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잔 소리에 기대어
은은한 아잔 소리가 바람에 실려 들려온다.
알라를 칭송하는 노래같은 주문들.
스피커를 통해서 잔잔히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조용한 정원 풍경과 어우러져 신비한 분위기를 만든다.
알라는 위대하다
의심 없이 알고 증언하노니,
알라 이외의 다른 기도할 분은 없도다
의심 없이 알고 증언하건대,
무함마드는 하느님의 예언자로다
예배하러 어서 오라,
예배하러 어서 오라
성공하러 어서 오라,
성공하러 어서 오라
예배는 잠보다 더 유익한 것,
알라는 위대하다.
알라 이외의 다른 기도할 분은 없도다.
- 시아파의 아잔 (출처 : 위키피디아) -
"알라 후 아크바르 (알라는 위대하다) "
낭송을 듣고 바로,
'아, 아잔이다’ 하고 알아차릴 수 있었던 것은,
반복되어 나오는 저 구절 때문이었다.
신성한 이들의 기도에 나오는 이 말이
나에겐 다른 기억으로 더 익숙하다.
헐리우드 영화에서 나오는,
자살폭탄 조끼를 입고 사람들 앞에서
폭탄을 서슴없이 터뜨리는 무슬림 테러범들,
서양의 주인공들이 지키고 있는 성벽 앞에서,
무시무시한 반월도를 휘두르는 무슬림 전사들이
공격전에 고함치며 내지르는 함성.
'알라 후 아크바르~'
아잔 음률에 나의 귀를 맡기고 있다가,
퍼뜩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들에겐 하루의 시작과 마무리를 알리는 말,
'복을 받기 위해 신을 경배합시다'
라는 누구나 건낼법한 말이,
영화 속에서는 죽음의 시작을 알리는
무시무시한 말로만 그려지고 있구나...
만약 지금의 헐리우드가
바그다드나 테헤란 같은 중동에 있었다면,
서양 기사들이 영화에 악당으로 등장해서
‘에이맨' 을 외치며 무기를 휘두르지 않았을까?
평화로운 풍경과 경건해지는 아잔을 들으면서,
나는 이곳의 사람들을 다시 생각해 본다.
붉은혁명 정신만을 생각하기를 바라는 이 나라에서,
이 신실한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돼지고기를 혐오하는 사람들과,
돼지고기가 없으면 살지 못하는 사람들.
(예전에 듣기론,
한 회족 여성과 결혼한 한 중국인 남친은
장인어른에 요구로 결혼 전에 병원으로 가서 위세척을 받아야 했다고한다.
불결한 돼지고기를 먹고살았던
그동안의 '죄' 를 씻어내기 위해서...)
모든 종교가 어우러진 이 특이한 사원의 풍경은
이들이 서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자발적인 어우러짐의 방식일까?
아니면 강압에 견디다 못해 어쩔 수 없이
변화시킬 수밖에 없었던 서글픈 흔적들일까?
밖으로 나오는 나의 눈앞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보였다.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모를,
나와 같은 이방인들,
은은한 아잔 소리 아래서,
화기애애 하게 모여앉아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 풍경을 사진기에 담고
그 뒤에 버티고 있는 오래된 건물을 바라본다.
성심루(省心楼),
근심을 놓아 두고 가는 곳.
웃음 지으며 이야기하는 그들을 보면서,
나도 살짝 옆에 의자에 앉았다.
어쩌면 우리가 살아갸야할 방향은 이런게 아닐까?
이 작은 공간 안에서 우리는
알라의 보살핌 아래 평화롭게 웃고 있다.
이방인에게 관대한 서안의 모스크.
여기선 서로 다른 신앙도, 다른 생김새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눈을 감았다,
기도 소리가 들려왔다.
이렇게 풍경에 녹아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귓 가에 아잔의 마지막 구절이 들려왔다.
알라는 위대하다,
이곳에 있는 그대들도 위대하다.
예배하러 어서오라.
마음속 근심 다 덜어 놓게 어서오라.
역시 나는 어디가 삐뚤어졌나 보다.
마음속으로 나만의 이런 불경한 해석을 하면서,
작아져가는 아잔의 마지막 구절에 귀를 기울였다.
붉은 노을이 하늘 위를 물들이고 있었다.