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만 원짜리 설렘

by 지윤

그룹레슨을 시작한 건 작은 호기심이었다. 여러명이서 듣는 정규 수업과 다르게 소규모로 더 맞춤형 수업이 가능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수업은 기본 스케이팅부터 시작됐다. 고정하는 발이 흔들리지 않게 버티는 게 핵심이었다. 턴 연습에 들어갔을 때는 코치님이 “이건 잘하시는데요?” 하고 웃으며 말해주셨다. 순간 조금은 어깨가 으쓱해졌다. 그런데 크로스오버로 넘어가자 다시 현실을 실감했다. 다리가 잘 안 올라가고, 속도가 붙을수록 더 버거워졌다. 그래도 레슨을 통해 기본기를 하나씩 교정해나가는 게 뿌듯했다.


“하키는 결국 무게중심 싸움이에요.”


쌤이 하신 말씀이 자꾸 귀에 맴돌았다. 턴할 때는 안쪽 다리를 굽히고 바깥쪽 다리는 쭉 펴야 하는데, 내 다리는 자꾸 반대로 움직였다. 코치님은 “집에서 벽 잡고 한쪽에 체중 완전히 싣는 연습을 해보세요”라고 조언해주셨다.


레슨은 회차를 거듭해가며 조금씩 어려워졌다. 무릎을 아예 들어 올리듯이, 골반까지 확실히 틀어야 한다는데 머리로는 이해해도 몸은 잘 따라주지 않았다. 허리는 여전히 숙여지고, 무릎은 원하는 만큼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옆에서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사람들을 보며 묘하게 위로를 받았다. 나만 어려운 게 아니구나, 하면서.


그리고 그날, 코치님이 말했다.
“스케이트 날이 잘 안 밀리죠? 이번 달 안에 하나 사는 게 좋을 거예요.”


순간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동안 빌려 쓰던 스케이트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내 장비가 필요하다는 신호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막상 사려고 하니까 너무 막막한 거다. “뭘로 결정해야 하지? 가격은 또 왜 이렇게 천차만별이지?” 이런 생각만 계속 맴돌았다. 그래도 용기를 내서 고려대 아이스링크 장비샵으로 향했다.


매장 안에 들어서는 순간, 진열된 스케이트들이 줄지어 서 있는 게 괜히 위압적으로 느껴졌다. 사장님께 추천 받은 스케이트를 신어보고 끈을 조이는데, 마음은 계속 두근거렸다. “이거 진짜 사도 되나? 너무 큰돈 아닌가?” 하는 떨림과 “이제 진짜 시작이네!” 하는 설렘이 동시에 몰려왔다. 가격표에 붙은 47만 원 숫자가 자꾸 눈에 밟혔지만, 이상하게도 그 순간만큼은 값보다 ‘앞으로의 시간’이 더 크게 다가왔다.


결국 계산을 마치고 박스를 들고 나오는데, 이상하게 가볍지가 않았다. 스케이트 무게 때문이 아니라, 뭔가 내 마음이 무겁고 또 벅찼다.


그렇게 나는 내 첫 스케이트를 손에 넣었다. 떨리는 마음 반, 설레는 마음 반으로 시작된 큰 소비였지만, 지금은 그게 그냥 ‘소비’가 아니라 내 여정의 시작이라는 게 분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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