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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황제의 정원

님을 잃은 그대에게

by Le Studio Bleu

<< 여름 향기 >>


우리에겐 그렇게 유명하지 않은 곳.

(아니 나에게만 그런 곳일지도 모르겠다)


시안의 화청지(華淸池, 화칭츠)은 아름다운 별장이다.

그 바닥에서는 따듯한 온천물이 퐁퐁 흘러나온다.

화청지에서 솟아오르는 맑은 샘물들


물론, 일반 관광객들이 몸을 담글 일은 없으니 그 사실을 확인할 길은 없다 (그런데, 적어도 온천이면 펄펄 끓는 연기가 나야는거 아닐까? 이 곳을 본 나의 첫 의문은 그것이었다)


아무튼 허풍 심한 중국사람들의 이야기로는 이 곳은 원명원, 이화원, 피서산장과 더불어 공인된 중국 '4대 황실별장' 이라고 한다.


정작 내게 재밌던 것은 이 곳을 제외한 3개의 별장은 모두 동북쪽에 위치해 있다는 점이었다.


더해서 이 곳을 제외하면 모두가 창나라때 만들어진 별장들이다 (만주에서 온 청나라 황제들은 만성피로에 시달린 걸까?)


따지고 보면 이곳을 좋아하던 당나라 왕조역시 북쪽에서 온 말타던 이민족들이니, 중국의 4대 별장들은 모두 말타던 이민족 왕들의 만성피로를 치료해주던 힐링 장소었던것 같다는 엉뚱한 상상을 해보았다 (예나 지금이나 다문화 관리는 쉽지않다)


사실 여기는 병마용 가는 길에 세트로 들리는, 햄버거에 딸려나오는 감튀 같은 느낌의 관광지지만, 중국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여러 사건들의 무대이기도 하다.

뒷동산에서 바라본 화청지의 모습

<< 몰락의 시작 >>


사람들에게 그저 그런 황실 목욕탕으로 기억되었을 화청지를 유명하게 만든 사람들이 있다.


누구나 들으면 '아!!' 하는 감탄사가 흘러나올 사람.

그 주인공은 바로 중국 4대 미녀로 이야기 듣는 귀비 양씨(양귀비)였다.

현대에 복원된 이미지는 대략 저렇다(좌)라고 하는데.... 실제 양귀비를 모티프로 한 그림(우)은 미국에 소장중

양귀비는 여러모로 상상력을 자극하는 인물이다.

우선 그녀의 기구한 삶이 그렇다.


아름다운 외모로 왕후의 시녀로 발탁되었다가, 왕후를 시어머니로 모시는 며느리가 되었고, 결국 그 시아버지와 재혼을 하게 된다 (이런 결혼 스토리를 겪어야 한다면, 결혼지옥 프로그램에 나와 오은영 선생님의 상담을 받아봐야 하지 않을까?)


수저우 편에서 이야기 하였던

월나라의 전설의 미녀 '서시'나 당나라의 양귀비나 모두 거대한 나라를 속된말로 '골'로 가게 만들었다... 고 비난을 받았다.


나는 그녀들의 이야기에 유교빌런들의 강력한 꼰대관이 들어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니,

가만히 잘 살고있는 여인내들을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려고 갖다 바치는 것도 모자라서 스스로 그녀들에게 퐁당 빠져 방탕하게 살아놓곤, 가세가 기우니깐 이 모든 것들이 '이쁜 너희들 책임'이라니 ...


아이돌이 너무 예뻐서

아이가 공부를 안한다는 이야기와 뭐가다를까?


아무튼,

이 곳 화청지가 양귀비 이야기에서 빠지지 않는 이유는, 애지중지하던 첩을 잃고 삶이 무료하던 현종황제가 양귀비를 만나면서, 눈을 번쩍 뜨게된 장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 화청지의 벽면에도 어김없이 후대에 교훈이 되라는 의미로 이 이야기가 커다란 조각이 새겨져 있다.

오늘도 놀고먹는 황제와 양귀비, 간신 고력사에게 급히 사자가 달려와 이야기한다 ... "여기 있으면 큰일납니다!"


황제의 앞에서는 궁녀들이 춤을 추고 있다.

그런데, 흐뭇하게 공연을 보고있는 황제 앞에 누군가가무릎을 꿇고 보고를 하고있다.


