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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 Studio Bleu Aug 20. 2022

격량의 바다

정성공, 타이완 해협을 건너다.


<< 방문자 >>


2022년 타이완에는 역사적인 방문객이 등장합니다.


2022년 8월 2일, 

타이완 숭산공항에는 긴장감이 흘렀습니다.


말레이시아에서 출발한 비행기의 무전이 관제탑으로 들어오고, 이내 활주로를 미끄러지듯 내려앉은 기체의 출입문이 열립니다.


그리고, 하얀 정장을 입은

환한 표정의 여성이 트랩을 내려옵니다.


'낸시 페트리샤 펠로시 (Nancy Patricia Pelosi)'

미국 역사상 유일무이한 여성 하원의장,


그녀가 미국 정치인들에게 금기시되던 땅,

'타이완' 에 발을 디뎠습니다.


그리고, 그 발걸음의 무게를 나타내듯

타이완 해협 상공으로 미국과 중국의 전투기들이

어지럽게 날아다니기 시작하였습니다.


중국 인민해방군은 타이완섬 근처까지 접근하여 무력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죽어도 놓아줄 수 없다고 소리치며

바다건너를 바라보는 대륙의 사람들과

이들과는 함께할 수 없다고 결의를 다지며,

같은 바다를 노려보는 섬나라 사람들.


역사는 다시 지도위에 이 작은 섬을

운명의 시험대로 이끌고 있답니다.



<< 해적왕 >>


바다의 여신 마조, 타이완과 복건성을 비롯한 남동부 중국의 바다를 보호하는 여신입니다...

바다의 여신 마조(媽祖),


매일 바다로 나가며 무서운 파도를 마주해야 했던

중국 동남부 해안의 사람들은,

바다로 나갈 때면 그녀에게 안전을 빌었고,

바다에서 돌아와서는 그녀에게 감사를 했습니다.  


이런 마조 여신의 사당에

갑옷 입은 장군들이 머리를 숙이고 있습니다.


이들은 얼마 전 중국 본토에서 밀려 나와,

네덜란드 점령군들과 전쟁 후에 타이완 섬 

새로운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이 사람들이

사라저버린 명나라의 잔당이라고 하였고,


어떤 이들은 더 오래전

중국대륙의 남부를 주름잡던

해적들이라고도 했습니다.


사당 문이 열리고

우락부락한 인상의 사람들 사이로,

갑옷을 걸친 젊은 한 남자가 걸어 나옵니다.


사람들에게 그는 '콕싱야' 라는

이상한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습니다.



수신 정성공,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 입니다.


그의 이름은 정성공(鄭成功, 1624~1662년)

정씨 집안의 함대를 이끄는 젊은 리더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는 명나라 말기에 남부 해안을 주름잡던 해적왕 정지룡 이었습니다.


해적왕..

바다의 환경은 육지 보다도 훨씬 험합니다.


그런 바다에서 '해적왕' 이라는 칭호를 얻을 정도였으니, 정지룡은 사회의 주류와는 너무나 거리가 먼 인물이었습니다.


명나라 말기의 중국 남부

북방의 어지러움과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불온한 만주족들이 이미 북방영토를 차지했고,

가끔씩 베이징을 습격하기도 했지만, 오히려 남부 중국인들에게 이러한 분위기는 기회이기도 하였습니다.


혼란스러운 중앙 정부의 분위기는

정부 관료들의 해안선 경계를 느슨하게 하였고,

외국과 밀거래를 하던 많은 상인들에게 이는

손뼉 칠 일이었답니다.


10대의 정지룡은 고향 샤먼(厦門)에서 쫓겨나,

마카오로 흘러들어왔습니다.

(어릴 때부터 노란 싹이 보였던 것이, 무려 아버지의 첩을 건드리다 들켜서 집에서 쫓겨났답니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던 정지룡에게

'양심' '도덕'이란 거추장스러운 옷과 같았습니다.


더하여 정지룡은 똑똑하기도 하여서,

외국인들과 거래하는 상단에 들어가 장사를 배우면서 당시 마카오를 지배 해던 포르투갈인들의 언어를 공부하였습니다.


