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만해진 모양이다. 일 년에 걸친 암과의 사투 후, 생존의 문제는 일단락되었다. 이제는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고민이다. 갑자기 찾아온 불청객 덕분에 휴직하게 되었다. 출근하며 보냈던 여덟 시간을 대신할 무언가를 찾는 것이 과제다.
탄탄하게 짜여 돌아가던 생활에 쉼표를 찍고 나니, 그 공백 속에서 우왕좌왕하는 나를 발견한다. 알고 있다. 이 회복의 시간에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하지만 그동안 열심히 달려온 습관이 나를 초조하게 만든다. 운동을 체계적으로 해 볼까, 글을 본격적으로 써볼까, 첫발을 떼기가 어렵다.
수술 후 어깨가 불편해 재활운동을 시작했다. 물리치료사께서 한 말씀 하신다. ‘회복되기 위해서는 병원에서 치료받는 한 시간보다 집에서 매일 하는 십 분이 중요합니다.’ 매일과 십 분, 두 단어가 머리에 꽂혔다. 집으로 돌아가며 나의 생활을 들여다본다. 중요한 것은 반복되는 십 분인데 나는 처음부터 여덟 시간으로 채우려고 하니 조바심이 났나 보다. 처음부터 굵직한 것에만 욕심내지 말고 소소해도 중요한 것들로 하루를 채워야겠구나. 일상을 회복하는데 필요한 것은 큰 목표와 성취가 아닌 나만의 루틴이었다.
루틴은 스포츠선수가 최상의 결과를 내기 위해 의식적으로 하는 행동처럼, 우리가 선택한 행동이다. 단순한 반복은 아니다. 원하는 것에 다다르기 위해 스스로 선정한 발판이다. 이 발판을 다져 몸에 장착하는 것이 원하는 방향과 높이로 편안하게 뛸 수 있는 준비가 된다.
스티브 잡스의 터틀넥과 청바지같이 결정 피로를 줄이는 매일의 행동일 수도 있고, 빌 게이츠가 매년 생각주간으로 일주일을 지내는 것처럼 몰입의 시간을 갖는 일일 수도 있다. 아침 감사 일기나 저녁 반신욕같이 각자 정해진 시간에 실천하는 작은 의식일 수도 있다.
한강 작가는 자신이 아끼던 옥색 빛의 찻잔을 노벨상 박물관에 기증했다. 그녀 역시 몇 개의 루틴을 지키려고 노력했다는데, 글을 쓰기 위해 책상으로 돌아갈 때마다 차를 탔다고 한다. 하루에 예닐곱 번 이 잔의 안쪽을 들여다보는 것이 일상의 중심이었다고 한다.
새로운 하루 패턴을 만들고 지속하는 것이 필요하다. 나만의 리듬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눈을 뜨면 '아이우에오'로 근육을 풀며 거울 속 나에게 환하게 인사한다. 20분 정도 요가 영상을 보며 움츠렸던 몸을 푼다. 달걀을 삶고 사과를 씻는다. 채소와 통밀의 빵을 곁들여 먹는다. 신문을 읽는다. 책상에 플래너나 일기장을 펴고 나에게 대화를 거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두 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 이 작은 반복들이 오늘도 스스로 정한 약속을 지켰다는 만족감을 준다. 그 감각이 하루의 시작을 안정적으로 이끈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더하기로 했다. 오후 한 번씩은 차를 마시는 것. 한동안 즐겨 마셨던 ‘오후 3시 15분’이라는 대만 차가 있다. 차 이름이 ‘오후 3시 15분’인 것은 대만 사람들이 오후 3시 전후로 차를 마시는 문화에서 기인했다. 홍차 티백을 우유에 넣어 마시면 전망 좋은 카페에 있는 기분이다. 달콤한 차 한잔의 맛에 빠져 일을 시작하는 아침 9시 15분을 즐기곤 했었다.
차 하면 또 떠오르는 곳은 영국. 왕실뿐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티타임 문화는 유명하다. 전쟁이나 경제 불황 속에서도 티타임 갖는 일은 유지되었다. 단순한 기호를 넘어 차를 마시는 일은 삶의 균형을 잡아 주는 역할을 했을 것이다. 익숙한 루틴이 주는 안정감이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작지만 단단하게 그들의 영혼을 지탱해 주었으리라.
나도 견고한 여유의 시간을 갖기로 했다. 정해진 시간, 그날의 기분에 따라 찻잔을 골라 차를 내린다. 줄어든 월급 속에서도 찻잔 사는 일에는 지갑을 열게 된다. 이 시간의 즐거움을 위해 나에게 주는 통 큰 선물이다. 간택되는 차는 순서가 정해져 있지 않다. 어제 옥색의 여린 찻잎을 선택했다고 다음 날 농염한 붉은 찻잎에 순서가 가는 것은 아니다. 어떤 차는 거절의 쓴맛을 오래 본다.
찻잔을 쥐고 창밖의 먼 풍경을 본다. 보고 싶은 영상을 보거나 글을 쓰기도 한다. 컨디션이 나빠져 무채색의 감정이 올라올 때나, 익숙지 않은 마음이 바람을 일으킬 때 하루 한 번, 차를 내리는 동안 티끌들을 함께 내려보낸다. 차의 향으로 마음을 채색하고, 그 촉촉함으로 번뇌를 녹여낸다.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게 차를 따르며 마시는 순간만큼은 요동치는 마음도 본 궤도를 찾아간다. 이런 시간을 갖다 보면 흔들리지 않는 나만의 자전축이 생기지 않을까. 그 축으로 세상을 걷는 데에 큰 흔들림이 없으리라. 매일 지키는 나만의 루틴이 결국은 오래도록 나를 지켜주지 않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