세상근심을 모두 잊기위해 즐거운 공연을 바라보고 있는 황제를 방해할 정도로 급한일은 뭘까? 급한일이 아니라 생각되면 황제의 유희를 방해한 죄로 목이 달아나리라.


이런 황제의 마음을 헤아린듯,

무릎꿇은 신하는 한 손으로는 장계를 들고 황제의 눈을마주치지 못하지만, 한 손으로는 급히 어딘가를 가리키고 있다.

한 무리의 군사들이 말을 타고 날아오고 있다~!

그가 가리킨 곳은 화청지의 문 밖의 머나먼 변경 땅.


당나라를 지키는 군사들을 지휘하던 호랑이 수염의 뚱보장군, 안녹산이 반란을 일으킨 것이었다!


그런데,

사실 커다란 당나라에서 장군 한명이 반란을 일으켰다고 무엇이 큰 문제일까 싶기는 하다.


강력한 고구려도 멸망시키고, 카자흐스탄까지 쳐들어가 잘나가던 중동의 압바스 왕조와도 맞짱을 뜬 당나라 군대가 아니었던가? (물론 오늘날 당나라 군대는 무능력의 상징이지만)


하지만, 이 녹산이라는 장군이 그리 호락하지는 않았나보다. 일단 로크산(빛)이라는 이름처럼, 이 사람은 말을 잘타는 중앙아시아 출신의 장수였다고 한다.


거기다, 머리도 똑똑해서 6개 국어를 하는 국제적인 능력자이자, 능글능글한 성격으로 사회생활마저도 잘해서 황제와 양귀비의 마음에 쏙 들었다.


무려 16살이나 어린 사촌동생 같을 양귀비에게

'어머니'라고 부르며 머리굽히는 싹싹함이란.


이렇게 사회생활 만랩이던 안녹산은 이제,

당나라 군대의 1/3을 거느릴 만큼의 지위에 올랐다.

더군다나 그의 부대는 말 잘타고 싸움 잘하기로 유명한 서량의 기병들이었다.


이런 그의 성장에

당나라의 관리들은 긴장할 수 밖에 없었다.

어제의 촌뜨기가 큰 지분을 가진 대주주가 되었다.

이제 중앙의 귀족들은 덜컥 겁이나게 된다.


저놈이 혹시 다른 마음이라도 먹는다면?


어찌 되었던 안녹산은 이민족의 피가 섞인 이방인이다.

이미 역사에서 이들은 이런 정책의 결과를 본적이 있다.

오래전에

한나라 장군 '동탁'이 군대를 이끌고 들어와 낙양성을 홀랑 태워먹지 않았던가?


결국 의심에 불을 붙인건

양귀비의 친척 오빠인 '양국충'이었다.

시대의 나쁜놈 중 하나이던 양국충은 황제에게 이제,

안녹산이 진짜 나쁜놈이니 제거해야 할 시기라고 줄기차게 건의를 올린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안녹산의 귀에 까지 들어간다.

이런 팀킬 분위기는 당나라의 번영을 끝장내버리는 사건으로 이어지는데, 바로 '안사(안녹산, 사사명)의 난'이 그 것이다.

나무위키에 친절히 나와있는 안사의 난, 안녹산의 장비 수염은 그의 시그니처

이 전쟁은 무려 9년이나 지속되었다.

당시의 상황 역시 혼란 그 자체였던 듯 하다.


아버지(안녹산)가 반란을 일으켰는데

그 아들(안경서)이 아버지를 죽이고,

그 아들을 또 아버지의 부하(사사명)가 죽이고,

그 부하를 부하의 아들(사조의)이 또 죽이는 ....


반란군 내부에서는 이런 가족잔혹사가 계속 일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썩어도 준치라고 서량의 기병들은 강했나보다.


반란군들은 긴 시간을 무너지지 않고 버텼고,

당시 당나라 땅에서는 지금의 말레이시아 인구 만큼의 사람들이 전쟁의 와중에 죽어나갔다고 한다.


이곳 화청지 역시,

그 전란의 불길을 피해내지 못하고 홀랑 타버리게 된다(현재의 모습은 청나라때, 약 20% 정도만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화청지 햔 켠의 모습, 뒤 쪽으로는 케이블카가 보인다.