이렇게 착실히 자신의 명성을 쌓아 한 가게의 주인이 되었다면 아름다운 이야기일 수 있겠지만, 청년 정지룡은 상인으로만 남아있기에는 너무나 야심이 큰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이내 마카오의 밀무역상이던 이단(李旦) 이라는 인물 아래로 들어갔고, 일본, 베트남과 필리핀을 오가는 커다란 비단밀무역상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어느 여름날,

정지룡을 고용했던 이단이 사망했습니다.


이제 야심가 정지룡은 본색을 드러냅니다.

자기를 따르던 세력들을 모아, 밀수상단을 장악하기 위한 반란을 일으켰고 보기 좋게 성공시켰죠.


그리고, 상단을 장악한 그는 이제

남중국해 전체를 장악하기로 마음먹습니다.


필리핀을 오가는 스페인 선단을 습격하여 화물을 탈취하기도 하였고, 바다를 오가는 사람들에게 '정()'이라는 깃발을 일종의 허가증처럼 달게 하였답니다

(무려 은화 3천 냥을 주어야 살 수 있는 깃발을 달지 않는 배들은 어김없이 침몰되었습니다).



뭐 이런 이미지는 아니었지만서도....


평생을 해적질하며 도덕이라곤 고래밥으로 던져주고 살던 정지룡은 일본 나가사키의 히라도에 해적 영주들과도 친분이 있었습니다.


오늘도 비단 밀수를 위해 선물 한 보따리를 히라도의 영주에게 전해주고, 거나하게 대접받던 그는 술시중을 들던 '다가와'라는 여인에게 빠져버립니다.


그리고,

둘 사이에는 한 아이가 태어나게 되었으니,

바로 오늘의 주인공인 정성공 의 등장이었지요.


일본 나가시키현의 히라도시, 정성공 탄생 비석이 있습니다.


나쁜남자가 아닌 진짜 악당이었던 정지룡

자신의 아이가 생겼음에도 개의치 않고,

해적질을 하러 다시 바다로 나갑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태어난 아이는

어머니와 곤궁한 생활을 해야 했죠.


어느덧 중국 남부에선 어느 누구도

정지룡의 해적군단을 무시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몰락해가던 명나라 관군 역시 이들 해적들을 상대하긴 버거웠나 봅니다. 명나라 정부는 이런 정지룡을 보며, 한 가지 생각이 떠오릅니다.


'저런 악당들을 물리칠 수 없다면,

 차라리 내편으로 만들면 어떨까?'


명나라 황제 숭정제는 1627년 칙서를 내립니다.

무려, 남부의 해적왕을 명나라의 바다를 통치하는 '도독' 으로 임명한 것이었습니다.


7살의 어린 정성공이 우락부락한 삼촌들의 손에 이끌려 중국으로 오게 된 때는 이런 복잡한 일들이 일어난 후였습니다.


남편의 외도와 무관심에 화가 났던 아내는

일본에 남겨둔 채 말이죠.


<< 명왕조의 등불 >>


자신의 아들만큼은 해적으로 키우고 싶지 않았던 정지룡은 어린 아들에게 자신이 이루어놓은 엄청난 부를 누리게 합니다.


5m 높이의 담장으로 보호받던
어린 정성공의 집 안에는 거대한 흑인 경호원들이 상주하였고, 어린 그를 위한 작은 동물원까지 갖추어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실력 좋은 선생님들을 붙여 유교 윤리에 입각한 교육을 시키기 시작합니다.

(당시 대학자 진겸익에게도 교육을 받으며, 정성공은 또 다른 여걸 유여시도 만나게 되죠. 그녀의 이야기는 여기로)


밀수해적질로 만들어진 거대 기업.


잔인하고 야비한 해적왕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아버지의 정체였지만, 어린 정성공의 눈에 아버지는 망해가는 명나라에 충성을 다하는 수군 제독이었습니다.


명나라의 상황은 좋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황제, 숭정제가 자결하였고 북경은 이자성의 반란군들에게 떨어집니다. 그리고, 산해관의 문이 열리고, 청나라 군대가 남경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죠.

북쪽에서 어마무시한 녀석들이 다가옵니다. ㅎㄸㄸ~~~ (출처: 영화 <활> )


이제 남은 명나라의 신하들이 남쪽으로 내려왔고, 남은 왕족을 찾아 명나라의 명맥을 이으려 하고 있습니다.


이런 명나라의 관료들에게 더 이상 관군은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정지룡의 해적군단에게 희망을 걸어야 할 정도로 정부는 망가져 있었답니다.


