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이야기하다 - 영화① 박찬욱 <헤어질 결심>
사랑에 빠지는 일은 결심과 무관하게 이루어지면서, 왜 헤어짐엔 결심이 필요할까?
여전히 평이 극명히 갈린다고 들었다. 그런데 박찬욱이 그러지 않았던 적 있었나.
그는 필체가 분명한 작가, 화풍이 독특한 화가다. 박찬욱은 늘 박찬욱이었고 누군가는 그에 매료되었으며 다른 누군가는 지루해 하거나 불편해했다. 나는 매료된 쪽이다. 박찬욱이 지은 세계는 늘 흥미롭다.
<헤어질 결심>은 만조와 닮았다. 차오르나? 하면 밀려가고 차오르나? 하면 밀려가고 차오르나? 하면 밀려가고, 그렇게 몇 번 반복하다 문득 고갤 숙이면 물이 쇄골까지 차있다. 수압에 갇힌 폐부가 양껏 숨을 마시지 못한다는 걸 느끼고서야 잠식을 깨닫는다.
그러니까, 박찬욱이 아닌데? 좀 다른데? 새로운데? 싶은 모든 지점들이 결국 한 곳으로 길을 뚫는 것이다. 박찬욱이라는 곳을 향해.
그렇담 박찬욱이라는 물, 파도를 끌고 갔다 놔버리기도 하는 바람은 무엇인가. 그건 항상 정서경의 대사였고 <헤어질 결심>에서도 그러했으며 거기에 탕웨이와 박해일이 합류한 것이다. 그렇게 박찬욱이 몰아치는 석양의 시간이 더 붉어졌으며 잘게 부서진 물방울은 깨끗한 안개를 만들었다. 갈매기도 날지 않는, 종잡을 수 없는 바람결이 불어서 마침내, 밀려가도 아주 밀려가지는 않는 그 파도의 이름은 <헤어질 결심>이 되었다.
영화는 내게 '사랑은 무엇일까요?'하는 수수께끼를 던졌다. 분야가 인문학인지 생물학인지 철학인지 언어학인지 모르겠다. 과학인가? 과학이라면 사랑은 진자운동이다. 맞닿은 시간보다 맞닿기 위해 오가는 움직임이 더 크고 많은 것이 소모되지만, 찰나를 맞닿기 위해 끝없이 움직이고 수없이 소모시키는 진자운동.
과학이 아니라면 넌센스다. ㅅㅏㄹㅏㅇ은 ㅅㅏㄹㅏㅇㅣㅆ는 것이다. ㅅㅏㄹㅏㅇㅣㅆ음을 느끼게 하는 가장 원시적이며 고차원적인 몸과 마음의 행함이다.
삶의 반대가 죽음이듯 사랑의 반대가 죽음일 수 있다. 또, 삶이 죽음일 수 있으며 사랑 또한 죽음일 수 있다. 이 세 가지 사이에는 어떤 부호가 들어가든 틀리지 않다. 그중 가장 자연스러운 것은 등호(=)일 것이다.
잠식은 사랑에 빠짐일 수 있으나 무호흡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무호흡은 숨 쉬지 못함인 동시에 숨 쉬지 않음일 수도 있기에.
잠겨죽어도 좋으니 너는 물처럼 내게 밀려오라.
- 이정하 <낮은 곳으로> 중에서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사랑은 파도를 향한 모래사장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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