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어느 날,
점심시간이나 쉬는 시간에 운동장에 나가서 뛰어놀 수도 없고 하루 종일 실내에만 있으려니 아이들이 에너지를 쏟을 곳이 마땅치가 않다.
답답하기도 하고 발산하지 못하니 비 오는 날은 학교가 한층 더 소란스럽다.
마땅히 갈 곳이 없는 10여 명의 아이들이 점심시간에 교장실에 들어왔다.
마침 마쳐야 하는 일이 있어 너무 바빠서 잠시 어떡할까? 고민하다가
친구들이 비가 와서 갈 곳이 마땅치 않아 용기를 내어 들어온 교장실이라 생각하니 거절을 할 수가 없었다.
“오늘은 교장 선생님이 바빠.
시간 내에 마쳐야 할 일이 있으니 너희들끼리 앉아서 조용히 이야기했으면 해. 교장 선생님이 일해야 하니 배려해주면 좋겠어요."라고 분명하게 나의 상태를 말하고 부탁을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교장실을 마구 뛰어다니고 서로 목소리를 높여 말하느라 교장실은 매우 소란스러웠다. 도대체 너무 시끄러우니 일을 할 수가 없어 잠시 멈추었다. 화도 나고 짜증이 올라왔다.
’아니, 내가 바빠도 너희들을 위해 내 공간을 너희들에게 기꺼이 내어주었건만 너희들 그럴 수가 있어? 그리고 내가 미리 부탁도 했잖아? 마음속에서 그 순간에 단호하게 말해서 ‘앞으로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은 용납이 안돼.’ 하는 교육적 행동이 필요해 보였다.
짧은 시간 동안 마음속으로 갈등하며 어찌할까 잠시 망설였다.
그리고 선택을 했다.
아무래도 개입을 해야 할 것 같아 “모두들.. 잠깐 이리 와서 앉아 보자 “라고 단호하고 평소보다 큰 목소리로 낮게 말했는데 아이들의 아, 짱 선생님이 조금 이상하다는 낌새를 알아차렸는지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소파에 따라 앉았다.
오늘 방문한 아이들 중 친구들 따라 교장실에 처음 온 친구들도 있었다.
얼굴을 정색을 하고 앉으니 어리둥절한 얼굴로 서로를 쳐다보며 어쩔 줄 몰라했다.
“애들아,
처음에 교장 선생님이 너희에게 한 말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
........................
교장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은 친구 있나요?
오늘은 교장 선생님이 할 일이 있으니 너희들끼리 앉아서 이야기하라고 했는데?
........................
교장 선생님은 너희들이 소곤소곤 이야기해서 짱 선생님이 일할 수 있도록 배려해줄 줄 알았는데?
”애가 먼저 떠들었어요. 아니에요. 재가 떠들었어요. “ 하며 “너 때문이야.”라고 서로를 탓하며 열심히
일렀다.
아이구야...
아이들의 3,4 학년 아이들로 특성을 모르는 것도 아니었으나 나의 부탁을 들은 아이가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 거기에 서로를 탓하며 이르고 있으니 기대한 아이들의 모습은 아니었다.
"약속을 안 지켰으니 아무래도 오늘은 교장실에서 이만 나가야 할 것 같다"
"조용히 교실로 가세요."
고요한 침묵이 흐르고 아이들이 하나둘씩 밖으로 나갔다.
혼자 남겨진 내 방에서 또다시 잘못된 선택을 했음을 직감했다.
‘부탁도 약속도 내가 정했고 안 지켰다고 교장실에서 나가라’ 고 했으니 아이들을 당분간은 만나지 못할 듯싶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현명하게 처신해야 했을까?
예전에 신동엽의 예능 드라마가 생각난다.
선택의 기로에서 선택하지 않았던 삶에 대해 가상으로 꾸며보는 드라마였는데 이 기억을 살려 오늘 교장실 상황을 되돌려 보고 다른 선택을 한다면
첫 번째는 현재의 상황을 분명하고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다.
내 상황이 바쁘고 업무가 있는 상황이어서 아이들을 맞이 할 형편이 안되었다. 아이들을 배려했지만 결국은 아이들과 좋지 않은 결과를 이끌어 냈다.
친구 따라 처음 방문한 아이들도 있었는데 그동안 아이들과 소통을 위해 좋은 관계를 맺으려고 했던 것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
부모가 여유가 있어야 아이들을 온화하고 여유 있게 대한다.
엄마가 바쁘고 여유가 없으면 일단 짜증이 나고 예민한 상태이다.
그러니 아이 이야기를 귀담아듣지 않게 되고 귀찮아지고 옆에서 징징거리는 아이를 다그치게 되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이 아이들은 부모가 일관성 없다고 느껴지고 아이들이 눈치를 보게 된다. 그래서 가능하면 기분을 좋게 하고 마음을 다스려야 하지만 우리의 삶이 그렇지 못한 경우가 더 많지 않은가?
오히려 현재의 상황을 아이들과 정확하고 솔직하게 나누었다면 어땠을까?
”교장실을 찾아주어서 고맙다. 애들아,
그런데 어쩌지? 오늘은 교장선생님이 너무 바쁘고 해야 할 일도 있단다.
다음에 다시 와 줄래? “ 하고 솔직하게 나의 상황을 이야기를 했다면
아이들은 ‘교장선생님이 오늘 바쁘시구나..
그럼, 다음에 다시 올게요 “라고 돌아가는 선택을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나대로 기분 좋게 일에 몰두했을 것이고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을 때 만난 아이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두 번째는 일을 잠시 미루고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교장실에서 아이들과 소통을 하기 위해 준비를 하면서 다짐을 한 것이 있었다.
아이들과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 교장실을 기웃거리기만 하여도 보건실인 줄 잘 못 알고 들어와도 자리에서 하던 일 멈추고 벌떡 일어나 아이들을 친절하게 맞이하겠다는 나와의 약속이었다.
그런 마음과 약속이 희미해졌다.
쉬는 시간은 보통 10분, 점심시간은 50분이니 점심을 먹고 나면 30분 정도의 시간이 아이들에게는 자유로운 시간이다. 나의 일을 잠시 미루고 아이들을 위해 먼저 시간을 할애했다면 아이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밀려왔다.
또 하나의 사건으로 인해 나의 부족함을 깨닫게 되었다.
언제쯤이면 여러 상황 속에서 정색하지 않고 유연하게 아이들과 소통하는 짱 선생님이 될까요?
소통은 이렇게 꾸준한 연습과 노력이 필요한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