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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쵸 Oct 24. 2021

자전거, 안 탔으면 어쩔 뻔했어?

두 발의 자유를 얻다.

 경사가 가파른 곳에 위치한 아파트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지금은 킥보드라고 불리는 씽씽카를 타긴 했지만 자전거를 탈 기회는 좀처럼 없었다. 사춘기 무렵에 드디어 평지의 대단지 아파트로 이사했지만, 교복 치마를 입고 자전거를 탈 일은 별로 없었고 그렇게 성인이 되었다. 성인이 되고 나서는 다칠까 무서워서 자전거를 배울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일본에 유학을 오고, 길거리에 자전거를 타는 많은 사람들을 보고 문화충격을 받았다. 자전거는 운동 수단이라고 여겼는데, 일본에서는 이동수단에 가까웠다. 일본은 교통비가 비싸서 자전거로 이동하는 사람이 많기도 하지만, 도로가 잘 정비되어 있기 때문에 자전거를 타기 아주 좋은 환경이었다. 그래도 나는 자전거를 배울 생각이 없었다. 다치면 안 되니까.


 유학 오고 한 학기가 지났다. 주위 유학생들은 단 몇 개월만 지내는데도 자전거를 사서 타고 다녔다. 자전거가 있으니 활동반경이 넓어지고 외출도 잦았다. 나는 번화가에 나갈 일이 있으면 한 번에 모아서 나가는데. 가까운 동네슈퍼도 한참을 걸어서 갔다 오는데 말이다. 그래도 자전거를 배울 생각은 없었다. 다치면 안 되니까.


 두 번째 학기가 시작될 무렵에 새로운 한국인 교환학생도 새로 왔다. 그중에 한 명이,  나한테 비용을 반반 부담하여 자전거를 사자고 솔깃한 제안을 했다. 조건을 아래와 같았다. (그 친구를 A라 칭한다.)


1. 자전거 구입 비용 반반

2. 구입할 자전거는 내가 원하는 것으로

3. 자전거는 둘 다 이용이 가능하지만, A가 우선권을 갖는다.

4. 학기가 끝나고 A가 돌아가면(4개월 뒤 귀국), 자전거는 완전히 나의 소유가 된다.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다. 가장 저렴한 자전거가 한화로 약 9만 원 정도였으니, 4~5만 원으로 나에게 자전거가 생긴다. 그런데 나는 자전거 못 타는데? 배울 생각도 없는데? 다치면 안 되니까 말이다.


 자전거는 24인치 이상의 큰 자전거만 이 세상에 존재한다고 생각했는데, 20인치 정도의 작은 자전거도 있었다. 이 정도 자전거라면, 바닥에 발이 닿는다면 연습해서 타볼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A가 자전거를 알려주겠다고 해서 우리는 마침내 공동명의의 자전거를 가지게 되었다.


 기숙사 근처에는 큰 공터가 있어서 마음껏 자전거 연습을 할 수 있었다. 발이 바닥에 닿는 작은 자전거를 구입해서 넘어질 위험도 적었다. 두 시간 정도 연습하니 무리 없이 타고 다닐 수준이 되었다. 재밌었다. 9월 중순이 지나 가을에 접어드는 계절이라 날씨도 좋았다. 자전거가 있으니 가까운 슈퍼도 몇 번이고 갔다 올 수 있고, 버스나 지하철로만 이동했던 번화가도 자전거로 25분 정도 달리니 도착했다.


 하지만 자전거 이용의 우선권은 A가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원할 때마다 탈 수가 없었다. 자전거를 안 탄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탄 사람은 없지 않을까... 자전거 금단 현상이 왔다. 내가 타고 싶을 때 타고 마음껏 달리고 싶었고, 자전거로 인해 친해진 A와 함께 라이딩을 하고 싶었다.


 A와 상의 끝에, 자전거는 완전히 나의 소유가 되었고 (반절 비용은 돌려주었다.) A은 근처 리사이클 샵에서 중고 자전거를 구매했다. (작은 자전거가 불편하다고 큰 자전거로 구입했다. 윈윈) 우리는 함께 자전거를 타고 저녁 산책도 하고, 번화가도 매일매일 나갔다. 교통비가 비싸 마음먹고 나갔던 번화가에 자주 나가게 되니 삶의 활력이 돌고, 자연스럽게 운동이 되어 살도 빠졌다. 자전거로 인해 유학생활이 한층 더 재밌어졌다.


 그때 자전거를 배우지 않았다면 아마 나는 지금도 자전거를 못 탔을 것이다. 나이는 먹어가고 다치는 것에 더 민감해졌으니...지금도 자전거를 아주 잘 타고 다닌다. 작년에 이사 온 동네가 자전거 타고 정말 좋은 환경이라 지난달에 바구니가 달린 26인치 큰 자전거도 추가 구매했다. 이제 이 바구니 자전거로 맥도널드도 포장해 올 수 있고, 노랑 통닭도 사 올 수 있다.


운동도 되고 이동수단도 되는 자전거, 진짜 안 탔으면 어쩔 뻔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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