정지룡의 근거지인

복건성으로 도망 온 명나라 황제 융무제.


신하들은 정지룡을 경계하라고 했지만,

그에게는 더 이상의 대안이 없었습니다.


결국 그는 과거의 토벌 대상이었던 해적왕에게

군사권을 맡기는 파격적인 결단을 내립니다.


더하여 이제 21살이 된 충성심 가득한

그의 아들 정성공에게는 '어영군중도독' 이라는

관직을 내리고, 명나라 황제들의 성인 '(朱)' 글씨를 이름에 써도 좋다는 윤허를 내립니다.

이 때부터 사람들은
나랏님의 성씨를 쓰는 분이라는 뜻의  
<국성야(콕싱야)> 라는 존칭을 붙여줍니다.



어린 시절부터 험한 바다 위에서

배신을 밥먹듯이 하고 당하며,

해적질로 죽음의 고비를 여러 번 넘긴 정지룡

뼛 속까지 현실주의자 였습니다.


망해버려 앙상한 허울만 남아있는 '명' 이라는 나라를 위해, 어마무시한 만주족 침입자들과 맞서 싸울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습니다.


결정적인 순간 그는 본색을 드러냅니다.

투항을 결심한 것이었죠!


당시 복건성으로 통하는 길목을 수비하던

아들 정성공은 뒤늦게 이 소식을 듣습니다.


명나라의 충성스런 신하이던 아버지가 배신을 하였습니다. 더하여, 앞에있는 청나라의 군대에게 변발을 하고 머리를 숙이라는 아버지의 편지가 도착합니다.


그는 이제 선택을 해야 했습니다.

아버지와는 달리 이상적이고 고지식했던 아들은

사람들을 불러 모읍니다. 그리고 이야기하죠.


"부자의 연을 끊겠다."


그는 군대를 돌려 본거지인 복건성으로 향합니다.

 '명나라 부흥운동' 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즈음...

정성공에게 평생 잊지 못할 일이 벌어집니다.



복건성 안평에 있는 정성공과 어머니 다가와의 조각상


정성공이 투항할 마음이 없음을 알게 된 청나라 군대는 방어선을 우회하여, 명나라 황제 융무제와 히라도에서 중국으로 건너온 그의 어머니 있는 복건 안해(安海)성으로 쳐들어 옵니다.


소식을 들은 정성공은 말을 타고 급히 달려가지만, 멀리서 보이는 안해성은 이미 불길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병사들의 고함소리가 들리고,

미친 듯이 채찍질을 하며 달려가는 정성공의 눈에

망루 위의 소수의 사람들 모습이 보입니다.


솟아오르는 화염 사이로 한 여인이

병사들과 함께 칼을 들고 싸우다가,

이내 망루에서 떨어집니다.


평생을 바다에서 보낸 해적왕 아버지,

그런 아버지를 평생 가슴속에 묻어왔던 어머니...


고향인 일본 히라도를 떠나와

중국의 작은 해안 도시에서 이제

평안한 나날을 보낼 것만 같던 그녀가,

시대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사라집니다.


정성공은 이 광경을 보며 무너져 내리고 맙니다.


어머니가 자신을 낳을 때,

그리고 그녀가 마지막을 맞는 순간까지

곁에 없었던 아버지.


처음에는 무너저가는 명나라를 위해

부자의 연을 끊었었다면,


안해성에서 솟아오르는 마지막 불꽃을 보며,

정성공은 아버지에게 남아있던 마지막 연민까지 불사릅니다.


그리고 이즈음,

북경 청나라 정부는 

해적왕 정지룡에게 큰 실망을 합니다.


그가 호언장담하던 무적의 해적함대는

그의 아들 정성공을 따라 사라져 버렸죠.


그의 본거지 안해성에 숨어있던

황제를 잡으러 간 청나라 병사들의 희생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청나라 2대 황제 순치제,

그는 해적왕 정지룡과 그의 아들들을

인질 삼아 정성공과 협상하려 합니다.


가족의 목숨과 맞바꿀 조건은 무조건적인 항복.


하지만,

어머니의 죽음을 보며, 이제 독해질대로 독해진

정성공은 협상을 거부합니다.


