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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프피 Aug 19. 2022

세상은 여전히 자는 척한다

이야기를 이야기하다 - 뮤지컬① <웃는 남자>

#박강현 #김소향 #민영기 #유소리


뮤지컬엔 어떤 법칙 같은 게 있다. <지킬 앤 하이드> 지킬과 하이드는 조승우, <위키드> 엘파바는 옥주현, <명성황후>의 황후는 김소현, <시카고> 벨마는 최정원.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뭘 의미하는지 알 것이다. 법칙이라고 해서 이들만이 답이고 이 외엔 틀렸다는 게 아니다. 이들이 최고고 이 외는 그보다 덜하다는 것도 아니다. 이건 그러니까, 스타벅스하면 카페라떼를 떠올리는 것과 비슷하다. 시그니처랄까.







이렇듯, <웃는 남자>는 박강현이다. 당연히 나 혼자 정한 건 아니다. 내가 그렇게 건방지진 못하다. 항상 텅장일 때만 와주는 덕에 미루고 미루다 3연에서야 겨우 보게 된 깡윈플렌이다. 기대는 당연히 그가 처음 남우주연상을 받고, 그의 대표 넘버로 <그 눈을 떠>가 꼽히기 시작했을 때부터 쌓이고 쌓여 나를 붕 띄워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 앉혔다.

내게 박강현을 늘 기대하는 이유를 하나만 말하라면 단연 음색이다. 투명한 얼음, 그러나 차갑지도 딱딱하지도 않아 물 같기도 하지만 그리 유약하지도 않은 목소리. 곱고 어여쁘지만 의외의 힘과 안정감으로 캐릭터와 세계를 지어내는 그 목소리. 그는 어떤 넘버를 부르든 '자신의 목소리'로 오롯하게 불러내는 배우다.

그의 목소리는 그윈플렌을 만들기에 아주 적합하다. 여리고 순진하지만 결코 쉽지 않은, 휘어져도 부러지거나 꺾이진 않는 그윈플렌, 그리고 박강현.




@emk뮤지컬


사실 이번 시즌 세 명의 그윈플렌 캐스팅이 발표됐을 때 너무 흥미로웠던 동시에 재밌었던 점. 박효신의 쿄윈플렌과 박은태의 긍윈플렌은 입을 가린 채 강렬한 눈빛만으로 포스터에 담겼다. 그런데 어딘가 울망울망(?)한 박강현 깡윈플렌의 눈빛. 유독 그를 눈에 담게 했고 마음이 가게 했다.

극을 보고나니 이해가 됐다. 왜 깡윈플렌의 남다른 눈빛에 마음이 갔는지. 이 포스터는 웃는 남자, 웃는 광대, 한낱 배우, 그윈플렌 그 자체를 보여주고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넘버는 김소향 조시아나 여공작의 <내 안의 괴물>과 유소리 데아와 앙상블이 함께한 <눈물은 강물에>. 향시아나는 그 특유의 천진함, 사랑스러움 때문인지 그윈플렌에게 끌리고 현실에 절망하는 감정의 연결이 와닿았다. 1막과 2막, 3시간 이내의 러닝타임동안 캐릭터와 서사를 납득시키는 것은 대본과 배우의 역량인데, 향시아나의 경우엔 대본이 30정도 해내고 김소향이 70을 해낸다. 당연히 더 매력적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인터미션에 네이버에 김소향을 찾는 주변 관객들이 천번만번 이해간다.

<눈물은 강물에>는 매번 나를 울린다. 넘버가 나오기 전 제시된 상황도 한 몫하지만 그보단 노래 자체의 따뜻하고 홀가분한 멜로디, 가사, 그리고 앙상블들이 데아를 이끌고 춤추는 움직임 때문임이 크다. 특히 앙상블 합창임에도 가사가 너무 잘 들려서 이번 관극엔 더 많이 울었다. 생각하면 또 눈물난다. 마음 같아선 이 넘버와 이 넘버의 장면을 보기 위해 한 번 더 관극하고 싶다. (내 통장 눈감아)




공연을 보고 나와 광화문 광장에 섰는데 한 사람이 하늘 향해 카메라를 들었다. 그러자 공연을 보고 나온 사람들 모두 고갤 들고 걸음을 멈춰 똑같이 카메라를 들었다. 그 날은 올해 마지막 슈퍼문이 뜨는 날이었다.

한 사람이 하면 한 사람 이상이 하는 건 쉽다. 그 기운이 공기 중에 퍼지니까. 하늘의 색을 확인하려 고갤 들 줄 아는 마음이면 땅을 보려 고갤 숙일 줄도 아는 마음이다. 하늘의 색을 볼 줄 아는 사람이 늘었으면 좋겠다. 주위의 동요에 멈춰 고갤 돌릴 만큼이라도 마음의 공간이 남는 이가 늘었으면 좋겠다. 오늘 어디가 바싹 말랐고 누가 비에 젖었고 무엇이 불에 탔는지 알려는 이들이.

지옥처럼 내린 비가 마르면 땅은 단단해질 테고 그 위엔 새 터가 들겠지. 그럼 비를 삼킨 땅 아래, 단단하고 무거워진 그 아래 무엇이 있을까.

우린 모두 알고있다. 우르수스처럼, 그윈플렌처럼, 위고처럼. 다만 자는 척 할 뿐이다. 정답 혹은 낙원이나 천국으로 난 문에 기대서 그 문의 열쇠를 품에 안은 채 자는 척하며 비키지 않고 있다. 때문에, 애석하지만 그윈플렌의 <그 눈을 떠>는 여전히 외로운 메아리가 되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은, 우리는 선잠의 꿈 속에서 스스로의 알리바이와 핑계거리를 만드느라 떨리는 눈꺼풀을 올리지 않는다. 사실은 다 알고 있으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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