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동문의 의미는 특별할 것이 없다. 아무 연고가 없는 객지에서 20년째 직장 생활을 하는 나에게는. 동문의 의미란 직장 내에서 업무 능력, 사회성-주량이라 표현하고 싶지만-만큼이나 강력한 무기가 되는 힘이었다. 출신학교가 같은 사람들 사이에서 합리적 이유 없이 섭섭함이 느껴질 때면 ‘나 그 학교 배지 구해서 달고 다녀볼까?’, ‘먼저 교가부터 외워보는 건 어때?’ 등등의 술자리 농담의 소재였을 뿐이었다.
나의 모교는 일명 뺑뺑이를 돌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주어진 것이기에 더욱 그랬다. 그런 나에게 ‘동문의 자격’이 주어졌다. 동문 문학회의 일원이 되는 것이었다. 함께하는 다른 동문은 누구인지, 몇 명인지 사전 정보가 없었기에, 긴장되며 설레는 마음이었다.
첫 모임 장소에 도착하는 순간, 맙소사! 동창 친구와 내가 막내인 줄을 알았지만, 참석하신 동문 선배님들의 연배 스펙트럼이 그렇게 넓을 줄이야. 엄마와 같은 연세이신 1기 대선배님이 수장이시다. 참고로 나는 뭔가 딱 떨어지는 숫자 25기이다. 아. 이곳, 어른 부대였다.
젊은 사람들과는 소통을 잘했던 반면, 성격적으로 어른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아이의 친구들, 모임에서 만난 젊은 사람들, 스무 살 어린 팀원들과는 대화가 수월했다. 필요한 대화 이외에도 그들의 솔직한 과거사, 고민거리도 함께 나눌 수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리만큼 어른들과는 대화가 어려웠다. 또래 다른 직원들은 어른들을 잘 모셨다. 그분들과의 친교를 통해 조직에서 막강 무기가 되는 라인도 만들고, 배우자도 소개받고, 공적으로 사적으로 다양한 도움을 받아왔다. 나는 이런 것들을 잘하지 못했다. 아니, 스스로 거리를 두었다고 할까.
어른들과의 거리는 나만의 기준이 있어서였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처럼 어른들에게는 ‘엘디스트 오블리주’가 있어야 하고, 그것은 연륜과 경험에서 기품있게 어른들의 내면에 채워지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 기품에서 어린 사람에 대한 존중과 배려와 경청을 기대했다.
그런데 내 주변 어른들의 레퍼토리는 내 마음에 그분들과의 거리를 두게 했다. ‘네가 지금은 이해가 안 되겠지만 엄마 나이가 되면 저절로 알게 될 거야.’, ‘심 주임도 우리 나이 되면 이렇게 될 거야.’, ‘세월이 답이야.’, 내가 경험한 많은 어른들은 본인의 기준과 판단을 강요하고, 우리의 생각 틈새를 나의 어림으로 속단했다.
그런 오만한 잣대를 어른들께 함부로 들이밀던 내가 어른을 이해하게 된 순간이 있었다. 몇 년 전 근무한 곳에서 평범한 할아버지, 할머니 열 분의 자서전을 편찬하는 사업을 했다. 평균 연령 여든 살의 평범한 어르신들이 글쓰기 과정을 교육받으시고 그분들의 인생 자서전을 쓰셨다.
전쟁을 경험하며 학업을 잇지 못한 점, 쌀 배급을 받았던 경험, 딸이라는 이유로 학교 교육을 못 받은 경험 모두 각자의 자서전에 고스란히 담아내셨다. 그 내용은 내가 역사책, 드라마, 영화 속에서 보았던 일제 통치, 한국전쟁, 세계 최빈곤국이었던 대한민국에서 그분들이 온몸으로 힘껏 경험한 이야기였다.
그런 분들과 아직 동시대에 살고 있구나라는 생각에 움찔했다. 그 어른들 모두 영화 ‘국제시장’의 황정민 할아버지며, 영화 ‘파친코’의 윤여정 할머니셨다. 전해 들은 말이지만 출판기념회에서는 저자 어르신이나 독자나 모두 눈물바다였다고 한다.
그런데 그분들은 각기 다른 삶을 경험한 끝에 같은 말씀을 하고 계신다. 은빛으로 물든 머리를 하고 돌아보는 자신들의 인생은 황금빛이었다 하신다. 그 고단하고 모진 세월 모두 금빛이라는 깨달음이라니. 과연 어른은 그냥 되는 것이 아니었다. 내 주변의 어른들은 그런 세월과 경험의 체득으로 속이 채워지신 분들이구나.
그날 이후로는 옹고집으로 무장한 어른들을 나만의 '엘디스트 오블리주'란 잣대로 재지 않았다. 여전히 어른들의 대화와 이해는 어렵다. 그래도 내 마음 한 켠, 경로 우대석이 만들어진 것 같다.
동문 모임에서도 같은 마음을 느낀다. ‘안녕하세요’ 첫 마디 이후 말 붙이기도 어려울 것 같던 선배들과의 대화도 이렇게 풍성할 수 있다니…. 세대를 넘나들며 한결같이 우리의 종아리를 튼튼하게 만들어 주었던 학교의 언덕 이야기, 이미지 속에 숨어있던 수녀님들의 반전 매력, 같은 선생님과의 다른 추억담 등등, 성모인들의 대화는 세대를 넘나들며 끊임없이 이어진다. ‘이제 곧 환갑이야’라는 말을 달고 사시는 한 선배님의 모습은 아직도 소녀 같으신데 띠동갑인 후배를 세심히도 챙겨주신다. 어지간한 인간의 감정을 다 겪었을 법한 연배의 선배들 입에서 툭툭 내던져지는 말을 들으며 나는 성장하고 감사함을 느낀다. 어른 부대라고 단정 지으며 그었던 내 마음속 선이 흐려지기 시작한다. 그분들은 나와 나이로 단절된 분들이 아니라 내가 걸어갈 길을 먼저 걸어가신 분들이셨다.
「정의와 진리와 사랑을 위해 몸 바칠 여성」, 어른들로 가득한 첫 동문 모임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잊고 있었던 교훈이 생각났다. 학교 관련되어서는 무엇이든 불만이었던 사춘기 여고생 눈으로도 멋진 교훈이라 생각했었다. 모교의 같은 가르침 아래 같은 문을 먼저 나서신 어른들과 설레고 새로운 동행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