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만장한 기숙사 입실기
내가 다닌 일본 대학교는 번화가와 가까운 고급 주택단지에 위치해 있어 주거환경이 아주 좋았다. (이것이 내가 이 학교를 선택한 가장 큰 이유...) 일본은 물가와 집세가 비싸기로 유명한데, 학교에 신축급 부설 외국인 기숙사가 있었고 월세도 당시 월 30만 원 정도로 아주 저렴했다. (관리비 포함) 전 객실 1인실,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들이 함께 생활하고 일본인 어드바이저 (면접으로 뽑힌 학생들)가 유학생들 생활 편의를 도와준다.
대학 합격 후, 기숙사에 들어갈 생각에 들떠 있었는데 내가 입학한 해는 학부 유학생 모집인원이 한 명이란다. 단 한 명!!! 외국인 기숙사는 교환학생이 메인이기 때문에 학부 유학생을 위한 자리는 서비스(?) 개념으로
결원이 생겨야 입실이 가능했다. 이걸 내가 알았나?
더 환장할 노릇은 기숙사 모집시기였다. 대학 합격자 발표는 11월, 입학은 다음 해 4월이라 5개월이라는 넉넉한 시간이 존재한다. 일본의 입시는 (우리나라의 수능시험과 같은) 1월 말부터 2월 초에 이루어지고
합격자 발표도 2월 중에 나기 때문에, 늦어도 3월 초에는 살 곳을 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기숙사 면접일이 3월 중순이었다. 만약에 기숙사 모집에 떨어지면? 이주도 안 되는 시간에 집을 구해야 하는데 그때쯤이면 멀쩡한 집이 남아있을 확률도 낮고 외국인이 타지에서 집을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그리고 당시에는 환율이 1.5배 정도로 상당히 비쌌고, 일본은 집을 구할 때 사례금, 열쇠 교환비 등등 말도 안 되는 자질구레한 비용이 엄청나게 들었다.
이 엄청난 리스크를 안고 도박을 해야 하나? 그냥 기숙사를 포기하고 지금이라도 당장 집을 알아봐야 하나?
엄청 고민을 했지만 결국 나의 선택은 교내 외국인 기숙사를 도전해보는 것이었다. 최악의 경우를 맞닥뜨리더라도, 시도를 해야 후회하지 않을 것 같았다.
교내 기숙사가 안됐을 경우, 학교에서 연계해주는 교외 사설기숙사에 입실할 생각으로 (교내 기숙사보다 비싸지만 여러모로 나쁘지 않았다) 교내 기숙사 면접을 응시하기 위해 입학식을 보름 앞두고 후쿠오카에 입국했다. 사설기숙사에 체험숙박 (하루 지내보면서 기숙사를 체험해 보는 것)을 신청했는데, 약속시간이 지나도 담당자가 나타나지 않아서 불안해졌다. 꽤 시간을 넘긴 후에 도착한 담당자는 놀라운 소식을 전했다.
"기숙사에 남은 마지막 방이 오늘 아침에 계약이 되었습니다.
입실할 수 있는 방이 없기 때문에 체험숙박의 의미가 없으므로 오늘은 호텔 숙박을 도와드리겠습니다"
플랜 B로 생각했던 사설기숙사가 선택지에서 사라졌다. 교내 기숙사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 그날 밤 사설기숙사에서 잡아준 호텔에서 한숨도 자지 못하고 눈물로 밤을 지새웠다.
다음날 학교에 도착해 무사히 기숙사 면접을 보았고,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 면접 결과를 듣고 그다음 행보를 정해야 했다. 그런데 갑자기 국제센터 직원이 결과를 빨리 알려주었다. 당초 기숙사 모집인원은 한 명이었지만, 추가 결원이 생겨 지원한 두 명 모두 기숙사에 합격했다는 것. (너무 늦은 면접 일정에 대다수의 유학생들은 포기하고 2명만 지원함)
기숙사에서 합리적인 월세로 쾌적하게 생활했고, 또 기숙사에서 좋은 인연들을 많이 만났기 때문에 만약 이때 기숙사에 떨어졌다면? 정말 생각하기가 무서울 정도로 막막해진다.
유학시절의 반 이상은 기숙사에서의 추억, 그리고 만남들이기 때문에
정말 기숙사, 안 들어갔으면 어쩔 뻔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