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내가 가장 먼저 배우기 시작한 운동은 수영이었다. 수영을 꾸준히 취미로 하고 계셨던 부모님 덕에 어린 나이에 수영을 배우기 시작했고, 긴 팔다리와 유리한 체격조건 탓인지 '제대로 선수를 해봐라'는 코치님의 말을 종종 듣기도 했다. 그때부터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이 항상 같을 수 없다는 걸 알았던 것 같다. 수영에 재능이 있었을지 몰라도 나에게 재밌는 운동은 아니었다.
수영에 흥미를 잃어가다가 접하게 된 운동이 바로 스케이트다. 내가 다니던 중학교 옆에 걸어서 10분 정도 거리에 아이스링크장이 있었다. 학교 방과 후 프로그램 중 스케이트가 있어서 친구와 바로 신청하고 수업이 끝나면 늘 아이스링크장으로 향했다. 하루 중 스케이트 타는 시간이 가장 기다려질 만큼 스케이트가 재밌었다. 스케이트를 오래 타면 늘 발이 아팠지만, 차가운 공기 속에서 미끄러지는 순간만큼은 세상에서 제일 빠른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발끝으로 얼음을 긁을 때마다 바람이 얼굴을 스쳤고, 그 바람 속에서 나는 조금 더 멀리, 조금 더 오래 달리고 싶었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가까운 아이스링크장을 시간이 날 때마다 종종 찾았다. 3~4000원의 저렴한 이용료만 내면 몇 시간이고 스케이트를 마음껏 탈 수 있었다. 스케이트를 신나게 타고, 추운 링크장에 있다 보니 잔뜩 붉어진 얼굴을 하고 매점에서 라면을 먹으며 몸을 녹이던 기억.
그때는 몰랐다. 그때의 기억이, 훗날 다시 얼음 위로 나를 부를 줄은.
그 후 입시를 하고, 정신없이 대학생활을 하다 보니 운동과는 멀어졌다. 책상 앞에 오래 앉아 있는 게 익숙해졌고, 집에 돌아오면 온몸이 무거웠다. 운동 없이도 타고나게 체력이 좋았던 나는 크게 운동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다 웨이트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꽤나 우연했다. 퇴사를 하고, 졸업을 하면서 취준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을 때의 일이다. 갑자기 시간은 많아지고, 소속된 집단이 없어지니 불안하고 공허했다. 거기에 취준 스트레스는 잔뜩 받고 있었지만 성취감은 부족한 나날들이 반복됐다. 무언가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헬스장에서 러닝머신만 뛰던 내가, 처음으로 PT를 끊고 운동을 배우기 시작했다. 처음엔 기구 사용법을 외우는 것도 버거웠다. 그런데 조금씩 무게를 올릴 수 있게 되자, 몸이 변하는 재미가 생겼다. 거울 속에 힘줄이 스칠 때마다, 운동 전엔 몰랐던 뿌듯함이 마음 한쪽을 채웠다. 그리고 그 변화가, 나를 예전보다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주 7일 매일같이 헬스장에 출석도장을 찍으며, 몸의 근육뿐 아니라 마음의 근육까지 단단해졌다.
그렇게 웨이트를 시작한 지 3년 차쯤 되었을 때, 웨이트 권태기가 찾아왔다. 새로운 운동을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쯤, 마침 집 근처에 링크장이 오픈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어린 시절 스케이트를 같이 타던 친구와 홀린 듯이 아이스하키 원데이 클래스를 신청하고, 다시 얼음 위에 올랐다.
순간, 오래 전의 한 장면이 번쩍 떠올랐다. 그 링크장의 얼음, 숨이 차오르던 바람, 그리고 미끄러지는 발. 망설임은 오래가지 않았다. 스틱을 처음 잡아본 날, 퍽이 내 앞에 놓였을 때, 나는 이미 마음속으로 다시 달리고 있었다.
나는 운동선수가 될 건 아니다. 하지만 웨이트와 하키를 하면서, 몸뿐 아니라 마음에도 근육이 붙는 걸 느꼈다. 이건 단순한 운동 기록이 아니라, 나를 조금씩 단단하게 만든 시간들의 이야기다. 앞으로 이 책에서, 나는 다시 얼음 위로 나아간 그 발걸음을, 그리고 그 위에서 배운 것들을 기록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