평생을 싸움과 모략으로 살아남았던 아버지,

해적왕 정지룡은 어이없게 참수당하고 말죠.


<< 물고기를 잡는 법 >>


정성공의 침공로, 남부 복건성에서 출발하여 남경성을 목표로 하였습니다.


한 나라가 역사에서 사라질 때,

사그라드는 불꽃을 다시 살리기 위해

뛰어다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거대한 명나라의 멸망을

역사는 '왕조의 교체'로 간단하게 묘사하지만,

실제로는 망명 수도인 남경이 함락 당하고도 싸움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중 가장 큰 규모를 따진다면,

정성공의 3차례의 남경 진격이 있었습니다.


그의 마지막 원정은 무려

15만 5천의 병력이 동원되었습니다.


수 년을 준비한 정예병사들.

실제로 청나라 수비군을 짓밟으며 남경성 앞까지 도착하였고, 장강 변의 수많은 도시들이 이들을 따라 봉기하였습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경험이 부족했던 그는 실패하고 맙니다. 청나라로 변절한 한족 관료들의 지연전술에 고지식한 정성공이 속아 넘어간 것이었죠.


마지막 청나라 군대와의 결전에서 그는

수 십 년을 준비해온 모든 것을 잃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은 중국 대륙에서 한족들의 대규모 저항에 종말을 의미했습니다. 더이상 정규군 단위의 명나라 부흥운동은 일어나지 않았죠.


다만 위안이 된다면,

바다 위에서는 아직 그의 군대를 이길 자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실패한 정성공이 남은 함대를 거느리고

도망친 곳은 지금의 타이완섬 이었습니다.


바다가 성이 되어 적들을 막아 주는 땅.


모든 것을 잃은 그는

이곳에서 명나라 망명정부를 세운 후

다시 뒷 날을 도모하려 합니다.  




기마민족들과 싸우기 위해 바다를 사용한 예는 많았습니다. 멀리 볼 것도 없이, 우리나라의 '삼별초' 역시 원나라를 상대로 바다를 이용했죠.


아래에 그림에서도 볼 수 있듯,

물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정성공의 부대의 영향력이 미치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물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정성공의 군대가 있었답니다.


청나라 정부의 바다를 바라보는 시각은

이때부터 만들어집니다.


이들에게 바다와 강은

적들이 침입할 수 있는 통로였고,

'개발' 보다는 '관리' 를 해야 하는 대상이었습니다.


이런 청나라 정부에게 투항한 이들 중에서,

예전에 정성공의 아래에 있던 '시랑(施琅)' 이라는 장군이 있었습니다.


변절한 그는 청나라 정부에게 가장 효과적이지만,  

너무나 엄청난 계획을 하나 건의해 올립니다.


천계령(遷界令) :
중국의 모든 해안선에서 30리 안에는
사람들의 거주를 금지시키는 명령.


어차피 물이 있으면 정성공의 부대를 막을 수 없으니, 그 물에서 사람들을 때어놓자는 것이었습니다.


말이 좋아 때어놓는 것이지,

이 정책이 시작이 되면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자신의 집에서 쫓겨나 유랑민으로 떠돌아야 할 판이었습니다.


하지만,

청나라 정부는 이 무시무시한 계획을 실행하기로 합니다. 그만큼 바다 건너의 타이완섬은 골치 아픈 문제였으니까요.


이제 거대한 중국 대륙에서 한 순간,

바닷가에서 사람들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흔히들 우리는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다 태우냐!> 라는 말을 하곤 합니다만, 사실 중국에선 그런 일들이 가끔씩 일어나곤 합니다.

왜냐면 초가를 태우고도 넘칠 만큼
초가집은 많으니까요....

타이완섬에 조그맣게 남은 정성공의 세력, 그들을 막기위해 중국동남해안(짙은 황색부분) 바닷가에 사람들이 모두 이주당했습니다 (출처: 위키피디아)

<< 고립된 섬 >>


중국 천저우의 시랑의 동상, 그는 타이완을 최종적으로 점령합니다.


수 백 킬로미터의 해안선을 황무지로 만드는

제정신을 놓아버린 것 같은 정책, 하지만 이런 단순 무식한 정책은 효과만큼은 확실했습니다.


이제 중국 동남부 지방과 타이완, 동남아시아의 네트워크는 사실상 단절되게 됩니다. 그리고, 정성공의 함대는 중국 해안에 있던 모든 비밀 거점들을 상실하게 됩니다.


