 개발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 사랑의 삶을 사는 사람에게는 모든 능력이 이미 자기의 것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의 것이요. 이웃의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개발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과 이웃 앞에 하나의 의무일 수밖에 없다.

7. 사랑의 삶도 즐거울 수 있다.

· 시험에 합격하여 즐거운 것은 많은 불합격자가 있기 때문이요, 소유해서 즐거운 것은 다른 사람들이 소유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8. 사랑의 나라-요한복음 15:10~12

· 천국은 사랑의 나라다. 모든 미움과 고통이 없는 나라에는 노동의 괴로움이 없을 것이고, 사랑의 즐거움만 있을 것이다.

· 보상을 바라보는 선행은 도덕적이 될 수 없으나 진정 도덕적인 행위는 반드시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 아가페 사랑은 그 본질상 보상을 바라는 희생이 아니라. 그러나 그것은 반드시 보상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보상은 다름 아닌 사랑의 나라의 영원한 즐거움인 것이다.

·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의 삶은 결코 희생의 고통으로만 가득 차 있지 않다. 거기에는 욕망의 충족이 감히 가져다줄 수 없는 고상한 기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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