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아깝지 않은 호사
뜨거운 물에 들어가 몸을 지지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실내 목욕탕은 내부 공기가 답답해서 탕에 오래 있지는 못한다. 금방 숨이 차고 어지러워지기 때문이다. 노천온천을 세상 제일 좋아한다. 몸 아래는 뜨거운 물에 들어가 따뜻하고, 머리 위로는 시원한 바람이 분다. 생각만 해도 몸이 릴랙스 되는 기분이다.
처음 노천온천을 경험해본 것은 역시 일본이다. 일본은 온천문화가 발달되어 있어서 다양한 지역에서 온천을 경험할 수 있다. 유학 가기 전, 여행으로 방문한 일본에서 료칸형 호텔을 이용한 적은 몇 번 있었다. 료칸형 호텔이란, 호텔시설에서 온천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다다미가 딸린 객실에서 잠을 자고, 대욕탕에서 노천온천을 즐기고, 식당으로 이동해 가이세키 요리를 먹는다. 1인 1박 2식에 10만 원 초반 대의 가격에 이런 호사를 누릴 수 있다. 하지만 언젠가는 프라이빗한 노천온천이 딸린 고급 료칸도 경험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일본 대학 입시를 위해서 엄마와 함께 일본에 갔을 때였다. 수험 일정을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온천마을 유후인에서 2박을 하며 여유를 즐겼다. (합격 발표가 나기 전이라 마음의 여유는 없었다...) 입시 준비로 돈이 많이 들 때라 가성비 여행이었기 때문에 좋은 곳에서 숙박은 하지 못했다. 돈은 없었지만 시간은 많았던 시절...늘 바쁘게 방문했던 유후인에서 느긋하게 2박 3일을 보내면서 이곳저곳 산책도 하고 구경도 많이 할 수 있었다. 산책길에서 모던한 료칸을 발견했다. 우리 모녀 마음에 쏙 드는 아주 깔끔한 인상의 료칸이었다. 무작정 료칸에 들어가 팸플릿을 받고 가격대를 물어보니 한 사람에 25만 원 정도 하는 하이클래스 료칸이었다. 전 객실 독실에 프라이빗한 노천온천이 딸려있는...딱 내가 원하던 료칸이었다. 그때 엄마에게 약속했다. 내가 일본 대학에 합격하고 아르바이트를 해서 꼭 엄마랑 함께 다시 오겠다고.
2년 뒤 약속을 지킬 수 있었다. 이듬해 학교에 입학하여 다음 해에 아르바이트 한 돈으로 엄마와 그 료칸을 찾았다. 생각보다 더 환상적인 숙소였다. 객실에 비치된 작은 소품 하나하나 다 감각적이고, 프라이빗한 노천온천에서 밤새도록, 내가 원할 때마다 들어가 온천욕을 즐길 수 있었다. 전통 료칸은 아니라 객실에서 식사하진 않고 식당으로 이동했지만 개별실에서 작품과 같은 가이세키 요리를 먹을 수 있었다. 처음에는 1인당 25만 원이라는 비용이 너무 비싸다고 생각했는데, 이 가격에 이런 호사를 누려도 되나 싶을 정도로 황송했다.
그 뒤로도 가족여행으로도 또 방문하고, 친구랑도 방문을 했다. 주변 지인들에게도 추천해서 나로 시작한 방문객도 엄청나다. 심지어 친오빠는 이 료칸에서 프러포즈도 했다. 처음에는 료칸 비용이 너무 비싸다고 투덜거렸는데 말이다.
나중에 더 좋고 비싼 료칸도 가봤지만, 처음 내 마음 사로잡았던 이 료칸이 난 제일 좋다. 지금은 코로나로 일본 갈 엄두도 안 나지만... 꼭 다시 가고 싶다.
이 료칸, 안 갔으면 어쩔 뻔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