어제까지의 바다에서 정성공 군대는 물고기와 마찬가지였지만, 사람이 살지 않는 바닷가는 물이 말라버린 어항과도 같았습니다.  


그즈음,

멀리 버마로 도망가 있던 명의 마지막 황제는

청나라의 추격군에게 죽임을 당합니다.


이제 명나라는 사라지고 맙니다.


소식을 듣고 몇 날을 통곡하던 정성공.

그즈음 그는 자주 고열과 환상에 시달립니다.


중국 해적왕과 일본 게이샤의 아들.

변발을 하고 새로운 정복자들을 따라간 아버지.

그런 아버지가 따라간 정복자들에게

눈앞에서 어머니를 잃었습니다.


모든 것을 잃고 돌아온 그가 발을 디딜곳은

중국도 일본도 아닌 그 중간의 땅,

타이완 이었습니다.


네덜란드 인들에게서 빼앗은 젤렌디아 요새에서

고열에 시달리며 그는 침대에 몸을 누입니다.


한 시대를  바다 위를 호령하며,

대륙의 국경선을 바다 멀리 밀어내었던 그의 사인은 어이없게도 작은 모기가 옮긴 말라리아 였습니다.


그의 죽음 이후 청나라 장수가 된 시랑은 타이완을 점령합니다. 그리고 이 땅이 필요가 있었냐는 듯, 다시 대륙의 정복자들의 시야에서 이 섬은 멀어지죠.


시간이 흐르고,

제국주의 일본 역시 이곳을 점령합니다.

일본은 첫 식민지로 이  땅을 원합니다.


국공내전이 끝나고,

대륙에서 패한 국민당군들이 이곳으로 밀려옵니다. 이들은 수 백 년 전 한 장군이 그랬듯, 언젠가는 본토로 다시 돌아갈 날을 이야기하며 오늘날까지 버티고 있답니다.


그리고 타이완에 발을 디디는 정복자들은 약속한 듯, 수 백 년 전에 이곳에서 운명한 젊은 장군의 사당에찾아가 머리를 숙입니다.



중국 대륙에서 온 대만인(외성인, 外省人) 들은

언젠가 대륙으로 다시 돌아갈 날을 꿈꾸던 그의 모습에서, 권토중래하여 돌아갈 자신들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중국 대륙을 지배하는 본토의 중국인(中国人)들은 

복건성 사람이었던 정성공의 아버지와 타이완을 점령한 청나라 장군 시랑을 들먹이며, 타이완의 뿌리는 중국 본토에 있음을 주장합니다.


이곳에 식민지를 두었던 일본인(日本人) .

그들 역시 히라도에 태어난 정성공과 어머니를 기억하며, 자신들 역시 타이완에 지분이 있음을 내비치곤 합니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이곳에 살고 있던 

원주민 대만인 (내성인, 内省人) 들.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은 원래부터 타이완의 주인이었지만, 무지막지한 점령자들에게 핍박을 받으면서도, 이 섬의 정통성 싸움에선 항상 빠져있었답니다.


2000년 천수이벤 총통(우)이 취임합니다. 전임 리덩후이 총통(좌) 이 지핀 독립의 군불을 그는 본격적으로 키우기 시작합니다.


2000년 5월 20일,

오랫동안 대만을 지배해 왔던 국민당 정권이 끝나고, 민진당천수이벤 총통이 취임합니다.


박수를 치고 있는 신임 총통 왼편으로

새로운 시대를 확신하는 듯,

오른손을 위로 들어 높이 흔드는

전임 총통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이 사진 한 장이 바다 건너

대륙 중국에 보여주는 메시지는 분명했습니다.


'이제 타이완 섬의 운명은

 원래의 주인들이 결정하겠다.'


타이완 해군의 성공(成功)급 전투함의 모습, 타이완인들은 그들의 전투함에 오래전 사라진 젊은 장군의 이름을 부여합니다.


불과 20년 남짓한 시간.

항상 외부인들의 손안에 운명을 맡겨야 했던 섬사람들은 이제, 자신들의 운명을 스스로 선택하기 위한 길을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잔잔하던  바다에 다시 격량이 일고 있습니다.

그 마지막이 어디 일지는 아무도 모른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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