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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프피 Sep 30. 2022

철 모르는 작은 꽃

이야기를 이야기하다 - 뮤지컬② <안나, 차이코프스키>

#박규원 #김소향 #테이


시대의 예술과 시대의 사랑을 노래하는 극이다. 더 자세히 얘기하자면 시대의 잘못과 예술, 사랑의 무고함을 노래하는 극이다. 사실 시대극은 대부분 그런 것을 노래한다. 그 시대가 그때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질렀는지를.

더 전문적이고 보다 학문적인 입장이라면, 잘못된 시대를 만든 건 사람이고 지금의 우리들이라고 잘못을 반복함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결론까지 닿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전문적이지도 학문적이지도 않으며 또 그런 사람들이 내 글을 읽을 것이라 생각하지도 않기에 말하건데, 우리는 그렇게까지 생각할 필요가 없다. 시대라는 무형에게 떠넘기자. 일단 시대가 잘못했다는 것까지만 생각하자.


역사는 눈물 없이 볼 수 없고 원통함이나 분노 없이 견딜 수 없는 비극을 되풀이한다. 해서 언젠가 휴대폰 메모장에 써놓은 글. 삶이란 앞으로 살아가며 흘릴 눈물을 축척하는 일련의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삶이 모이면 역사가 되는 것이니, 역사 또한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인간이 어리석어 비극을 반복하는 실수를 한다기보다 인간은 그 원동력으로 나아가기에 비극을 반복하고 그만큼 희망과 희극도 반복하는 게 아닐까.

대부분의 예술과 사랑은 죄짓지 않는다. 그 영역엔 죄와 죄 아닌 것의 구분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대부분의 잘못은 시대가 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겠다.
예술과 사랑 모두 시대의 속해있으니 시대가 잘못이라면 예술과 사랑도 그 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까.

아니다. 시대의 일부에 예술과 사랑이 있으나 같은 것으로 볼 수 없다. 그들은 각자 다른 법칙을 가진 채 흘러간다. 세 개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는 말이다. 시대는 빠르고, 앞서간다. 늘 선두에 선다. 그럼 시대의 뒤에 선 것들은 자연히 시대를 모범안으로 여길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비극을 반복한 우리는 이제 안다. 시대는 빠른 것일 뿐 맞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시대보다 느리게 흐르는 예술과 시간은 아직 자신의 모범안을 찾지 못했을 뿐, 잘못된 게 아니다.



시대 그리고 예술과 사랑의 가장 큰 변곡점을 말하라면 속도다. 시대는 계절과 계절을 누비는 데에 거침이 없는 바람과 같고, 예술과 사랑은 그 바람결에 계절마다 돋고 피어나고 시드는 꽃과 같다. 예술과 사랑은 작은 꽃을 닮았다. 피는 데도 시간이 필요하고 눈에 띄는 데도 시간이 필요한 작은 꽃.


누가 작은 꽃은 귀하지 않다고 할 수 있을까. 또 누가 꽃의 아름다움은 크기에 비례한다 할 수 있을까. 또 누가, 꽃을 보고 봄이 옴을 모를 수 있을까. 예술은 그런 것이다. 잘못된 시대에서도 피고야 마는 사랑은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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