<< 우등생과 아이돌 >>


역사에서는 놀고먹고 여자에 빠진 황제라 욕먹지만,

사실 현종황제는 초기에는 꽤 괜찮은 군주였다고 한다.


너무나 총명하게 정치를 잘한 나머지,

그의 제위기간은 '개원성세(開元盛世)' 라고 불리며 칭송받았다고 한다.


요즘으로 말하면

100점짜리 우등생 군주였다는 말이다.

그러기에 그의 몰락은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이런 잘나가던 우등생의 몰락을

하나의 원인으로 분석하기란 쉽지 않을거다.


요즘처럼 발전한 세상에도

일타선생님 여럿이 붙어서 분석해도,

내 아이 성적이 왜이러는지 알기 힘들지 않은가?


아이들 성적도 그런데,

아이돌급 여자 한 명에게 빠져서 나라 기둥이 뽑혔다고말하기에는 인과관계가 약하다는 느낌이 든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당나라에는 현종황제처럼,

'타락천재' 를 방지할 시스템이 이미 망가져 있지 않았을까?


이미 속은 당나라인데

이를 고쳐야할 현종황제가 더이상 공부를 하기 싫어졌다. 더해서, 주변에 이 금쪽이를 바로 잡아줄 시스템도 작동하지 않는다.


아무튼 중간고사를 망친 황제는 이제,

아늑한 장안을 버리고 저 멀리 사천성으로 도망가게 된다.

사천분지 위치, 사방이 산으로 둘러쌓인 험난한 땅에서 마작을... 응???

그런데 왜 사천성일까?


우선 지도에서 보듯,

사천성의 가운데는 커다랗고 평편한 분지가 있는데 여기가 꽤 넓다. 땅이 넓은 만큼 과연 생산력도 훌륭하다.


물론 이곳은 덥고 습한 날씨로 유명하다

(사천성 샤브샤브가 괜히 매운게 아니다).


하지만,

이 분지를 둘러싸고 있는 높디 높은 산맥들은 외부의 침입자들을 방어하는 거대한 성벽이 된다.

(삼국지 유비가 여기로 도망왔는지 이해가 된다.

사방이 적이었던 그는 이 땅에서 세상 없을 안전함을 느꼈을거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이 땅에 들어가기가 결코 쉽지가 않다는 말이된다.


오죽하면 천재 시인 이태백이 자기 시에서

'날아가는 새도 (힘들어서) 울면서 쉬어간다는 길'

이라고 적어놓았을까.


문제의 시작은 이런 험난한 곳으로 시험을 망친 황제와 함께 당나라군이 터덜터덜 걷고 있었다는 것이다.


끝나지 않는 굽이진 산골짜기 길을 걸으며

모두가 생각했을 거다.


내가 도대체 누구 때문에
이 강아지 고생을 하는거지?


아늑하게 자신들을 보호해 주었던

장안성은 반란군들에게 떨어졌다.


황제를 따라 도망오긴 했는데

이대로 계속 가는 것이 맞는 선택일까?


배는 고파오고 눈 앞에

넘어가야하는 봉우리들은 까마득하기만 하다.


배고픔과 절망감은 이런 의문을 분노로 바꾸었다.

힘빠진 황제와 아직도 갑질만 하는 황비 일행들을 보면서 군사들은 들고 일어나고 만다.


이 모든 것이 저 여자와 저 가족들 때문이다!


분노한 이들에게 희생양이 필요했고,

황제조차 이제 말릴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렇게,

장안성 부근의 이름모를 장소에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미녀,

양귀비는 목이 매달리게 된다.


이후 반란군들이 물러가고

현종황제는 다시 이 곳 화청지로 돌아왔다.

연못의 물은 여전히 푸르렀지만, 더 이상 그가 아끼던 양귀비는 존재하지 않았다.


잠깐이나마 삶의 의욕을 주었던 사랑을 잃어버린

황제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기록은 불친절하게도 그 부분에서는 입을 다문다.


그래서일까?

이 이곳을 돌아 흘러가는 맑은 물들을 보면서 ,

실의에 빠져 폐허를 헤매고 있었을 황제의 모습이 상상이 되었다.

,

그리고,

홀랑 불타버린 황제의 정원,

화청지는 사람들에게 화려하던 당왕조의 몰락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불길한 징조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 잃어버린 황제의 정원, 화청지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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