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에서 함께로

by 지윤

벌써 웨이트를 시작한 지 4년 차. 첫 PT를 시작으로 운동에 재미를 붙이다 보니 어느새 4년이 흘렀다. 웨이트를 할 때는 늘 ‘나와의 싸움’이었다. 무게를 얼마나 더 드는지, 어제보다 몇 번 더 버텼는지. 기록은 오롯이 나 혼자만의 몫이었고, 성취감도 좌절도 혼자 감당하는 것이었다. 거울 앞에서 자세를 확인하고, 이전보다 더 무겁게, 더 단단하게 버텨내는 게 전부였다. 그 싸움의 상대는 결국 나 자신뿐이었다. 집중력이 흐트러지면 바로 실패로 이어지고, 결국 스스로를 이기느냐 지느냐가 운동의 전부였다.


그런데 하키는 달랐다. 얼음 위에 올라서는 순간, 상대가 있고, 팀이 있었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혼자서는 절대 경기를 완성할 수 없다. 패스를 주고받고, 빈 공간을 메우고, 실수하면 바로 옆사람에게도 영향이 간다. 얼음 위에서는 내 움직임이 곧 팀의 흐름이 되고, 누군가의 패스가 이어져야 내가 슛을 할 수 있다. 혼자만 잘해서는 아무 의미가 없고, 함께해야 비로소 경기가 굴러간다. ‘나와의 싸움’에서 ‘남과의 싸움’을 배우는 것 같지만, 사실은 ‘함께 맞추어가는 싸움’을 배우는 시간에 더 가깝다. 그래서인지, 첫 게임데이를 앞둔 날엔 웨이트를 할 때와는 전혀 다른 긴장감이 찾아왔다.


링크 위에 20명 넘는 사람들이 빽빽하게 채워졌는데, 여자 멤버는 고작 다섯 명 정도였다. 남자 선수들이 중심이 되는 경기장 분위기 속에서 내가 얼만큼 할 수 있을지 긴장됐다. 그런데 긴장도 잠시, 옆자리에 앉은 분이 강아지를 데리고 와서 장비를 착용하는 내내 그 아이가 주변을 돌아다녔다. 나를 보고 반갑다고 폴짝 일어나 꼬리를 흔들고, 손을 핥고, 앞발로 장난을 치는데, 그 순간 괜히 마음이 풀렸다. 경기 전의 긴장감을 귀여움이 가볍게 덮어버린 느낌이었다.


하키스틱을 잡는 순간 또 다른 불안이 몰려왔다. 내 키에 맞는 건 왼쪽 스틱뿐이었다. 평소 오른손이 편했는데 어쩔 수 없이 왼쪽으로 잡아야 했다. 익숙하지 않은 자세, 낯선 감각. 오늘은 또 어떤 변수가 기다리고 있을까.


경기는 정규 수업과는 차원이 달랐다. 속도가 훨씬 빠르고, 실력 차이도 확연했다. 잘하는 분들은 퍽을 자유자재로 다루며 얼음 위를 누비는 반면, 나는 퍽을 지키기도 버거웠다. 네 개의 라인으로 나뉘어 돌아가며 뛰었는데, 처음 보는 분위기에 긴장해서 더 몸이 굳었다. 실력이 좋은 분들은 스케이트 날이 얼음을 가르는 소리만으로도 달랐다. 그 속도를 따라잡으려다 보니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아,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한 번은 빙판을 돌다가 벽에 부딪혔는데, 코치님이 다가와 “괜찮아요?” 하고 웃으며 묻는 순간, 긴장이 풀리며 나도 웃어버렸다.


그날 나는 뚜렷한 활약을 하지는 못했다. 패스를 놓치고, 스틱을 제대로 다루지 못해 퍽을 잃는 순간이 많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쉬움보다 '더 하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다. 웨이트에서는 무게가 늘지 않으면 실패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하키에서는 실패조차 함께 웃어넘길 수 있었다. 내 실수 덕분에 누군가의 패스가 빛났고, 내가 놓친 퍽을 누군가 대신 지켜줬다. 혼자 운동할 때는 느낄 수 없었던 감각, 누군가와 함께 달리고, 부딪히고, 웃는 운동의 힘을 느꼈다.


그날 이후 나는 조금씩 달라졌다. 혼자 기록을 쌓는 웨이트에서 배운 끈기는 여전히 내 안에 있다. 하지만 하키는 거기에 ‘함께 맞추어가는 리듬’을 더해준다. 나 혼자만의 성장 곡선이 아니라, 함께 호흡하는 순간 속에서 내가 어디쯤 있는지를 확인하게 되는 것.


혼자 버티며 성장하는 것도 값지지만, 누군가와 함께 웃고, 실패하고, 응원하면서 배우는 성장에는 또 다른 온도가 있었다. 얼음 위에서 나는 혼자만의 선수가 아니라, 함께를 배우는 선수였다.


링크 위에서 넘어진 횟수만큼, 그리고 다시 일어선 횟수만큼 나는 조금씩 이 운동을 좋아하게 된다.

그리고 점점 확신이 든다. 혼자였다면 절대 몰랐을 배움을, 하키가 내게 가르쳐주고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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